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화해는 좋은가?
그렇지 않다. 평화를 위한 화해가 있는가 하면, 평화를 가장한 화해도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진정한 화해는 정의로운 평화를 향한 전환점이어야 한다.
1984년 9월22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베르됭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70여년 전 프랑스군 55만명, 독일군 43만명이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전쟁이 있었던 장소에서 화해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참혹한 전쟁이었던 만큼 어렵던 화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원한 적’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은 더 이상 전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미테랑과 콜이 마주 잡은 손은 평화를 위한 화해였다.


하지만 이들의 화해는 서유럽 중심의 화해였다. 프랑스가 리비아에 공습을 퍼부어 카다피 정권의 마지막 숨줄을 끊을 때 독일은 프랑스 편이었다. 이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를 향해 서서히 팽창해 나가는 데도 협조했다. 최근 그리스 사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유럽 안에서도 약소국에 긴축을 강요하고 부담을 전가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는 그들만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아베 정부와 화해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등을 미는 오바마 미국 정부에 적극 순응하는 모습이다.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안에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추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화해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 답을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 결정에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사실이 명기되지 않은 채 그 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쇼카손주쿠가 세계유산 1484-005로 등록이 되는 데 한국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요시다 쇼인이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펼치고, 대동아공영론의 토대를 제시한 곳이다.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 아래 존왕양이를 주창한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그 이론이 실천되도록 한 도장이다. 한국의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의 사상적 모태가 세계유산이 되었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없었다.


요시다 쇼인은 19세기 중엽 막부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자 “취하기 쉬운 조선과 만주, 지나를 복종시키고, 열강과의 교역에서 잃은 국부와 토지는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이런 주장은 서구 열강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던 일본의 일시적 책략이 아니었다. 일본 국체론의 불가결한 일환이었다. 삼한을 정벌했다는 진구(신공)황후와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황도를 밝게 하고 국위를 신장한” 인물로 칭송하며, 한국을 정벌하는 것은 떨어진 국위를 선양하여 황도를 밝히는 것으로 이론화했다.
아베 정부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사상적 근원지를 메이지 산업혁명 유적에 끼워넣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역사의 반역을 감행했다. 박근혜 정부는 강제노역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이 문제만을 부각시켜 오히려 더 본질적 문제인 쇼카손주쿠를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는 아베 총리,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모시는 일본 우익에게 바치는 공물인가. 박근혜 정부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아베 총리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싸우라고 부추기는 오바마 대통령에 부응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북아 안정을 위해 화해해야 할 북에는 손을 내밀고 있지 않다.
전쟁을 위한 화해를 도모하고, 평화를 위한 화해를 도외시하는 것은 역사적 죄악이다.

<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