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결국 ‘오히’(oxi:반대)를 선택했다. 그것도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압도적 표차의 반대였다. 국민투표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채권단과의 재협상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 그리스 국민이 추가 긴축안을 무난히 받아들이리라 예상했던 채권단은 허를 찔린 꼴이 됐다.
지난 5년의 긴축 프로그램이 남겨준 암울한 현실은 그리스 국민으로 하여금 더 이상의 긴축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 주된 배경이 되었다. 채권단의 요구대로 연금과 임금을 삭감하고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은 5년 새 국내총생산(GDP)이 25%나 쪼그라든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반대표가 많았다는 사실은 긴축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특히 55%까지 치솟은 청년실업률은 올해 18살이 돼 첫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의 80% 이상이 반대표를 던지게끔 했다.
이제 그리스 사태는 재협상 여부를 둘러싼 새로운 차원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일단 공은 채권단 손에 넘어간 상태다.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독일 중심의 원칙론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나, 그리스 국민의 분명한 뜻이 드러난 만큼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긴축안을 밀어붙이긴 어려울 것이다.
국민투표 부결로 주도권을 잡았다고는 해도, 그리스 쪽 사정 역시 결코 녹록지 않다. 그리스는 당장 20일 국제통화기금한테서 빌린 35억유로를 갚아야 한다. 유럽중앙은행의 긴급유동성 지원이 동결될 경우, 그리스 은행들은 파산하고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그리스 은행이 보유한 현금은 고작 5억유로에 불과해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스 사태와 관련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은 국민투표 실시 이전보다 오히려 훨씬 더 커졌다고 보는 게 옳다. 어쩌면 그리스의 비극은 유로화 도입으로 얻은 소중한 기회를 내실을 키우는 쪽으로 살리기보다는 단지 빚을 내서 거품의 열매를 즐기는 데 허비해버린 원죄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6월 국내 7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한달 새 9조원이나 증가했다. 2010년 이후 월간 기준 최고치다. 그리스 사태가 극심한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이 겹친데다, 메르스 사태라는 악재마저 발목을 옥죄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냉철히 되새기며 만전의 대비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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