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삶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드러나나 봅니다. 엊그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한 ‘마디바’(존경받는 사람) 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성명을 통해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추모 성명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없는 나의 인생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장 용기있고 선한 인물을 잃었습니다.” “위대한 빛이 졌다”는 캐머런 영국 총리의 성명도 간결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북한이 추모 대열에 참여한 것입니다. 북한은 유엔이 2005년부터 매년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대상국이니, 만델라의 꿈과는 거리가 먼 나라입니다. “(고인은) 남아프리카 인민이 낳은 훌륭한 아들”, “남아공 정부와 인민, 고인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4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이와 비슷했죠. 오바마 대통령은 그때 “조국에 대한 헌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자유를 위한 개인적 희생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였습니다. 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많은 갈등을 빚었지만,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고인과는) 수많은 정상회담을 했으며, 21세기를 향한 양국 관계의 비전과 북한 문제 등에 관해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일본 정부는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그에게 큰 빚은 지고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아마 이렇게 집약될 겁니다. “(고인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납치, 투옥,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투쟁했던 위대한 인물.”(프랑스 일간 <르몽드>)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30년 전에 참혹하게 세상을 뜬 대통령이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부하의 총탄에 절명한 죽음이었으니 더욱 그러했겠지만, 진심이 담긴 추모 성명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그의 죽음을 공식 발표한 직후 이런 한 줄짜리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것도 국무부 대변인 성명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서거를 깊이 애도합니다.” 거기엔 어떤 평가도 추억도 없었습니다. 3시간 전, 그러니까 정부 발표 2시간 전 국무부는 이런 특별성명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어떤 외부 침략도 용납하지 않는 게 미국의 입장.’ 참으로 건조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들의 정서였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음. 그 사이엔 이렇게 깊은 강이 흐릅니다.
만델라가 추구했던 가치는 자유와 평화와 정의였습니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삶은 용서와 화해, 관용이었습니다. 그런 만델라를 두고 최악의 흑백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펼치던 백인정권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처벌했고, 그가 몸담고 있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공산주의를 세뇌시키는 집단으로 매도했습니다. 만델라가 처음 기소될 때 그에게 적용된 법률은 ‘공산주의 활동 금지법’이었습니다. 우리의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법률이었죠. 이후 그를 ‘빨갱이’로 만들려는 공작은 집요하게 계속됐습니다. 1960년 민족회의를 불법단체(우리 식으로는 이적단체)로 규정했고, 1962년 만델라를 불법 국가 탈출(잠입·탈출) 혐의로 5년 징역을 선고했고, 복역중이던 1964년 정부 전복 기도(내란) 혐의로 종신형에 처합니다. 그 시기가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을 앞세워 공포정치를 강화하던 때와 일치합니다. 만델라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아마 빨갱이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항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막히면 종북 혹은 이북! 골칫거리가 등장하면 국정원을 통해 ‘종북몰이’를 하거나, 이북 정보를 악용해 국면 전환과 함께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 후보도 종북으로 몰았고, 선거 부정을 덮기 위해서도 종북 공세를 펼쳤고, 검찰총장까지도 종북으로 매도했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종북 사제단으로 내몰았습니다. 게다가 청와대의 검찰총장 사찰 의혹이 구체화되자 부처간 협의도 되지 않은 북 정보를 터뜨려 궁지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등 북풍 활용에 골몰했으니, 그런 말이 나왔을 겁니다. 북도 실은 이런 정권을 열심히 도왔죠.
이달 초 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에게 “조용할 때 시간 내어 내일이 임기 마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이임사를 미리 써 보시라”고 충고했습니다. 사제들이 매일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듯이, 대통령직도 내일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생각하고 초심대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것입니다. 죽음 혹은 퇴임 앞에서 알량한 자존심과 너저분한 탐욕과 위선,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추모 성명이 기억납니다. “(고인의) 1998년 런던 방문과 그 이듬해 이뤄진 저의 공식 방한 때의 행복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분입니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분들과 한국 국민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박 대통령도 올해 영국을 국빈 방문했던 터이니, 퇴임할 때건 혹은 훗날 영원한 작별에 이르러 이런 추모가 따르길 기원합니다. 그러자면 빨갱이 혹은 종북 조작의 길에서 떠나,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할 겁니다. 장하나 의원의 사퇴 요구를 두고, 마치 유일영도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수하들이 길길이 날뛰는 그런 옹졸한 보스가 되어선 안 됩니다. 선거부정이 있었다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주장입니다. 마디바의 타계가 분열과 공작과 독선과 억압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