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힘이 있을 땐 모른다

● 칼럼 2013. 12. 2. 17:55 Posted by SisaHan
어떤 정권이든 권력형 비리나 인사 전횡으로 인한 패가망신은 단골 메뉴다. 최고권력자를 향한 권력 실세들의 과보호 행태 또한 그렇다. 그런 순간 균형감각이란 눈 씻고 찾으려 해도 없다. 권력형 청맹과니가 되어서다. 눈을 뜨고 있되 앞을 보지 못한다.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은 권력이 사라진 다음에야 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한 청와대와 총리, 특히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질타는 청맹과니 같은 발언처럼 느껴진다. 감히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사제단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겠지만 이번에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는 ‘사제복 뒤에 숨어서 대한민국 정부를 끌어내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를 벌이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제대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사제복을 벗고 말씀하셔야 한다’고 일갈했다. 남다른 정보력과 인맥, 최고권력자의 신임으로 막강실세라 불린다는 윤상현 의원다운 과감한 발언이다. 하지만 도를 넘었다. 그건 그의 표현대로 ‘국가원수를 폄훼하는 용납될 수 없는 언행’ 따위를 뛰어넘는 막장의 언어다. 윤 의원의 세계에선 그럴지 몰라도 세상에서 국가원수를 폄훼하는 언행이 최고로 중차대한 사안은 아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치집단이나 관변단체가 아니다. 최고권력자의 종교나 정치성향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정권에서든 종교적 양심과 정의에 반하는 일들에 대해서 죽비를 들어 깨우침을 준 한국 사회의 허파 같은 조직이다. 지난 40년간 그래 왔다. 국회의원 배지 떼고 사제복 벗고 만나서 이종격투기라도 하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사과하고 철회해야 마땅한 발언이다. 물론 윤 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 땐 자기 객관화가 쉽지 않다. 자기 행위는 동기부터 이해하고 남의 행위는 현상부터 받아들이려는 인간의 속성이 극대화된다. 권력은 유한한 것이라는 속성을 관념에서만 받아들일 뿐 현실로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이 훗날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자신의 인기가 사그라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1000통 넘게 오던 팬레터가 어느 날부터 누가 채간 것처럼 한 통도 안 오는 현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권력은 대체로 임기가 정해져 있다. 어느 시점부터 힘이 소멸될 것인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직장인들조차 은퇴한 뒤에야 현직 프리미엄에서 비롯한 현실적 오해와 착각이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전두환 같은 최고권력자 출신은 단임제 실천을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그 기저에는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종신 대통령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포기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희생정신이 있다. 물론 대단한 착각이다.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그나 측근이나 그런 인식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으리라.
인간은 자기 존재감이 극대화될 때 ‘살아 있네!’란 느낌을 생생하게 실감한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현직 권력은 그런 점에서 뿌리칠 수 없는 중독물질에 가깝다. ‘자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반응 앞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제를 못한다. 권력엔 그런 속성이 많다. 권력에 중독되는 이유다.
힘이 있을 땐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달라진다. 한가하거나 관념적인 명제가 아니다. 물레방아처럼 반복되는 역사적 삽질을 방지하는 실천적 솔루션이다. 윤상현 의원 같은 현직 실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 이명수 - 심리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