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집회에서 목격한 것...윤석열의 난과 프레임 전쟁
< 조성식 통찰 >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호송차를 타고 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유성호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이로써 윤석열의 난은 두 달이 채 안 돼 진압됐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상식과 비상식, 이성과 음모론, 법치와 불법의 프레임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고, 그것이 조기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안갯속처럼 불투명하다.
현장에서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믿음과 신념만이 중요했다. "강력하게 확립된 프레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사실은 무시되고 프레임은 유지된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 실감 났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점거해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행사한 극우파는 사실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진실과 동떨어진 특정 프레임 속 신념은 세상에 해악을 끼칠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체포가 진행된 최근 한 달여 동안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한남동 집회 현장을 자주 찾았다. 취재를 위해 보수와 진보(편의상 이렇게 구분하겠다) 양쪽 다 둘러보는데, 보수 쪽 주장을 접할 때마다 절감한 것이 프레임의 위력이다.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뉴스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현실인데, 반대로 뉴스가 현실을 구성하기도 한다. 대중이 느끼는 사회적 현실은 미디어의 프레임, 미디어의 언어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미디어 프레임의 위력이 실로 엄청나다.
토드 기틀린은 프레임을 "인식, 해석, 표현, 선택 및 강조의 지속적인 패턴"이라고 규정하며 "뉴스 생산자들이 언어나 시각적 수단을 써서 담론을 구성해 간다"고 말했다. 언론의 색깔이나 정체성은 프레임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게 바로 프레임이다.
많은 언론 매체가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명백히 드러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고, 관련 증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 강력한 프레임은 '비상계엄=내란'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구성해 대중에게 그 사태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각인시켰다.
이에 맞서 일부 우파 매체, 극우 유튜브 등은 내란이라는 범죄적/실존적 현실을 외면하고, 내란 우두머리가 꾸며낸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내세워 비현실적 현실을 구성하려 했다. 국가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자 개표 조작 등 대규모 부정선거가 벌어졌고, 그 결과 탄생한 거대 야당의 폭주가 국정 마비를 빚었다는 게 골자다.
컴퓨터 게임 속 세상처럼 일종의 가상현실인데,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국회를 침탈한 비상계엄이라는 초현실적 사태에 충격을 받은 일반 국민에게는 뜬구름 잡는 얘기였다. '제1 공적'인 야당 대표야 그렇다 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와 대통령과 갈등 관계인 여당 대표까지 체포해 군부대 지하 벙커에 가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주요 인사들을 '수거'하려 했던 계엄 시나리오는 무협 판타지였다.
다행스럽게도 극우의 망상이 빚은 어설픈 친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종종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던 여느 프레임 전쟁과는 달리 승패가 쉽게 결정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레이코프의 말대로 프레임은 지속적이고 강력하다. 체포영장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법리 논쟁이 격해지면서 보수우파의 결집도가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거기에는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당 대표를 내쫓고 불법 수사 프레임으로 사태의 본질을 가리려는 집권여당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선동이 한몫했다.
가상현실로 현실 대체하려는 비논리적 프레임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1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우파 집회 현장에 중국의 부정선거 개입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조성식
집회 현장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여 있다. 윤석열이 체포되던 1월 15일에도 어김없이 한남동으로 달려갔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보수/우파의 구호와 절규가 미명의 도심 거리를 뒤덮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대형 현수막에 붙은 중국 비난 구호였다. '중공 부정선거-가짜 국개 간첩, 내란 세력 민주당을 체포하라'. 중국 공산당의 약자로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 쓰던 '중공'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신기하고, 부정선거와 중국을 연계하는 것도 놀라웠다. 음모론자들은 선관위 설명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 선관위 직원들을 중국의 간첩으로 여긴다. 국회와 더불어 선관위가 계엄군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된 이유다.
이 같은 음모론은 내란 우두머리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체포 직후 공개된 그의 자필 편지는 '부정선거'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헌법재판소에 낸 2차 답변서에는 부정선거의 배후에 민주당과 중국이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객관적 증거도 없이 제1 교역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니, 반국익 반민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부정선거론과 더불어 보수/우파 결집의 기폭제이자 원동력은 반이재명 정서다. 각종 비리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범죄자'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구국'의 신념이다. 실제로 집회 현장에서 "탄핵 무효"보다 더 많이 나오는 구호가 "X재명 구속"이다.
프레임 전쟁에서는 단순 무식한 구호가 우세하다는 분석이 있다. 이재명 불가론은 거칠기 짝이 없는 비논리적인 프레임이다. 사실에 근거한 내란 프레임과 달리 신념으로 가공된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특정 후보 불가론으로 현직 대통령의 계엄 내란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가리려는 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논점 일탈 오류의 전형이다. 해가 안 보여 날이 흐리다고 얘기하는데, 달이 뜨면 밝아진다고 말하는 격이다. 게다가 이 대표의 대선 출마 여부는 현재가 아니라 몇 달 뒤에나 결정될 일이다. 가상현실로 현실을 대체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현실적 프레임이 보수층과 일부 중도층에 먹히는 게 현실이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1심에서 의원직 상실과 피선거권 박탈의 유죄 선고를 받았기에 이 프레임은 대선 때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성이나 내란 비판과는 별개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1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우파 집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난하는 트럭이 등장했다.조성식
갈등과 혼란 부채질하는 양비론 언론
스멀스멀 작동하기 시작한 언론의 양비론은 갈등과 혼란을 부채질한다. 대형 정치적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보수 편향, 진보 편향, 중도 세 가지로 분류된다. 사실에 평가가 곁들여진다.
그런데 이번 계엄 내란 사태는 워낙 사실의 위력이 압도적이어서 평가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보수 대 진보라는 전형적 대립 전선이 흐트러진 이유다. 언론은 불법적인 비상계엄과 내란 비판에 거의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애써 참고 있던 양비론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수사권 논쟁, 체포영장 적법성, 국가기관 충돌 불가론, 거야 폭주론, 국격 하락론, 대통령제 개헌론, 민생 우선론 등은 충분히 제기할 만한 이슈였다. 일부는 논리도 안 맞고 사실도 아닌 엉터리 의제지만, 일부는 비판적 관점에서 짚어볼 만했다. 반론 차원에서 다뤄야 할 내용도 있고.
하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현직 대통령의 내란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위중한 상황에서 이 같은 논쟁을 중대하게 다루거나 대등한 비중으로 보도하는 건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불공정 보도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 비례와 균형이라는 보도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양비론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언론보도의 원칙에 부합하기도 한다. 문제가 되는 건 무분별한 양비론이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과 균형성, 형평성에 대한 맹목적 기계적 해석 때문이기도 하다.
중립이란 대등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거나 대립할 때 한쪽으로 편향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양쪽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예컨대 어떤 매체에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내는데, 내부의 일부 기자들이 왜 이재명 비판은 그만큼 안 하냐고 따지는 것은 중립이나 균형, 형평과는 거리가 멀다.
이 같은 오류는 정치적 표적 수사에 대한 보도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모든 죄는 걸린 죄다. 조국과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지독한 표적 수사와 과잉수사, 먼지떨이 수사, 별건 수사는 수사 내용과 별개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검찰 수사의 문제점과 범죄 혐의를 대등하게 다루면서 검찰이나 이재명이나 똑같이 문제라고 기계적 양비론을 펼치는 건 비례와 균형 원칙에 맞지 않는다. 원인을 외면하고 결과만 논하는 본말전도의 오류이기도 하다.
정파적 양비론부터 걷어치워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외교ㆍ안보 분야 주요현안 해법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체포와 관련해 수사기관과 경호처에 내린 지시도 이에 해당한다. 법원에서 내준 영장 집행을 가로막는 경호처와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려는 수사기관을 대등하게 취급하면서 충돌 방지를 강조했다. 나아가 유혈사태 발생 시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최 대행의 발언 취지는 이해하지만, 전형적인 양비론으로 매우 무책임한 태도다. 국가기관 간의 충돌이 아니라 불법과 법치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이는 강도와 경찰 양쪽에 평화적 해결을 주문한 꼴이다.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피 한 방울 내지 말고 베어가라는 포셔의 판결처럼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시사 유튜브 '조성식의 훅'에서 조국 사건 당시 검찰의 수사방식을 집중 비판하자 "조국의 특권층 비리를 감싸는 거냐"는 취지의 댓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방송에서 분명히 조국 부부의 잘못을 짚고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말했는데도, 수사방식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니 비리를 옹호하는 태도로 비친 모양이다.
최근 체포영장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과 그의 변호사들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자 이번에는 "왜 이재명에 대해서는 그런 비판을 하지 않느냐"는 댓글이 붙었다. 양비론 프레임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양비론은 정파성의 위장술이기도 하다. 정파성은 말 그대로 특정 정치세력에 우호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다. 유리한 보도는 키우고 불리한 보도는 줄이거나 없앤다.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 건 물론 매체의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놓고 그렇게 보도하는 건 눈치가 보이니 양비론으로 본심을 감추거나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정파성 못지않게 보도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경영 프레임이다. 언론사 수익 구도를 좌우하는 재벌그룹과 대기업의 보수/우파적 성향은 프레임 설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제도권 언론사 대부분이 이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향후 수사와 탄핵 국면에서 각 매체의 프레임이 좀 더 선명해지고 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의 본령은 사실 보도와 진실 추구다. 하지만 사실의 경중과 보편적 가치를 따지지 않는 기계적 양비론으로 접근한다면 진실은커녕 사실에서도 멀어질 것이다. 갈등이 수습되는 게 아니라 반목과 대립이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여야의 권력 다툼 프레임에서 벗어나 민주와 독재,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고 이른 시일 안에 나라의 안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정파적 양비론부터 걷어치워야 한다. < 오마이 조성식 통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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