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No!

● 교회소식 2016. 2. 20. 21:09 Posted by SisaHan

캐나다, 혹은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키울 때, 하지말라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가르친다. 혹 잘못된 행동을 보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무엇을 어떻게 잘못 했는지를 설명해 주고 어떻게 해야한다고 가르친다. 반복되는 설명에 아이들은 점차 이해를 하게 되고 올바른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No!” 보다는 “gentle!” 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물건을 집어 던진다거나 격한 반응을 보일 때도 “gently!”가 입에 붙어 있다. 우리 한국 부모들은 “안돼!” “그러면 못써!” “그렇게 하지마!” 를 주로 사용한다. 부정적인 단어는 인성을 거칠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안된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가르쳐 주어야 창의력도 발달되고 올바른 사회생활에 대한 의식이 심어지게 된다.


성경에서는 구약의 율법이NO라면, 신약의 말씀은YES다. NO의 의미는… 아니다, 안돼, 부정하다, 찬성하지 않다는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통상 ‘안돼’라는 의미로 우리는 사용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법은 하라는 것보다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수록하고, 위반하면 벌을 받게 된다고 명시된 것이다. 구약의 법은 거의가 해서는 안되고, 어기면 벌을 받게 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신약은 율법에 억매인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의 ‘하라’는 말씀으로 거의 채워져 있다. 예수님께서 하라는 것은 선택하라는 것이다. ‘안돼’가 아니다. 태초에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가장 좋은 선물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이다. 애덴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심으시고 따먹으면 “안된다” 하지 않으시고, 따 먹으면 “죽으리라”고 하셨다. 인간에게서 선택을 빼앗아 버리면 인간이 아니라 로보트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지 않으셨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누려야 할 여덟가지 복을 말씀 하실 때에도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을 받는 일인지를 설명하여 주셨다. 완전한 우리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신 것이다.


헌법에는 세상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지켜줘야 함을 명시해 두었다. 법은 최소한 사회생활에서 이웃에게 피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규제다. 개인의 사생활까지 ‘된다’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어린 생명들을 떼거리로 바닷물 속에서 죽게 만든 직접적인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세월호 선장의 대법원 공판장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선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유도 말이 되지 않지만, 이젠 하다 하다 못해 옷도 어떤 색상은 “안돼!” 라고 한다면, 이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자신들의 종으로 착각하는 웃지못할 사건이다. 국민들이 뽑아 준 국회의원들 입에서 “내 뜻에 반대하면 북한을 찬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도 북한을 따라가는 건가? 나라를 대표하며, 국민을 위하여 일 해야 할 대통령도, “이러면 안된다.” “이렇게 해야만 된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하고 있다.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의 국가의 일원이다. 된다 않된다는 내가 결정한다. 답답한 마음에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조물주가 주신 선택권이 있다는 말이다. 서로 존중해 주고 서로 사랑하자 !! “NO!” 보다는 “YES!!” 하는 우리가 되어 보자.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