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질서 훼손"? 독립성 망가뜨리고 적반하장
최재해 "대통령 국정 지원하는 기관" 충성 맹세
"기능 마비"? 최재형 중도 사퇴 때도 마비 안 돼
"문재인이 임명"? 공석 메운 것…기대 철저 배신
조은석은 '친민주'라 원장 대행 맡으면 안 된다?
검사 27년…심지어 노무현 서거 때 대검 대변인
최재형이 임명 제청…당시 청와대는 김오수 요구
탄핵 오히려 늦은 감…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제1야당이 이제야 감사원장에 대해 탄핵소추라는 칼을 빼든 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독립적‧중립적 헌법기관이어야 할 감사원이 복구가 가능할지 의문일 정도로 망가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하자 감사원 측은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극렬 반발하고 있다.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라 직무에 관한 독립된 지위를 가졌음에도 특정 정권과 유착해 '정치 감사' '하명 감사'에 매달려온 감사원이 바로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는 적반하장일 따름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감사기관이지만, 헌법 해석상 직무와 기능면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감사원 본연의 기능이 행정부 감시·견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위를 망각한 채 감사원이 특정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면 이는 '살아있는 권력'의 부패와 권한 남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감사원법 제2조(지위)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
②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용, 조직 및 예산의 편성에 있어서는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최재해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밝혀 감사원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종속적 인식을 충성 맹세라도 하듯 과시했다. 아울러 최 원장의 묵인‧방조 아래 실세인 유병호 사무총장(현 감사위원) 역시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가 들통나는 등 감사원 수뇌부와 대통령실과의 밀착 관계는 정권 초부터 일찌감치 드러난 바 있다.
감사원이 정치검찰과 마찬가지로 현 정권엔 애완견, 전 정권엔 사냥개 노릇을 하다 보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감사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점검 특정감사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감사 ▲KBS 위법·부당행위 국민감사 ▲방송문화진흥회의 MBC 방만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해태 관련 국민감사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직무감찰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 감사▲문재인 정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고의 지연 의혹 감사 등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표적‧청부 조사에는 전력을 기울인 반면, ▲대통령실·관저 이전 국민감사는 감사 기간을 일곱 차례나 연장하며 질질 끌다가 '스크린 골프장' 건물을 누락하고 감사위원회 회의록 공개도 거부하는 등 축소‧은폐로 일관했다.
전 정권과 야당을 향한 감사의 경우 유병호 사무총장과 그의 친위대인 '타이거 사단'은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마저 '패싱'한 채 사무처 마음대로 독단적 감사 착수 및 중간 발표에 나서는 위헌‧위법적 행태를 상습적으로 반복해왔다.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감사권 남용은 수사 요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최근엔 사드 배치 지연을 이유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고위직 인사 4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해당 감사는 극우보수 단체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의 청구를 빌미로 시작된 것이었다.
최재해 원장이 탄핵 되면 감사원 기능이 마비되고 국민 피해가 클 것이라고 대통령실과 감사원 측은 호들갑을 떨지만, 이런 감사원은 차라리 일을 안 하는 게 낫고 감사원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도 원장 직무 정지가 불가피하다는 게 다수 국민의 뜻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최재형 감사원장이 임기를 6개월이나 남겨 둔 상태에서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했던 전례도 있다. 이로 인해 감사원은 4개월 동안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됐지만 감사원 기능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공석이 된 자리를 메우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에 후임 감사원장으로 지명한 인물이 바로 최재해 원장이다. 최 원장이 '문재인 사람'도 아닌 데다, "엄정하고 공정한 감사 운영을 통해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직사회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던 당시 청와대의 지명 사유도 철저히 배신한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을 탄핵하느냐"는 여권의 반발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심지어 수구보수 언론들은 "최 원장이 탄핵소추를 당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조은석 감사위원이 원장 대행을 맡게 되기 때문에 문제"라는 희한한 논리까지 개발해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감사원법에 따라 최선임 감사위원이 권한대행을 맡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법적 절차임에도 문재인 정부 때 서울고검장을 지낸 조은석 감사위원은 '문재인 사람'이고, 그러니 '친민주당 성향'이라서 부적합하다는 얘기다.
정권 호위부대로 전락한 감사원의 중립성‧공정성 와해가 최 원장 탄핵 추진의 본질이지만, 이들 언론 보도에는 그런 문제의식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오직 정권과 동일한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 사람이 감사원을 이끌면 안 된다"는 우격다짐만 내세울 뿐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관계에서부터 허점투성이거나 말이 안 되는 궤변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미 지난해 6월 감사원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결과 발표를 억지로 밀어붙일 때도 <친야 감사위원들, 막판까지 '전현희 구하기' 시도>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통해 조은석 감사위원을 '친야(親野)' '친민주당 성향'으로 지목한 바 있다.
조선일보스러운 아전인수이자 속임수다. 검찰 출신인 조 위원은 2021년 1월 최재형 감사원장이 신임 감사위원으로 임명을 제청해 감사원에 들어온 인물이다. 당시 최재형 원장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에 임명 제청해달라는 청와대 측의 강력한 요청을 '정치적 중립성' 등을 이유로 거부하며 9개월간 갈등을 빚다 조 위원을 영입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그래도 코드가 맞는 김오수 전 차관을 감사원에 입성시키려고 했으나, 감사위원 제청권을 가진 최재형 원장이 김 전 차관의 친정권 성향을 문제 삼아 끝까지 반대하면서 계획이 좌절되고 마지못해 조 위원을 수용했던 것이다.
즉, 조 위원을 형식적으로 임명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내용상으로 조 위원은 '문재인 사람'이 아니라 '최재형 사람'이었다. 27년 간 검사로 일했던 조 위원은 자신이 검찰에 재직하면서 1998년 당시 집권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구속기소하고, 2003년엔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이광재·여택수와 후원자인 썬앤문 문병욱 회장, 노무현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신계륜 의원, 김대중 대통령 아들인 김홍일 의원 등 수많은 민주당 측 인사를 수사해 기소했으며, 2012년 순천지청장 재직 때는 진보 진영 장만채 전남교육감을 기소한 사실 등을 스스로 소개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인사 불이익을 당해 좌천됐다고 한다.
조 위원은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대검찰청 대변인이었다. 그러니 '친민주당 성향'이라는 분류에 어이가 없었던 조 위원은 해당 조선일보 보도가 나왔을 때 감사원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특정 시점의 인사 내용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모든 고위직 공직자는 전 집권당 성향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최재해) 감사원장을 비롯한 감사위원 전원은 전 정부에서 임용됐다. 조선일보에 제보한 사람의 기준대로라면 모두 전 정부 집권당 성향이라고 평가돼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동기이자,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 대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며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거의 모든 국정 분야에 걸쳐 총체적 난국"이라고 비난했던 이미현 감사위원도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조 위원이 전현희 권익위원장 감사 등에서 최재해‧유병호 체제에 맞섰던 것은 자신이 친민주당 성향이어서가 아니라 "헌법기관에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막무가내로 자행하는 데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원 최달영 사무총장은 2일 언론을 상대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최 원장 탄핵 추진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히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검찰을 흉내 낸 집단행동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예정대로 이날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최 원장 탄핵안을 보고하고 4일 표결 처리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이창수 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 최재훈 반부패 2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안도 동시 추진된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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