중국이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이후 동중국해 제공권 장악을 둘러싼 미국·일본과의 갈등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문제를 대화로 풀려는 노력과 함께 뜻하지 않은 충돌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체제부터 구축하는 게 현실적인 접근방안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사전 통보 없이 매일 군용기를 출격시키고 있다고 한다. 중국도 전투기와 공중조기경보기 등을 잇따라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다. 또 중국과 미국·일본 모두 동중국해와 그 주변에서 무력을 증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세 나라의 항공모함(준항모 포함)이 사상 처음으로 남중국해에서 동시에 무력시위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서로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쉽게 물러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지만 수십년 전엔 미국과 일본이 그렇게 한데다 그때와는 힘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힘으로 현상 변화를 꾀하는 중국이나 현상 변화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일본 모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세 나라는 무력시위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생산적인 논의 틀을 만들지 못한다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에 앞서 위기관리체제를 만드는 것은 사태 악화를 막고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정한 구역에서는 모든 항공기의 출입에 대해 관련국에 사전 통보하는 게 위기관리체제의 한 내용이 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는 자국 항공사들에 비행계획을 사전에 중국 쪽에 알리라고 권고한 것은 위기관리를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갈등의 주된 당사자가 아니다. 중-일 사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이나 미-중 사이 전략적 경쟁의 한가운데에 뛰어들 이유도 없다. 따라서 이어도 상공 등을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포함하는 안을 검토하더라도 전반적인 동중국해 갈등을 악화시키지 않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어도 상공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관련돼 있기도 하다.
마침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한·중·일 순방이 시작됐다. 미국이 이번 순방을 대중 봉쇄망 강화의 기회로만 활용하려 한다면 갈등 장기화는 피하기 어렵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통의 요소를 찾아가는 구동존이의 자세가 요구되는 때다. 위기관리체제 구축은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