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위기를 말하면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죄와 적그리스도의 공격에서 위기를 맞고 있음을 말했다. 기독교회사에 있어 위기가 늘 있어 왔음을 기억하고 오늘의 위기에도 극복하고 이겨야 함을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적 진단을 하려고 한다. 사람의 몸이 약해지면 추위나 더위도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작은 감기라 생각한 것이 폐렴으로 발전하고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질병을 이겨 낼만한 건강하지 못한 육체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어떤가? 실제로 다양한 적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가 아닌 것 같다. 지금 교회의 모습은 아직 공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또는 공격이 있다 해도 능히 이긴다는 자기 과신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유는 아직도 교단간의 파벌 싸움이나 교회 내의 부패상을 진단해 보면 뻔한 이야기가 된다. 생각해 보라. 전쟁이 일어나는데 부부싸움 또는 정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교회는 이런 허약한 체질이 됐는가? 그동안 한국 교회를 보면 어느 정도 감지가 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성장 위주의 교회로 교인만 많으면 목회의 성공으로 생각하여 작은 교회를 무시하고 대형교회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질을 쳤다. 그래서 전도가 아닌 사람을 끌어오기만 하면 금반지를 주고 세탁기를 주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형교회가 한국 교회를 망쳤다는 말이 있겠는가?
대형교회의 모습도 그렇다. 한 대형 교회의 목사님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이 그 교회에 부임할 때 4만 명의 교인이라 들었는데 부임하고 보니 1만5천명 정도였다고 했다. 이 말은 이사를 갔거나 다른 교회로 옮겨도 자존심 때문에 재적수에 그냥 두고 허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한국 기독교인 수가 천만 명 이상이라 했으나 지금 반 토막이라는 말도 있다.
성경공부를 했지만 이론적으로 그리고 이성과 논리 위주의 공부였지 말씀에 감동하여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과거 교회는 말씀 앞에 설 때 눈물과 함께 대 각성 그리고 회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사경회와 부흥회를 통해 회개의 운동이 크게 넘쳤다. 그런데 부흥회는 프로 부흥사들이 강단 위를 펄쩍펄쩍 뛰는 재주나 성대묘사 같은 것으로 마치 극장 쇼를 보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말씀의 시간이 코메디의 한 부분과 같았고 그런 사람들이 인기 부흥사였으니 성도는 어찌 되었겠는가?
회개가 그리 쉬운가? 말씀에 깊이 뛰어들지 않으면 결코 회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목회자들이 회초리를 들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모습을 본다. 자성의 모습이라 보이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어찌 한 두 마디로 교회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저런 결과로 목회자에게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되겠는가? 하는 그런 마음이 부흥회를 한다고 되겠는가? 부흥회? 그냥 교회 행사로 때우기도 하고 모이지도 않을 부흥회를 뭣 때문에 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보신주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목회자나 성도가 모두 허약한 체질이니 어찌 외부에서 들어오는 박테리아를 막겠는가? 그러니 교회당 문에 신흥이단이라 말하는 신천지 교인이 교회에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부치는 것으로 막아낼 줄 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질병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방문에 걸어놓고 우리는 건강합니다 하는 식이 아닐까? 도무지 질병에 대한 면역성을 지닌 건강한 교회가 아닌 것 같다.
이쯤에 이르러 우리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탄식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한국교회야 한국교회야 하고 부르짖는 것 같아 참으로 괴롭다. 이제 우리는 각성을 하고 감람산으로 올라가 기도하고 누군가 앞장을 서 골고다에서 희생의 번제를 드려야 할 것이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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