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분별의 지혜가 없으면”
‘인권에 있어 암흑의 날’
국제 인권단체들이 10월13일을 이렇게 개탄했다.
이날 유엔총회가 인권이사회의 새 이사국을 뽑는 투표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15개국을 새 이사국으로 선출해, ‘설마’ 가 현실로 나타나자 ‘암흑’이라는 외마디를 쏟아낸 것이다.
휴먼라이츠 재단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새 이사국 선출에 앞서 ‘부적합국’으로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쿠바, 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을 지목해 반대운동을 폈는데, 사우디만 제외하고 다른 나라는 모두 ‘당선’된 최악의 결과가 나온 때문이다.
유엔을 감시하는 NGO인 ‘유엔워치’의 힐렐 노이어 대표는 이날 “반체제 인사인 러시아의 나발니, 중국의 왕빙장, 쿠바의 오스왈도 파야를 생각해 보라”며 “유엔은 오늘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 것일까”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푸틴 정권은 야권 정치인 나발니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중국 시진핑 정부는 반정부 인사 왕빙장을 18년째 감옥에 수감해 두고 있다. 쿠바의 반체제 할동가인 오스왈도 파야는 2012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국가권력으로 감시하고 찍어 누르는 정보독재 하에서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통제하고 있는 이들 나라 중에서도 특히 중국은 신장위구르 등지에서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고, 러시아는 시리아 민간인 살상에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대표적인 ‘인권 무시국’으로 꼽힌다.
모두 47개국으로 구성돼 임기가 3년인 유엔 인권 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RC)는 『유엔 가입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국제 사회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철저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해결하고자 만든 상설위원회.』 이다.
‘인권침해’를 해결하겠다는 유엔 인권이사국에 평소 ‘인권 무시’ 혹은 ‘인권 파괴’나 ‘인권 압살국’으로 평판이 자자한 나라들이 포함됐다는 것은, 어찌보면 선과 악이 뒤바뀌고,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말도 된다. ‘암흑의 날’‘방화범이 소방관 된 격’이라고 한탄한 이유다.
‘암흑의 날’은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투표권을 행사한 나라들의 인권에 대한 개념과 정의(定義), 그 수준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만들고도 남는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는 관대해도 남에게는 엄격하고 원칙을 따지는 게 일반적이다. 설령 자신은 죄를 지었어도 내 자식이나 이웃은 죄짓지 말라며 법을 지키기를 당부한다. 자기나라 인권상황이 부끄럽다고 해도 인류 보편의 인권정의를 구현해 나가야 할 유엔 기구의 기준은 엄정하기를 바라는 게 도리이고 양심적이며 이른바 ‘집단지성’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더러우니 남이 더럽든 말든 뭐가 대수냐’가 아니면 ‘나 보다 더 더러운 놈이 와야 내 맘이 편하지’라는 심보들은 아니었을지, 아마 그런 유유상종의 범법 동류의식이 표출됐을 거라는 짐작을 낳는다.
유엔에 모인 나라들, 인류 대표기구의 전반적 인권의식 퇴보를 보여줄 뿐 만 아니라, 갈수록 인권 수준과 평가의 애매모호함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인류 보편의 정의(正義)와 불의, 선과 악의 구별과 경계선을 분간 못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쉽게 말해 무엇이 바르고 뒤틀린 것인지, 옳고 그른 것인지 헷갈리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에 창궐한 재앙의 시기에도 사람들은 성찰이나 회심은 커녕 갈수록 약육강식의 이기적이고 사악한 행태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4천만 명 가까운 발병에 1백만명이 죽어 나갔고,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도 못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는 독감보다 덜 치명적“이라며 음모론을 부추긴다. 감염된 것이 축복이고 기분 좋다고 떠든 트럼프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로지 권력에 눈이 멀어 온갖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혼란시키는 오염원이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거짓과 독설의 선동과 반발 폭력이 난무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정신파괴 병균이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를 죽이고 내가 득세하겠다는 ‘이기의 파쟁’에 날을 지새며 생트집과 침소봉대, 무고와 음모가 사람들을 미혹한다. 거짓과 진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좌나 우, 진보나 보수 편갈라 대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에게 국민의 안위나 민족의 장래는 털끝만큼도 안중에 없기에 짜증만 더할 뿐이다. 아무리 애매하고 분별이 어렵다하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동물의 정글이나 지옥에 사는 것에 다름없는 일이다.
말세에 미혹과 난리와 소문이 횡행한다고 성경은 깨우쳤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예수님은 꾸짖었다. 이런 때 일수록, 참으로 분별의 지혜가 절실하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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