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토안보부 행정소환으로 시민 압박

 

 
 
 
                        2021년 11월17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구글 매장. 로이터 연합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은퇴 고령자 존(67)은 지난해 10월 미군에 협력했던 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가 추방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를 읽고, 기사에 나온 검사 조셉 던바흐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4월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제공했던 임시신분보호(TPS) 프로그램을 종료해버린 뒤, 국토안보부는 이 이민자를 아프가니스탄으로 송환하려 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미군 쪽 통역사였던 형과 함께 망명한 이 이민자는 돌아가면 자신은 탈레반 정권에게 죽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존은 이렇게 메일을 보냈다.

 

“던바흐씨, ㄱ씨(이민자)의 목숨으로 러시안룰렛을 하지 마십시오. 신중하십시오. 미국 정부를 비롯해 많은 정부가 탈레반을 인정하지 않는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상식과 도덕의 원칙을 적용하십시오.”

 

자신의 성과 이름을 밝히고 서명한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존이 메일을 보내고 5시간 뒤, 구글 계정에 메일이 도착했다. “구글은 법 집행 기관으로부터 귀하의 구글 계정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절차를 요청받았습니다”라고 쓰인 이 메일엔 법적 절차의 종류로 ‘소환장’이, 요청한 기관에는 ‘국토안보부’가 명시돼 있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존은 처음에는 가짜이거나, 실수로 발송된 게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두려움에 휩싸였다. 링크를 클릭해 보니 개인 정보 제출을 거부하려면, 7일 내에 이의 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소송을 하려면 필요한 소환장 사본을 받지 못했고, 법원에 문의해도 소환장 발부 기록이 없었다. 메일은 회신 불가였고, 국토안보부로 전화를 걸어도 신호음만 듣기 일쑤였다.

 

알고보니 이것은 법원을 거치지 않고 연방 기관이 보낸 ‘행정 소환장’이었다. 3일 워싱턴포스트는 존의 사례를 보도하며, 판사 승인 없이도 긴급하게 테러 용의자나 마약밀매범의 전화, 금융, 인터넷 기록 등을 확보하는 데에 쓰였던 행정 소환장이 이제는 시민들을 압박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라델피아의 집에서 존이 인쇄한 이메일과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다. 신원 유출을 우려해 성은 밝히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구글과 메타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시작된 2025년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의 소환장을 받았다. 구글이 2025년 상반기 받은 소환장은 2만8622건으로, 직전 분기 대비 15% 상승했다. 다만 정보기술 기업들은 사용자 데이터를 요청받는 건수를 매년 집계하면서도, 이 소환장이 판사의 정식 승인을 받은 사법 소환장인지, 행정 소환장인지는 구분하지 않고 있다.

 

특히 국토안보부는 행정 소환장을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향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황이 엿보인다. 2025년 9월 국토안보부는 인스타그램에 이민단속 요원을 비판하는 글을 쓴 사람과 그 글을 공유한 사람들의 계정을 지목해 개인 정보를 제출하라는 행정 소환장을 메타(인스타그램의 모회사)에 보냈다. 최근에는 미네소타에서 의료진들이 병원에 침입한 이민단속 요원들에게 항의한 뒤, 국토안보부가 이 병원에 직원 7000명의 고용 정보를 제공하라는 행정 소환장을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국토안보부에서 매년 발부하는 행정 소환장의 수는 적게는 수천건에서 많게는 수만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안보부에선 중간관리자급 이상이면 누구나 행정 소환장을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고 전직 국토안보부 관계자는 전했다.

 

11월엔 존의 집 앞으로 국토안보부 소속 연방 요원들이 찾아와 “던바흐 검사의 이메일 주소는 어떻게 알았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구글 쪽이 아직 소환장에 따른 개인 정보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따로 집 주소를 알아내어 찾아온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국토안보부 본부에서 필라델피아 지부로 연락해 존을 찾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존은 자신이 온건하게 의견을 표현하는 이메일을 쓴 것이며, 법적으로 문제되는 바도 없다고 소명해야만 했다.

 

존의 사연을 들은 비영리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움직인 뒤에야, 존은 문제의 행정 소환장 사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행정 소환장에서 국토안보부는 9월 1일부터 존의 모든 온라인 접속 기록(날짜, 시간, 지속 시간), 관련된 모든 아이피(IP) 주소와 실제 주소, 사용한 모든 서비스 목록, 사용자가 쓰고 있는 모든 이름과 이메일 주소, 계정 개설일, 신용 카드 번호, 운전면허증 번호, ​​사회 보장 번호를 요청했다. 소환장 요청 사실을 존에게 알리지 말라는 당부도 포함돼 있었다. 존은 그 뒤로 휴가를 떠나면서도 당국의 검문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 소속 변호사인 네이선 프리드 웨슬러는 “소환장 발부나 연방 요원의 방문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꼭 누굴 가두지 않고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연방 정부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게 때문이다”며 비판했다. 해당 소식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는 “이거야말로 빅 브라더의 극치” “읽어본 기사 중 가장 소름끼친다” “이런데 도널드 트럼프나 제이디 밴스가 유럽을 방문해 표현의 자유가 부족하다고 큰소리칠 수 있겠느냐” 등 댓글이 달리고 있다.                                   < 정유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