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0일 국가정보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가정보원의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따져 50년 역사에서 세 번째 압수수색이라고 한다. 겉으로만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를 평가해줘야 할 상황인데, 안을 들여다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지난달 14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사건의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위조일 리 없다”며 국정원을 감싸고돌았다. 이틀 뒤엔 기자회견까지 열어 위조 의혹이 불거진 문서 3건은 모두 중국 정부기관이 발급한 것이라고 했다. 수사 초기 결정적인 한 달을 흘려보낸 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철저한 검찰 수사와 국정원의 협조”를 지시하자 그제야 압수수색에 착수한 것이다. 한 달이나 시간을 벌었는데 증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범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뒷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정원이 갖다준 문서가 위조됐는지 의심할 만한 계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검찰은 그저 법원에 전달하는 배달부 노릇만 했다. 검찰은 지난해 국정원이 문서를 전달하기 전 외교경로를 통해 문서를 요청했다가 중국 쪽으로부터 “발급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두 달 뒤 국정원이 바로 그 문서를 검찰에 냈다. 검찰은 자기들이 정식 외교경로를 통해 얻지 못했던 중국 공문서를 국정원이 어떻게 입수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위조된 것임을 알면서도 검찰이 수사를 진행했다면 국정원과 함께 증거조작의 공동정범이 되거나 최소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위조된 걸 몰랐다면 검찰은 대공사건에서 국정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받아쓰기 수사’만 해온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검찰은 이미 국정원이 벌인 일을 뒤처리하다가 깊은 내상을 입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이 쫓겨나고 수사팀이 징계를 받았다. 검찰은 국정원의 하인이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더 이상 국정원에 끌려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을 계속 비호하다가는 검찰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결국 검찰이 살 길은 철저한 수사와 진실규명뿐이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씨는 국정원이 고정적으로 관리한 비중 있는 인물이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서 자금이 지원됐음을 알 수 있다. ‘윗선’이 알았을 개연성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 윗선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증거조작에 연루된 대공수사팀은 물론 대공수사를 지휘하는 국정원 2차장과 남재준 원장이 문서 위조를 알았는지, 이후에 보고받지는 않았는지 밝혀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