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 질병찾기 큰 도움
간편조립 무게9g 2천배율

세계화 시대의 이면에는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부의 소수 집중화가 그런 사례다. 기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복잡한 첨단기술을 개발하려면 뛰어난 인재와 함께 막대한 자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첨단기술의 혜택은 선진국 주민들과 상류층에게 한정되기 일쑤다. 기술의 양극화다.
 
이런 갭을 메꾸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아주 단순한 기술로 어떤 복잡한 첨단기술보다 탁월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지 고민한다. 개발도상국 주민들이 현대 과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려면 현실적으로 개도국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런 기술을 그래서 적정기술이라고도 부른다.
 
◆방수 종이와 종이에 박힌 한 개의 전지와 LED 전구가 전부: 미 스탠퍼드대 약대의 물리학 조교수인 마누 프라카시(Manu Prakash)는 복잡한 첨단 기술력이 들어간 값비싼 현미경 대신, 종이를 접어 만든 현미경으로 이런 기술을 구현했다. 이 종이현미경은 제작비가 매우 싸고 성능이 좋아, 개도국 서민들이 말라리아 같은 치명적인 질병 감염 여부를 알아내는 데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폴드스코프(Foldscope)라는 이름의 이 혁신적 제품의 장점은 우선 제작비가 불과 50센트이고, 필요한 재료는 종이가 전부다. 종이 말고 한 개의 전지와 LED 전구가 필요한데, 이 모래알 크기 만한 부품은 종이에 박혀 있다. 또 휴대성이다.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이 현미경의 크기는 가로 70mm, 세로 20mm, 두께 2mm에 불과하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부 전원장치도 필요 없다. 그러니 총 무게가 9g도 채 되지 않는다. 
종이로 돼 있으니 밟아도 망가지지 않고, 3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멀쩡하다. 종이는 방수 처리가 돼 있어 물에 잠겨도 걱정이 없다.
폴드스코프는 그러면서도 2000배율이 넘는 성능을 자랑한다. 이는 1000분의 1mm(1000나노미터)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광학 현미경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로, 폴드스코프는 800나노미터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해상도를 자랑한다. 이는 빈곤층을 겨냥해 2010년에 개발된 휴대용 현미경과 비교해 놀라울 만한 발전이다. 당시 만든 현미경은 휴대폰 배터리를 전원으로 휴대폰에 장착해 써야 했다. 물체 확대능력도 60배율에 불과했다.
 
◆인쇄하듯 찍어내 값싸고 친환경적…7분에 조립 끝: 이런 간편하고 성능 좋은 현미경이 유용한 것은 부유한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질병들이 개도국에서는 무슨 질병인지도 모른 채 방치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낳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된 폴드스코프에는 12종의 모델이 있다. 각 모델은 개도국에 흔하게 발생하는 특정 질병을 찾아내는 데 적합하도록 맞춤형 설계돼 있다. 예컨대 말라리아 모델에는 형광필터가 들어 있다.
종이현미경은 어떻게 만들까. 재료는 아주 작은 LED 전구와 렌즈가 박힌 A4 크기의 종이만 있으면 된다. 이 특별한 종이는 ‘롤투롤’(Roll to Roll) 방식으로 만든다. 롤투롤 방식이란 전자부품을 신문 인쇄하듯 종이나 필름 위에 인쇄하는 것으로, 생산 과정 중에 재료가 거의 손실되지 않고 유해물질도 배출되지 않는 값싸고 친환경적인 기술로 꼽힌다. 완성된 종이에는 각 종이부품별로 절단선이 그어져 있어 누구라도 손쉽게 정확한 정해진 선을 따라 부품을 떼어내 조립할 수 있다. 프라카시에 따르면,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7분이라고 한다.
 
◆하버드대 출신들이 만든 비영리기업, 각종 질환 종이 진단기도: 폴드스코프는 앞서 2012년에는 하버드대 연구원 출신들이 만든 비영리 기업DFA(Diagnostics for All)이 간 질환 종이진단기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이 진단장치는 시약을 발라 놓은 우표 크기 만한 종이에 혈액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변하는 색깔에 따라 간 질환 여부와 정도를 진단할 수 있다. 이 역시 의료장비 접근이 어려운 개발도상국 서민들을 겨냥해 개발한 것이다. DFA는 종이 진단이 가능한 질병 범위를 간뿐 아니라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 등에도 넓힐 예정이다.
폴드스코프는 현재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의료 현장에서 시험 사용중이다. 프라카시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현미경 실전교재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1만명이 이 교재에 자신의 사례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이며, 현재 시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프로젝트팀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자신들을 “우리는 전 세계인의 건강과 과학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과학적 도구를 개발함으로써 과학의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연구팀”이라고 소개했다.
< 곽노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