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내란, 정치의 재건을 위한 과제

 
 
지난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탄핵 투표가 가결된 뒤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이정민

내란이라는 야만의 시간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 1년이 지났다. 내란의 주범들은 법정에 세워졌고, 특검 수사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모든 게 잘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이명박과 박근혜도 그렇게 법의 심판을 받고 형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야만은 달랐다. 이미 탄핵 이전부터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책동이나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저항도 놀라운 일이지만, 내란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은 피의자와 피고인들의 비협조와 고의적 재판 방해 행위로 마치 법 기술의 화려한 쇼를 보는 듯했다. 법원의 이해하지 못할 영장 기각도 이어졌다.

지난 1년은 마치 10년 동안 발생했을 법한 다양한 사건 이슈가 이어졌지만 무엇 하나 개운한 게 없다. 국민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내란을 보며 불안하고 초조하다. 최고의 법 전문가들이 자행하는 무법국가적 현실은 차라리 경이롭기조차 하다. 이 무법의 아수라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오늘 대한민국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놀랍고 불안한 정치과정을 맞고 있다. 내란의 밤 이후 1년,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다.

세 갈래의 시민주의

지난 1월 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및 체포를 촉구하며 집회를 연 시민들. 한겨울 눈보라와 강추위에도 보온용 은박 담요를 몸에 두르고 시위를 이어간 모습이 키세스 초콜릿을 닮아 화제가 되었다.정혜경의원실


긴 내란 정국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출구를 가리던 올해 초, 새해를 맞으며 나는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을 내란의 카오스에서 반짝이는 세 갈래의 시민주의에서 찾고자 했다.

첫째는 'MZ세대의 시민주의'다. MZ세대는 스펙 쌓기와 경쟁에 길든 '신자유주의의 아이들'로 여겨져왔다. 능력에 기반한 공정을 내세우는 이 세대의 가치는 오로지 자기만을 향해 있었고 역사와 공동체와 민주주의는 남의 일이었다. 서사를 잃어버린 세대이기도 했다. 바로 이 세대가 윤석열의 내란에 저항하며 빛나는 응원봉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서사를 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아이들'이 '윤석열에 대한 저항집단'으로 바뀐 놀라운 변신이야말로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둘째는 '군대의 시민주의'다. 우리 군은 정치주의와 파벌주의에 물들었던 어두운 과거를 안고 있다. 민주화 이후 군의 정치적 중립이 당연시되었지만 대한민국 국군이 '시민의 군대'로 거듭날 계기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 긴박한 내란의 밤에 민주화 이후 우리 군에 아주 제한적이나마 내면화된 시민주의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계엄군의 시민주의가 정치군인의 헌법 질서 파괴 행위를 지연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다. 제복 입은 시민의 시민주의는 어쩌면 내란이 준 선물일지 모른다.

셋째는 '노조의 시민주의'다. 우리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계급주의와 정파주의에 갇혀 시민적 연대를 확장하지 못하거나, 조직 노동의 제 식구 챙기기로 미조직 노동이나 취약계층과의 연대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의 시대인 1990년대 이후 시민사회의 조직 기반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노동조합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조직된 시민으로 남았다. 비상계엄의 밤, 노동조합은 국회를 방어하기 위해 가장 민첩한 동원을 시도했고 탄핵 과정에서 광장은 언제나 전국의 노동조합으로 채워졌다. 노동조합의 조직된 시민주의가 내란과 탄핵의 밤을 밝혔다.

공론장의 극단적 분열

내란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야당과 정치세력화된 종교, 극우화된 세대들이 혐오와 증오를 쏟아내는 등 공론장이 분열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체포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정민


내란의 반동과 빛의 혁명이 뒤엉킨 각축장에서 세 개의 시민주의는 빛났다. 그로 인해 우리 민주주의는 살아났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내란 이후 1년,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무엇보다 광장의 시민이 벼랑 끝에서 지킨 민주주의에 내재한 제도적 허약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했다. 금과옥조의 명언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최후의 보루'로 그친 민주주의를 상상하진 않았으리라.

12·3 비상계엄을 국회가 막은 후 국회 정원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대한민국 국회'라는 표지석이 놓였다. 몇 번의 정부에 걸친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을 거치면서 우리 민주주의는 벼랑 끝에서 '최후의 보루'가 지킨 '최후의 민주주의'가 되고 말았다. 광장의 시민이든 계엄군에 포위된 국회든 최후의 보루가 지킨 최후의 민주주의야말로 가늘고 위태롭게 서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언제까지 차가운 광장에 선 시민의 힘으로 지탱되어야 하나?

내란 이후 1년, 우리 민주주의는 거대한 제도적 공백을 경고하고 있다. 해방 80년, 대한민국은 성공한 민주주의의 나라로 평가되고 있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선거판'과 '국회'와 '광장'에서만 요란하게 아우성치는 얄팍한 제도에 머물러 있다. 두터운 대화와 소통을 뒷받침하는 제도 없이 안정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최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보다 더 불안한 현실은 내란 심판 방해와 지체를 떠받치고 있는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극단적 분열이다. 야당은 대놓고 윤석열과 '부정선거론'을 옹호하며 적반하장의 '법치'를 주장하는 후안무치를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자신은 구치소에서 온갖 유치한 구실로 재판출석을 거부함으로써 지지자들에게 의도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재판정에서는 이른바 '법꾸라지들'의 그릇된 가치와 비뚤어진 신념이 활개를 치고, 윤석열의 입에서는 아이들이 들을까 무서운 상스러운 막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광장에는 야당, 정치화된 종교세력과 극우화된 세대들이 극단의 혐오와 증오를 쏟아내고 있다. 합리적 소통은 사라지고 혐오와 무시가 들어선 곳에 '반쪽의 공론장', '자폐적 공론장'으로 변질된 소셜 미디어가 있다.

정치의 도덕성의 파괴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지난 11월 19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중요임무종사 재판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윤석열의 내란 이후 극단의 공론장에서 보편적 시민주의가 소멸하는 현실을 보며 나는 무엇보다도 '정치의 도덕적 형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넓은 의미의 정치는 공동체의 목표를 추구하는 공적 합의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입법부의 의회정치와 행정부의 관치, 사법부의 법치가 포함될 뿐만 아니라 제도정치와 공론장의 정치를 포괄한다. 따라서 정치는 공동체의 모든 질서를 포괄하는 가장 상위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정치질서는 '도덕적 형식'이 갖추어짐으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 나아가 공동체의 존립을 보장받는다. 도덕적 형식 없는 정치는 맹목적이고 위험한 권력일 뿐이다. 내란 이후 우리 정치에는 정치를 지탱하는 도덕적 형식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의 도덕적 형식은 '공적 이성'이다. 정치철학자 롤스(John Rawls)가 '중첩된 합의'(overlapping consensus)라고 표현한 공적 이성(public reason)은 개인적 욕망과 이익이 철저히 배제된 공공성이야말로 정치의 도덕적 기본이자 정치적 정당성의 근본이란 점을 말해준다. 윤석열의 국정파괴와 내란은 공사의 구분에 눈감았다. 국정은 무속과 취향으로 사유화되었고, 정치종교의 공개적인 정치 개입과 극단의 혐오정치가 공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책임윤리 저버린 정치

정치의 또 다른 도덕적 형식은 '책임의 윤리'다. 정치사회학자 베버(Max Weber)는 정치는 권력이라는 악마와 손잡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정치인의 자질로 신념의 윤리와 함께 책임의 윤리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의 국정은 국민과 역사와 영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반(反)책임의 정치'였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도 참사, 채상병의 죽음에 책임의 윤리는 찾을 수 없었다. 내란 재판과 특검의 수사에서도 모든 책임을 여당의 '입법 독재' 탓으로 돌리는, 책임윤리가 사라진 파렴치한 정치의 극단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정치의 도덕적 형태는 '인정의 윤리'다. 독일 철학자 호네트(Axel Honneth)는 인정의 세 형태로 사랑, 권리, 연대를 들고, '무시와 모멸'을 인정을 위한 저항과 투쟁의 원천으로 든다. 개인과 집단과 사회에 대한 인정의 윤리는 민주정치의 도덕적 기초다. 윤석열의 정치는 하나에서 열까지 국민과 야당에 대한 무시와 모멸로 가득 차 있었다. 헌법 질서와 사법 절차의 무시는 정치의 도덕적 기초로서 인정의 윤리 없는 무도한 정치의 전형을 보였다.

공론장과 시민사회에도 무시와 모멸, 혐오와 증오의 정치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정치의 도덕적 기초는 무엇보다 인정의 윤리에서 나오는 약속, 용서, 화해와 같은 형식이 되어야 한다. 내란 이후 우리 정치에서 인정의 윤리라는 도덕적 형식은 사라졌다.

2025년 대한민국에 정치의 도덕률이 무너졌고 보편적 시민주의가 해체되었다. 게다가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는 지체되고 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신념이 지배하는 두 국민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공공의 이성과 책임의 윤리, 그리고 인정의 윤리라는 정치의 도덕적 형식이 해체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가공동체의 근본이 사라진 위태로운 나라가 되고 말았다. 내란을 단죄하고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를 회복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무너진 정치의 도덕적 형식을 복원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정치의 도덕적 형식 복원을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정치의 도덕적 기초를 세우고 보편적 시민주의를 일으키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래서도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가지 과제를 떠올려 본다. 무엇보다도 내란세력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일이야말로 그들로 인해 무너진 정치의 도덕적 형식을 세우는 일이다.

MBC의 최근 조사(11월 21~22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58%가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내란이 종식되었다고 응답한 사람(29% )의 두 배다. 속도감 있는 내란종식이야말로 가장 빨리 정치의 도덕률을 세우는 길이다.

다른 하나의 과제는 정치의 도덕적 형식과 보편적 시민주의를 세우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는 일이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국정의 도덕적 형식에서 보수정부에 비해 우위에 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진 역대 민주당 정부의 국정은 평화, 포용과 혁신, 균형과 자치를 지향한다. 공공이성과 책임, 인정의 윤리라는 도덕적 형식에서 우위에 있는 셈이다. 도덕적 형식의 우위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주도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정치의 도덕률을 세우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민주주의 4.0 시대를 열어야 한다. 내란 1년을 맞아 보편이 무너진 시대의 우울을 안고 끝나지 않은 내란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 조대엽 선우재 대표 >

 
 

'빛의 혁명' 1년, 아직 어둠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

 

계엄의 공포가 온몸 깊숙이 파고 들어온 그 밤
시민들이 끝내 국회를 지켜낸 그 기적의 새벽

학살과 계엄으로 이어져 온 기득권 세력의 본질
작동하고 있는 법기술 파시스트들의 방탄 논리

되살아나고 있는 극우 공세와 반혁명의 그림자
빛의 혁명 완수를 향한 여전한 연대의 필요성

 

정확히 1년 전이었다. 12월 3일의 밤공기는 유난히 차가웠지만, 그날 우리의 뼛속을 파고든 한기는 성큼 다가온 겨울 때문만이 아니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의 첫 감정은 분노가 아닌 ‘공포’였다.

 

국가보안법 구속 전력이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계엄령은 만만찮은 죽음의 공포로 다가왔다. 이것이 성공하고 나면 1950년 보도연맹 학살 때처럼, 나중에 나도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떨려왔다. 심장이 곤두박질쳤고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저함과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으면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절박감 속에서 뒤늦게 국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적을 보았다. 수많은 시민이 맨몸으로 군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돌아가라”고 외치는 그 거대한 분노의 물결 속에서 나의 개인적 공포는 집단적 용기로 변화했다.

 

새벽녘, 기적적으로 계엄 해제 소식이 들려왔을 때 우리는 환호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전쟁과 학살로 폭주하던 열차를 멈춰 세웠다는 안도감 뒤편으로,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2024.12.4. 연합
 

어떤 이들은 1년 전의 사건을 윤석열 개인의 술 취한 객기나 우발적인 판단 착오로 치부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윤석열의 쿠데타는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의 DNA 깊숙이 새겨진 특징에서 비롯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 카르텔은 태생부터 ‘학살’과 ‘계엄’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이승만은 단독정부로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제주도와 여순에서 계엄령을 내리고 자국민을 학살했으며, 박정희는 탱크를 앞세워 5.16 쿠데타로 헌정을 짓밟았다. 전두환은 광주의 피바다 위에서 제5공화국을 세웠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꺼내 든 해결책은 언제나 ‘계엄’이라는 재앙적 카드였다.

 

1년 전 윤석열 정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총선 참패, 지지율 추락, 김건희 특검법 압박 등 사면초가에 몰린 그들에게,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 내에서의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선배 독재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 바로 ‘총과 칼을 동원한 판 엎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날 밤, 국민의힘 당사와 족벌언론의 편집실과 고급 아파트와 권력기관의 사무실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기득권 세력들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윤석열의 성공을 기대하고 응원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만약 야당 지도부가 머뭇거렸다면, 이 땅은 1980년 5월보다 더 참혹한 죽음의 피바다와 전쟁터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민주주의, 인권, 기후정의, 소수자 권리 등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그날 밤 이후에 탱크 바퀴 아래 짓이겨졌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자, 우리가 겪을 뻔한 미래였다. 따라서 이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온 시민들과 "국회로 모여달라"고 호소하며 생방송을 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당 지도자들은 분명 민주주의를 지켜낸 주역들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들의 사전 경고와 대비, 신속한 대응과 연대가 없었다면 ‘빛의 혁명’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혁명은 절반에서 멈춰 섰다. 쿠데타의 주동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처벌받아야 할 자들이 도리어 큰소리를 치고 있다. 왜 우리는 승리했음에도 심판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답은 ‘법기술 파시스트’들에게 있다. 12.3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 기득권 세력은 전술을 바꿨다. 총칼이 실패하자 그들은 다시 ‘법전’을 무기로 들었다. 검찰과 사법부의 꼭대기에 똬리를 튼 엘리트 법조 카르텔은 기상천외한 논리로 내란범죄자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확정 판결 전까지 내란은 내란이 아니다', '죄인 줄 모르고 저지른 범죄는 죄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법리적 해석의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사법부와 검찰 자신이 12.3 내란의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공범’이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윤석열과 그 일당을 처벌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법기술을 이용해 내란범죄자들에게 방탄조끼를 입혀주고 있다.

 

조희대 사법부는 심지어 순직 해병 특검팀이 요구한 구속 영장의 90%를 기각했다. 어제는 추경호 구속 영장도 기각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지키려고 검은 상복을 입고 내란 재판에 나오던 특검 검사들이, 내란을 실행하는데 함께 한 한덕수에게 고작 징역 15년을 구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실패하면 15년,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조희대 대법원과 사법 카르텔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윤어게인(Yoon-Again)’ 극우 세력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들은 12.3의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다시 쓰려한다. 최근 극우 유튜버들은 12.3 밤에 벌어진 일을 심지어 '시민들의 폭력에 내몰리던 불쌍한 계엄군이 생존을 위해 창문을 깨며 몸을 피하던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기막힌 시도다. 나아가 '곧 지귀연 재판부가 공소기각으로 윤석열을 석방할 것이니, 그때 다시 국민저항권을 발동하여 좌파 척결에 나서자'는 끔찍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혐오 선동과 가짜뉴스는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며, 쿠데타에 맞서 함께 싸웠던 시민들을 이간질하고 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지치기를. 우리가 서로를 비난하며 흩어지기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민주당 내부의 각 세력이, 그리고 반극우 민주주의 진영 내부의 지지자들이 서로 간의 차이를 이유로 잡은 손을 놓고 등을 돌리기를, 그래서 ‘반혁명의 기회’가 오기만을 늑대처럼 노리고 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 대개혁 시민 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12.3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이다. '내란은 청산해야 하지만 검찰의 수사권도 존중해야 한다', '쿠데타는 나쁘지만 사법부의 독립은 침해해선 안 된다', '여야가 극단적 대치를 멈추고 민생을 위해 협치해야 한다.' 언뜻 합리적으로 들리는 이 말들은 지금 상황에서 서서히 생명을 앗아가는 독약과도 같다.

 

반민주적 내란 세력과 민주주의 지지 세력 사이에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헌정을 파괴하려 했던 자들과 '협치'를 논하는 것은 악마와의 거래이자, 시민들의 피땀 어린 승리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지금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특검 연장 등 핵심적 과제에 대해 '역풍' 운운하며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불과 1년 전, 계엄군의 헬기가 국회에 상륙하던 그 끔찍한 악몽을 벌써 잊었는가? 혁명을 절반만 하고 멈추는 것은 스스로 우리의 무덤을 파는 일이 아닌가? ‘관용’을 베풀었다가 살아남은 파시스트들이 어떤 보복을 가했는지 모르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혁명은 과업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적들과 타협했을 때 실패하면서 재앙을 낳았다.

 

내란만 끝나지 않은 게 아니다. ‘빛의 혁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광장의 박수와 환호성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 반혁명 세력이 권력의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처벌받을 때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과정이다. 우리는 이제 1년 전보다 더 단단하고 집요해져야 한다. 쿠데타를 가능하게 했던 토대, 그 어둠의 뿌리를 찾아내어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

 

내란의 숙주가 되었던 국민의힘을 해체 수준으로 심판해야 한다. 쿠데타의 마중물이 된 윤석열 사단의 정치검사들을 탄핵하고 파면해야 한다. 법 기술로 쿠데타를 뒷받침하던 조희대의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해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군사 반란의 온상이 되어온 육군사관학교와 방첩사령부를 근본적으로 수술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이 과제들은 거대하고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 흩어져선 안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기후정의 실현, 소수자와 이주민 권리 보장 등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들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의제들을 중단없는 '빛의 혁명'의 용광로 속에 녹여내야 한다.

 

그 속에서 서로 설득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비판하며, 함께 행진해야 한다. 1년 전 12월 3일, 공포에 떨던 이들을 국회 앞에서 일으켜세운 그 힘, 각기 서로 다르고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손을 맞잡고 장갑차에 맞서던 연대의 정신, 그것이 바로 ‘빛의 혁명’의 정신이다. 우리가 스스로 빛을 끄지 않는다면,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 전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