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사단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진실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금이 간 저수지의 둑이 이제껏 터지지 않고 있었다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진실 말이다. 우리 병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둑과 같이 위태로웠다. 이렇게 보면 2011년 해병 2사단의 총기난사 사건 이후 3년 동안 병영에서 대형 사건이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임 병장 사건은 한국군 병영의 갈등 구조가 조직 전체를 붕괴시키는 시한폭탄이 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하나의 비상벨일 뿐이다. 전방에서 소대장과 중대장을 지낸 한 예비역 장교는 “솔직히 요즘 병사들이 무섭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며 심적 고충을 토로한다.
한국군은 간부 위주의 선진 군대와 달리 징집된 병사 위주의 조직이다. 이들은 똑같은 제복을 입혀 외형적으로는 단일 집단의 구성원으로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학벌 갈등, 성별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도 있지만 가장 큰 갈등은 빈부 갈등이다. 이를 관리해야 할 부사관이나 소대장도 병사들과 같은 또래의 경험 없는 20대로 그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관심병사만 문제가 아니라 ‘관심 간부’도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군대 내 약자나 부적응자를 상대로 하는 신종 ‘왕따 놀이’가 판을 친다. 기수문화라면 자다가도 일어난다는 해병대조차 ‘기수 열외’란 악습을 전통으로 삼는 걸 3년 전에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전방의 생활관에서는 사흘만 따돌림을 당하고 가혹행위를 겪으면 잠을 설치며 헛소리를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매일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임계상황을 넘어서면 인간 본성에 잠복한 야수성이 폭발한다.
많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과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전방의 군부대에서 지난 3년간 용케도 대형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랐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장병의 외출, 외박, 휴가, 음주가 제한되었으며 간부들의 골프와 회식도 금지시켰다. 전쟁 중에도 휴가는 갈 수 있는 법이다. 가장 기본적인 일상조차 빼앗긴 지난 두 달을 장병들은 ‘암흑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찬물도 남이 뿌리면 더 시린 법이다. 조용히 일상을 유지하면서 자발적으로 추모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조여붙이는 건 군 수뇌부 위신을 세우기 위한 권위적 조처들이지 추모와는 거리가 멀다. 이로 인해 형성된 불만의 용암은 가장 얇은 지각을 찾아 분출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22사단이다.
병영의 부조리마저 애국심으로 포장하면서 장병 기본권 증진을 위한 병영의 안전장치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던 게 지난 보수정권 7년이었다. 참여정부 시절의 병영문화 개선 대책이나 장병 기본권 증진 기본계획은 육군 장성들의 반발로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장병들이 사회에서 오염된 사상에 물들었다고 생각하는 군 수뇌부는 신세대에게 국가관과 애국심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교화와 징벌의 사고 위에서 움직인다. 그들은 사회가 망쳐놓은 국민교육을 완결하는 최종 교육기관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모든 책임을 관심병사 개인 또는 사회 탓으로 전가하면서 병영의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는 적절히 은폐한다. 정작 인성검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는 그런 군의 고급 간부들이다. 그들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간부 위주의 군 인력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국방개혁 목표를 확실히 견지했더라면 이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관심 간부’들의 굴절된 애국심이야말로 철저히 검사받아야 할 인성들이다.
< 김종대 -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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