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금년의 겨울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얼음 폭풍(Ice Storm)이 몰아쳐서 토론토를 암흑 천지로 만들더니 날씨는 어느 때보다 추웠다. 거의 영하에서만 왔다갔다 하고 어떤 때는 영하 20도로 내려가기도 하고 뉴스에서는 한국은 영상 15, 6 도라고 하는데 여긴 아직 영하 10도에서 헤맨다. 지난 주간에는 장례식까지 있어 하관예배를 드릴 때는 모두 코가 빨개질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내가 이민을 온 게 75년도였는데 그 때도 정말 추웠고 늘 눈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온난화란 말이 나오면서 눈도 드물어졌고 날씨도 그렇게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또 온난화설에 양극의 빙산이 녹는다 하여 어떤 면에서는 추위는 그대로 있어 빙산이 녹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추위와 눈바람에 슬슬 넌더리가 나고 있다.
몇 년 동안 캐나다의 겨울 같지 않은 눈이 없는 포근한 날씨에 아내가 예전의 캐나다의 설경이 그립다고 노래를 했는데 그 그립다는 눈이 폭설로 바뀌고 쉼 없이 쏟아지는 눈에 질리기도 했다. 집 앞의 눈을 치우기도 힘이 들자 아내가 회개(?)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내가 공연히 옛날의 겨울 어쩌고 하며 떠들었구나 하고.
그런데 아직도 춥다. 어느 날 함께 동역하는 정목사님이 내게 “봄은 언제 옵니까?”하고 물었다. 나 또한 글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 겨울 두 계절 밖에 없었던 캐나다. 언제부터인가 사계절이 있었는데 올 겨울은 옛날 캐나다의 날씨 같아 봄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봄은 오는가? 물론이다. 조금만 있으면 한 두 달만 있으면 계절의 움직임은 틀림없이 봄을 오게 하고야 만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옛사람에게도 동일하여 대춘부를 쓰기도 했다.
어느 분의 글에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하고 썼다. 봄은 이처럼 누구나 기다린다. 그것도 겨울이 추울수록 더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 봄 타령을 하는 것은 오늘의 기독교회가 너무나 혹독한 추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TV에서 오르내리는 목사와 교회들의 이야기를 읽고 들을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다. 교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태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교회는 과거 어느 때 겪지 못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책임은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에게 있다.
목회자의 눈으로 볼 때 이 겨울은 너무 춥고 또 앞으로 얼마나 길게 주어질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의 봄은 달력과 계절의 바뀜과 함께 틀림없이 돌아오지만 교회가 기다리는 봄은 달력과는 상관없다. 그러나 봄은 온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바람이 불 때 나타나는 역사이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얼음짱 같은 우리의 마음이 녹으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할 것이며 과거의 잘못된 일들을 뉘우치는 통회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대춘부가 교계에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추운 겨울을 탓하지만 말고 하나님의 마음이 교회를 향해 훈풍을 주시면 얼마나 감사하랴.
진정 봄을 기다린다. 계절의 봄이 아닌 기독교의 부흥을.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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