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행정은 국가의 일, 입법은 정부의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은 국가를 관장하기 때문에 법 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행정수반’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와 유승민 몰아내기 압박을 받아, 여당이 자신이 제출한 법안에 의결을 포기하는 삼권분립 중단 사태를 보면서 그의 말이 생각났다. 이명박 정권 시절 박근혜 의원이 마치 야당 후보인 양 부각되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듯이, 이번에는 유승민이 소신 정치인으로 부각되면서 정치판은 온통 새누리당 이야기로만 넘쳐난다. 그런데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법 표결하자고만 여당에 호소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뭉개고 여당이 입법부 일원임을 포기하는 ‘비상사태’에도 야당은 의회정치의 파수꾼이라는 칭찬을 받고 싶을까?


한국의 헌법 제8조 1항에는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 한국에는 여당 하나의 ‘정당’만 존재할 수 있고, 대항 정치세력은 국가권력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지난 70년 중 60년 동안 이 나라를 다스린 집권여당은 국가정당이라 불러야 좋을 것이다. 즉 국가의 안보와 경제를 ‘책임진다는’ 그들은 국가정보원, 검찰, 사법부, 헌법재판소, 대형 로펌, 관료조직의 일방적 지원 속에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엄청난 과오나 부패가 폭로될 경우 당의 명칭을 바꾸거나 대표선수를 신속히 교체하면서 집권을 해 왔다. 한편 야당은 분단 전쟁의 제약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도 특정 지역을 근거지로 할 수밖에 없으며, 일관된 이념도 정책도 당원도 없고, 지역사회의 근거지도 갖지 못한다. 야당은 오직 국가정당의 실정에 편승하는 대중 불만의 반사적 그릇에 가깝다.


그런데 이 국가정당인 여당도 오직 이해관계로 뭉친 패거리 집단에 가깝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보수정당이던 한민당 수준의 정책도 없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속은 텅 비어 있다. 결국 ‘통치’니 ‘행정’은 있어도 정치는 없고, 정치는 단순한 권력투쟁과 같은 용어가 되었다. 친박, 친노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들이 그걸 보여주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고 선거가 무의미한 요식행위라는 말은 아니다. 국가정당인 집권당이 대선에서 지면, 그들은 그동안 100% 먹던 것 중 30%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좌파 세상’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앞두고 그들이 먼저 전쟁을 준비한다.


국가는 성안과 성밖으로 구분되어 있고, 성 위에는 망루까지 있다. 망루와 성밖은 치외법권 지대다. 성 바깥은 이미 성장과 효율의 이름으로 대기업이 골목까지 다 장악했고, 조폭 출신 용역이 노조원을 두들겨 패도 경찰은 구경만 하는 무법천지다. 망루에서는 안보의 이름으로 불법과 부패가 자행되지만 야당은 그것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야당이 겨우 성을 차지해도 망루와 성밖 세상은 그들을 흔들어댈 것이다. 망루에서는 물대포를 쏘아대며, 새 성주는 ‘좌파’라고 공격할 것이고, 성밖의 시장 사람들은 우리는 죽을 지경인데 저 사람들은 고상한 말만 떠든다고 아우성을 지를 것이다.


야당은 선거를 앞두고 성안의 중도를 잡겠다고 ‘경제 정당’임을 자임하고, 전방 시찰을 하면서 안보세력임을 과시한다. 물론 야당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국가정당이 되어 안보와 경제 문제에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야당의 안보는 망루를 더 튼튼히 하는 안보가 아니라 이웃 성과의 평화와 화해를 제시하는 안보여야 하고, 망루의 불법과 부패와 맞서 싸우는 안보여야 한다. 야당의 경제는 성을 허물고 나와 성밖의 사람들이 생존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경제여야 한다. 그들이 집권당과 동일한 안보, 경제 프레임 속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성을 차지할 수 있을까? 요행히 성을 차지해도 세상이 달라질까?
국가의 품격과 지탱가능성이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기댈 곳은 야당밖에 없기에 다시 묻는다. 정말 성을 차지하려는 마음이 절실한가? 왜 성을 차지하려 하는가?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