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 ‘대탈출’

● 토픽 2014. 3. 4. 13:26 Posted by SisaHan

“안현수 사태, 체육계 뿐만이 아니다”

‘왕국’옛말‥ 개발환경 열악·각종 규제 늘어
본사 외국이전·매각, 각국 지원유혹 ‘탈한국’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를 놓고, 체육계가 비판을 받고 있다. 빙상계의 고질적 부조리에 밀려 결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체육계뿐만이 아니다. 콘텐츠 수출 1등 공신인 한국의 게임사들도 ‘안현수의 고민’에 빠져 있다. 열악한 개발환경과 갈수록 심해지는 게임 규제 때문이다.
심야에 청소년들의 게임시간을 규제하는 ‘셧다운제’에 이어, 지난해 게임을 알코올•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에 포함시켜 관리하자는 ‘게임 중독법’이 발의됐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게임 사업을 펼쳤던 블리자드도 “한국은 게임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회의감을 드러냈다.
 
외국행의 대표 사례가 대형 게임사 넥슨이다. 이 회사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본사를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옮겼다. 자회사 개념인 넥슨코리아가 한국 서비스를 맡고, 도쿄에 상장한 일본 법인이 그룹 전체의 사업을 총괄하는 구조다. 넥슨 김정주 대표는 대구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큰 시장에서 제대로 사업을 펼치고 싶어서 일본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거대 외국기업에 회사를 넘긴 경우도 많다. ‘라그나로크’로 한류게임 1세대를 이끌었던 그라비티는 일본 게임사 겅호로 넘어갔다. 중국의 샨다는 한국 게임사 액토즈소프트와 아이덴티티게임즈를 인수했다. 중국 최대 게임사 텐센트도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 게임사들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소외받은 작은 게임사들을 발굴해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한다.
 
한국 게임사가 중국의 자본을 받고 중국 게임을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무명 게임사 엔에스이엔터테인먼트는 텐센트의 지원을 받아 액션게임 ‘수라온라인’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한국보다 중국에서 먼저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 회사 대표는 “중국에 먼저 진출했지만, 한국에도 서비스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엔 한국 게임을 사서 자국에 서비스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게임사를 통째로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엔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한국 게임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독일 정부는 한국 게임사들이 독일에 와서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영국은 자국에 들어온 한국 게임사들에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영국도 게임을 주력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여기고, 관련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각종 규제에 시달리는 게임업계에 안현수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 이덕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