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민심 받들어 내란범 철저히 단죄하라"
"국회 승리 축하 넘어 본격적인 투쟁 돌입하자"
중3 학생 "윤석열 탄핵보다 더 높은 목표 세워야"
23~27일 매일 저녁 헌재 앞 '윤석열 파면' 집회
헌법재판소 앞은 혹한에 아랑곳없이 파란 풍선과 '윤석열을 파면하고 구속하라'고 쓰인 빨간 손팻말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다. 1주일 전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1주일 만에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헌법재판소에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을 노도의 함성으로 촉구했다. 이들은 응원봉과 풍선으로 영하 3도의 추운 날씨를 녹이며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내란범을 철저히 단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7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헌재의 탄핵 결정 때까지 계속될 '윤석열 탄핵 만민공동회'를 대대적으로 개막했다.
촛불행동은 21일 오후 4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20차 촛불문화제 12월 전국집중촛불'을 개최했다. 시민들은 집회 장소 건너에 있는 도로까지 가득 메워 탄핵 열기에 불을 지폈다.
먼저 탄핵소추안 가결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국촛불행동 김민웅 상임대표는 "비상계엄의 시간을 이겨낸 우리가 앞으로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탄핵을 성공시켰다. 뜨겁게 환호하고 박수치자. 무엇보다 응원봉을 들고 온 청년들을 환영하며, 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쁨의 환성을 지르자"고 집회의 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100일은 더 복잡한 정세가 펼쳐질 수 있다"며 "탄핵 가결의 기쁨은 넘어가고 이제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직무는 정지됐지만 윤석열은 제2의 음모를 꾸밀 시간을 벌고 있다. 내란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에 대해 내란죄 외에 '외환유치죄'를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외환유치죄란 외국과 통모해 대한민국에 대해 전단(전쟁의 시작)을 열게 하거나 외국인과 통모해서 대한민국에 항적하는 죄를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국회의원은 외환유치죄에 대해 "내란죄보다 치명적인 죄가 외환유치죄"라며 "외부로부터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북한을 자극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려고 한 것도 외환유치죄"라고 했다.
이어 "김용현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집중적으로 북에 무력 충돌을 유도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하면 몇 배로 응징한다고 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면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과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청주촛불행동 이해성 공동대표는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한덕수 권한대행은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내란특검법과 김건희특검법도 거부권 행사를 하겠다는 예고"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란에 동조하고 가담한 모든 자들을 철저히 단죄하고 내란을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며 "윤석열과 김건희를 그대로 두면 다시 내란을 시도할 것이다. 또 '내란의힘'이 된 국민의힘은 반드시 해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럴 경연대회 시간도 있었다. '대학생진보연합 노래 동아리'와 '영등포 물주먹'은 캐럴을 개사해서 "윤석열, 김건희 없애줘야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노래를 불렀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도 함께 따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후 시민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자신을 '중학교 3학년'이라고 소개한 학생은 "윤석열 탄핵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며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서로를 알아가고, 인정하고, 보듬어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해 시민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자신을 '평범한 시민'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이제는 국민의힘이 부끄러워해야 할 때"라며 "헌법재판소에 부탁한다. 피로 쓰인 민주주의와 견고하고 신성한 법을 더럽히지 마라"고 말했다.
한편 촛불행동은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매일 오후 7시에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토요일인 28일에는 121차 촛불집회가 열린다. < 민들레 김민주기자 >
촛불집회장 건너편에까지 시민들이 모여 있다. 2024.12.21. 이호 작가
영하 11도 속 헌재로 간 30만명 외침…“상식적 판단 믿습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상식에 맞는 판단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24살 이나래씨)
“재판관님들도 국민이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일 거잖아요. 잘 결정하시리라 믿어요.”(65살 김아무개씨)
“빨리 탄핵이 되면 좋겠어요.”(14살 이준호군)
끝이 보이지 않는 행진 인파 사이에서 헌법재판소를 바라보며 각기 다른 일상을 살아 온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기대와 바람을 전했다. “탄핵” “파면”을 외치는 구호가 케이팝과 함께 한겨울 서울의 찬공기를 갈랐다. 교통 체증에 갇힌 버스를 타고 있던 시민들은 창을 열고 손을 흔들었고, 길을 걷던 시민은 멈춰서서 사진을 찍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범시민대행진)에 시민 30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여들었다. 국회 앞에서 탄핵안 가결을 이뤄낸 시민들은 1주일만에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걸으며 윤대통령의 조속한 탄핵과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기쁨도 잠시, 지난 한 주 이어진 윤대통령과 여당,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모습에 대한 분노가 거셌다. 다만 다채로운 깃발을 들고 새참을 나누고, 각자 만든 손팻말을 흔들며 “유쾌하게 이기겠다”는 마음만은 잊지 않았다.
이날 행진에 앞선 집회 무대에 오른 강솔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윤대통령은 담화와 변호사 기자회견을 통해 끊임없이 갈라치기를 시전하고 있다”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은 더이상 책임회피를 하지 말고 내란 특별법 공포 와 헌법재판관 지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와 압수수색, 헌법재판소의 문서 송달에 전부 불응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행은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내란사태에 대해 국민의힘의 사과 또한 없었다.
행진에 참여한 김아무개(52)씨는 “탄핵안 가결이 된 상황에서도 수사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아 화가 더 난다”고 했다. 박아무개(53)씨는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의 벌인 일에 사과는커녕 아직도 이해득실만 따지는 국민의힘에도 화가 난다”며 “이 기회에 보수 세력이 재정비해서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이날도 간식과 먹거리, 방한용품, 공간을 나누며 거리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집회 현장에는 여지없이 ‘방구석 베짱이 연합’, ‘후딱 탄핵하고 잠이나 자고 싶은 시민 연합’ 등 다채로운 깃발이 나부꼈다. ‘마스크 무료나눔’ 손팻말을 든 김아무개(25)씨는 “춥고 독감이 유행하는 데다 얼굴을 가리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 마스크를 나누러 나왔다”며 “윤 대통령이 서둘러 탄핵 돼 민주주의가 바로잡혔으며 좋겠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사들은 ‘무지개떡’을 나눴고, 산타 복장을 한 청년 노동자들은 과자가 담긴 선물 꾸러미를 전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적선현대빌딩 1층에 있는 추모공간 ‘별들의집’을 이날 영유아와 보호자들의 쉼터로 꾸몄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란의 밤 느낀 공포, 그 앞에 함께 싸운 시민 모습을 떠올리며 ‘탄핵 이후’에도 이어져야 할 민주주의 모습을 생각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옵티컬 농성장에서 고공 농성을 했던 소현숙씨는 “계엄선포를 보고 당장 끌려내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고 무서웠다”며 “윤석열을 탄핵하는 건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애인 위유진씨도 집회 무대에 올라 “국가에 의한 갑작스런 폭력은 중증 장애여성인 나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그날 밤 망설임 없이 국회 앞 달려간 시민들 덕분에 나는 지금 여러분과 함께 여기 살아있다”며 “탄핵은 경유지이지 종착지가 아니다. 모든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싸우자”고 했다.
행진 대열은 저녁 6시께 헌재를 지나 명동에 도착했다. 어느덧 어둑해진 거리에서 집회 참여 시민과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응원봉이나 손팻말을 준비하지 못한 채 행진 대열을 만난 시민들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파이팅해야지’ 등 케이팝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윤대통령의 탄핵, 그를 통한 다채로운 민주주의 회복을 함께 요청했다. < 한겨레 정인선 김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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