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거대한 3개 국가가 세계를 분할 통치하는 시대. 이들 3개 강국은 화평이 아닌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유지한다. 안보장사로 정권을 유지하는 독재의 모델이다. 특히 초강대국 오세아니아는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위협하는 대형 포스터가 거리마다, 건물마다 내걸려 총구처럼 노려본다.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이 장치돼 개개인의 내밀한 삶을 24시간 샅샅이 감시한다. 심지어 인적이 드문 숲속이나 들판에도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다. 공중에는 수시로 헬리콥터가 배회하며 건물 안까지 들여다 본다.
거리마다 사상경찰이 돌아다니고, 반체제 인사는 고문을 통해 새로운 순응인간으로 개조해 버린다. 사람들의 본능인 성욕까지도 국가가 통제한다. 결혼과 섹스의 단 한가지 목적은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기 위해서 일 뿐이다. 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의 뜻에 맞지 않으면 문서나 신문, 녹음, 영화 등 과거의 모든 기록을 수시로 삭제하고 조작한다. ‘진리부’‘평화부’‘애정부’‘풍부부’ 등 4개의 정부 부서는 그 반대의 일을 하는 기관들이다. 진리부는 과거를 조작하는 일을 맡고, 평화부는 전쟁을 수행하는 부서다. 애정부는 사랑과는 상관없는 법과 질서를 규제한다. 풍부부는 경제를 담당하지만, 허황된 수치로 경제성과를 떠들면서도 백성을 굶주림으로 내몬다.
이쯤 서술을 들으면 대개 짐작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이야기다. ‘빅 브라더’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감시하며 조종하는 유리알 세상. 참으로 숨이 막히고 끔찍한 인간 말살의 감옥이고 지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쯤 거론하면 또 웬만큼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흔히 인터넷 감시나 전화도청이 횡행하고 거리마다 CCTV가 설치 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위협받는 현실이라는 일반론적인 추세의 상황묘사에 그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거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온 국민의 사이버와 모바일 생활을 전방위로 구석구석 훔쳐보고 있다는 무서운 정황이 폭로된 것이다.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개발업체가 최근 되레 해킹을 당해 유출된 ‘고객’정보들로 인해 국정원의 ‘빅 브라더’ 유령이 양파껍질처럼 땅 위에 그 음험한 꼬리가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이 국제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는 ‘육군 5163부대’라는 위장명칭으로 해킹업체와 거래한 내역들을 보면, 구입의혹이 있는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RCS)’은 그 위력이 공포 그 자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모든 인터넷 활동은 운영체제나 플랫폼, 암호화 등 어느 방호시스템에도 전혀 지장없이 실시간 들여다 보고 원격조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종류는 달라도 셀폰, 즉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 역시 드물다. 앉으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걸어 가면서나 버스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나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바야흐로 만능기기 그 자체가 돼버린 내부에 온갖 정보가 담겨있고, 개인과 개인의 소통과 관계, 그들만의 속삭임과 은밀한 거래들까지, 사람들의 언행과 성향과 그가 가진 모든 정보들이 담겨 오고가는 통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기관이 이 통로를 당사자도 모르게 장악하고 세세하게 감시를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을 걸어 잠근 자기 집 안방에 앉아 옷을 입고 있어도 알몸을 투시당하고, 사진 찍히고 손가락질의 표적이 되는, 한마디로 광장에 발가벗겨진 원숭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것도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니, “바로 나” 라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은 더구나 2012 대선 당시 야당후보를 댓글 비방하는 선거공작으로 지탄을 받고 원장이 사법처리 당한 순간에도 해킹업체와 접촉해 스마트폰 도청용 불법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추진했다니, 그 저의와 철면피가 놀라울 뿐이다. “해외·대북 정보용”이라고 변명하지만, ‘국내용’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국가와 국민 안보에 진력하기는 고사하고 국민을 감시하는 데 거의 ‘무데뽀’ 수준이라면, 과연 누구를 위해 왜 존재하는 기관인지, ‘빅 브라더’를 꿈꾸는 독재정권의 앞잡이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국정원 말고도 경찰과 군기관 등의 수상한 사이버 감시장비 확충이 잇달고 있다니, 이들 기관들이 국가나 국민을 받드는 게 아닌 정권을 위한 공작기관이라면, 정권과 함께 하루속히 사라져야만 국민들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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