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 장애인 혐오, 그 입으로 '노무현 정신' 운운
약자 편 섰던 희망, 그 가치의 '절도'이자 정치 마케팅
외로워도 옳은 길 간다? 자기모순부터 바로 잡아야

 

 말 잘한다는 이준석 후보의 언행을 보면 정치가 연극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최근 그의 언행 가운데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목은 단연 "노무현 정신"을 운운한 발언들이다. 이 발언은 철저히 계산된 정치적 기획이며 '이미지 세탁'이다.

 

5월 23일 2차 TV토론의 마지막 멘트에서 이준석 후보는 "진정한 노무현 정신이 어디 있나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이 노 전 대통령의 계승자인 듯한 어조였다. 얼마전 주 유세에서는 "노무현 바람이 광주에서 시작됐다"며 자신도 ‘정치 신화’를 쓰고 싶다고 했다. 봉하마을을 참배해 고등학생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장학증서를 받았던 일화까지 소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2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시민이 노 전 대통령 사진을 보고 있다. 2025.5.22 연합

 

겉으로만 보면 감동적인 ‘정치적 스토리텔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자가당착의 극치이다. 노무현 정신을 들먹이는 이준석 후보가 실제로 어떤 정치를 해왔는지 먼저 살펴보자.

 

그의 이번 선 1호 공약에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포함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를 막기 위해 퇴임 직전까지 노력했던 인물이다. 여성가족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신설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확대 개편한 부처였다. 이준석은 이 부서를 없애겠다고 가장 먼저 외쳤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노무현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다. 이준석 후보는 수차례에 걸쳐 여성, 장애인, 사회적 약자를 향해 조롱과 폄훼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기보다 오히려 젠더갈등을 선동하여 일부 젊은 남성 지지층의 분노를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해온 인물이다. ‘능력주의’를 가장한 사회적 서열주의 정치는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노무현은 늘 약자의 편에 섰고,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묶는 정치를 실천하고자 했다. 반면 이준석은 철저히 분열의 정치를 해왔다. 노무현은 “타협 없는 원칙”을 말했지만, 이준석은 원칙 없는 독선으로 일관했다. 오죽하면 '리틀 윤석열'이라는 조롱까지 들을까.

 

29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난 뒤 한 시민이 자신의 마음이 담긴 문구가 세겨진 종이를 들며 화장장으로 떠나는 장례행렬을 지켜보고 있다. 2009.5.29. 연합

 

그러면서도 그는 “노무현의 '외로워도 옳은 길을 가겠다'”는 소신을 자신도 따르겠다고 말한다.  정말인가? 

그가 진심으로 노무현의 외로움을 이해한다면, 그는 지금 국민의힘에 있을 수 없다. 노무현이 정치 생명을 걸고 반대했던 3당 합당, 그 지역주의 야합의 산물인 민자당이 바로 오늘의 국민의힘이다. 이준석은 그 당의 대표를 지냈고, 지금도 그 틀 안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

 

나는 궁금하다.

"이준석은 진정 노무현을 흠모하는가, 아니면 모욕하고 있는가?"

노무현을 팔아 자신의 비호감을 희석시키려는 이준석의 전략은 치졸할 뿐 아니라 유권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의 비호감도는 이미 70%를 넘었고, 이제는 노무현의 이름마저 '정치 마케팅 도구'로 소비하고 있다.

 

노무현 정신의 핵심은 원칙과 통합, 약자 보호다. 이준석의 정치 스타일은 그 반대편에 있다. 그의 ‘노무현 팔이’는 단순한 이미지 세탁이 아니라 가치의 절도, 철학의 모독이다. 정치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철학 없는 말은 거짓이고, 거짓은 결국 드러나게 돼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24일 서울 동작구 한 한식 뷔페식당에서 공시생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2025.5.24. 연합

 

진정으로 노무현을 계승하고 싶다면, 첫걸음은 하나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라.

 

노무현이 지키려 했던 가치를 자신이 파괴하겠다는 자기모순부터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더는 노무현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 노무현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이준석 후보의 ‘정치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약자들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 장정수 언론비상시국회의 집행위원, 전 한겨레신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