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4일 ‘소형 무인기 추락 사건’을 공동으로 조사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청와대가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공동조사 제의를 대남 선전전으로 보고 말려들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상황을 좀더 진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남북이 함께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서면 실체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도 있고, 서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악화일로의 남북 경색 국면을 뚫고 나갈 기회를 열 수도 있다. 북한의 제안을 내치기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의 공동조사 제안이 정부의 분석대로 심리전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제안의 형식과 내용으로 가늠해볼 때 나름의 무게가 있어 보인다. 북한은 14일 하루에만 두 차례 공식기구를 통해 우리 정부의 무인기 조사 결과에 적극 반응했다. 특히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직접 나서 발표를 반박하며 공동조사를 제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또 진상조사의 남쪽 대표로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을 특정하고 “북남관계를 악화시키는 장애물을 제거할 의사가 있다면 공식석상에 나와 문제해결에 당당히 임하라”고 말했다. 공동조사의 상대를 구체적으로 지명한 것을 볼 때 북쪽의 제의를 단순한 선전공세로만 보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범죄 피의자가 범죄 수사의 증거를 조사하는 일은 없다”며 단칼에 거부했다. 지혜로운 대응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실 이번 무인기 사건은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가 새로 드러나지 않는 한 추정만 남긴 채 미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11일 무인기 사건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방부는 정황증거만 내놓고 직접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국방부는 무인기에 내장된 지피에스(GPS)의 복귀 좌표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해독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 지피에스를 해독한다면 사건을 해결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북한이 공동조사에 참여해 지피에스 해독을 함께 한다면, 사건은 의외로 깨끗하게 정리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아가 무인기 사건 공동조사를 계기로 삼아 남과 북이 서로 접촉면을 넓힌다면 그 자체로 남북 경색을 완화하고 대화의 문을 여는 구실도 할 수 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 때도 남쪽에 공동조사를 제의한 바 있다. 그때 남쪽이 북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조사에 동참시켰다면, 그 뒤에 벌어진 남북간·남남간의 엄청난 소모적 갈등을 처음부터 완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악재는 대응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호재로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북한의 무인기 사건 공동조사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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