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심의위, 예상 뒤엎고 "구속영장 적정" 의결

경호처장 막무가내 싸고돌던 정치검찰 큰 타격

"재범 우려 없다" 등 매번 황당 이유로 기각시켜
계엄 연루 비화폰 통화 내역으로 들통날까 봐?
'팔이 안으로 굽는' 결정해왔던 심의위도 "부당"

고심 끝 '탁월한 선택'한 경찰, 곧 네 번째 영장
김성훈 구속되면 경호처 압수수색도 다시 시도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22. 연합
 

김성훈 경호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세 번이나 기각했던 정치검찰이 의외의 일격을 맞았다.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가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의결한 것이다. 영장심의위는 2021년 설치된 이후 경찰 손을 들어준 사례가 단 1건에 불과했다. 그만큼 이례적인 결과가 나온 것으로, 검찰의 김 차장 비호 행태가 워낙 터무니없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결정을 해왔던 영장심의위마저 철퇴를 내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경찰로서는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다.

 

영장심의위는 6일 오후 2시부터 약 4시간 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출석 위원 9명 중 6명의 찬성으로 대통령 경호처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의결했다. 위원들은 이날 쟁점에 관한 검찰과 경찰 양측의 의견을 들은 뒤 질의응답과 위원 간 논의를 거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특히 경찰에서는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 3명이 출석해 김 차장 등의 증거인멸 우려를 적극 설명했다고 한다. 담당 서부지검에서는 부부장검사 1명, 평검사 1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심의는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지 않고 기각했을 때, 형사소송법에 따라 관할 고검에 설치된 심의위에서 검찰의 처분이 적정했는지 심사하는 제도다. 전국 6개 고검에 20∼50명의 위원 후보단이 구성돼 심의 신청이 있을 때마다 고검장이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위원을 선정한다. 교수·변호사‧언론인 등 외부 위원들로 꾸려진 심의위는 통상 위원장 포함 10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의결에 참여하지 않는다.

 

김 차장 등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고 경호실 직원들을 상대로 비화폰 관련 기록 삭제를 지시하거나 부당한 인사 조치를 한 혐의(특수공무집행 방해 및 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경찰 특별수사단 측은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고 증거인멸 우려도 크다며 구속 필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해왔으나, 서부지검 측은 "재범 우려가 없다" "특수공무집행 방해 여부에 다툼이 있다"는 등 매번 황당한 이유를 들어 김 차장과 이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각각 세 차례와 두 차례 기각 또는 반려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5.1.31. 연합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수족 역할을 하는 김 차장을 악착같이 감싸며 방패 노릇을 하는 배경을 두고 검찰 수뇌부가 여전히 '용산' 눈치를 보고 있거나, 비상계엄 연루 사실이 비화폰 통화 내역을 통해 들통날까 봐 철저히 은폐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 제기돼왔다. 내막이 뭐가 됐든 계엄 사태의 전모를 밝히려면 '마지막 퍼즐'인 비화폰 서버 조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정치검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내란 세력에게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던 상황이다.

 

검찰은 공수처의 압박도 받고 있었다. 공수처가 김성훈 경호차장 영장 기각과 관련해 고발된 심우정 검찰총장 사건을 수사 부서에 신속하게 배당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지난달 27일 심 총장과 이진동 대검 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고, 공수처는 일주일도 안 된 지난 5일 이 사건을 수사4부(부장 차정현)에 배당하며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검찰이 윤 대통령 영장 청구와 관련한 허위 답변 의혹을 이유로 지난달 28일 공수처를 압수수색하자 이에 대한 반격의 성격도 있었다.

 

그럼에도 요지부동이던 검찰은 영장심의위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 차장 측도 안심하고 있다가 뜻밖의 결정에 크게 당혹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영장심의위가 설치된 뒤 4년간 총 15건이 심의됐지만 경찰 요구대로 '영장 청구 적정' 결과가 나온 것은 2021년 광주고검 심의위 사례 한 건뿐이었다. 특히 서울고검 영장심의위는 10건 모두 경찰이 신청한 영장이 부적정했다고 의결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검찰 기대를 '배신'한 것이다.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도를 저지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된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이 18일 오전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에서 2차 조사를 받기 위해 수사관들과 이동하고 있다. 2025.1.18. 연합

 

지난 1월 19일 김 차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래 검찰의 납득할 수 없는 수사 방해 행위로 속을 끓이던 경찰은 지난달 24일 구속영장 심의 신청이라는 우회로를 택함으로써 결국 돌파구를 만들어냈고 조만간 네 번째 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검찰도 이번에는 회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부지검 측은 "심의위원회 결정을 존중하고 후속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의 영장 발부로 김 차장이 구속되면 비화폰 서버 확보를 위한 경호처 압수수색도 다시 시도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의 결론은 그동안 검찰의 구속영장 신청 거부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똑똑이 보여준다"며 "김성훈 차장은 경찰의 압수수색에도 제출하지 않은 '비화폰 불출대장' 내용 일부를 검찰에 제출해 짬짜미 의혹을 자초했다. 이 같은 행태는 검찰이 내란에 가담한 증거를 감추려는 목적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당장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면서 "검찰이 계속 내란 수사를 방해한다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전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