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들은 지금
임순숙 수필가
아침, 커튼을 젖히며 습관적으로 눈길이 닿는 곳은 이웃의 주차장들이다. 늘 첫 새벽에 출근하던 옆집엔 오늘도 이슬 맺힌 차 두 대가 망부석처럼 서 있고, 어린 아이들을 떼어놓느라 아침마다 출근전쟁을 벌이던 건넛집 주차장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오늘처럼 집집마다 빼곡히 서있는 차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가 어느 날은 듬성듬성 빠져나간 흔적이 읽혀지면 실낱 같은 기대가 꿈틀거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온통 엉켜버린 지 십여 개월, 언제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지 가늠조차 안 되는 요즘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자기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모 곁에서 신학기가 시작된 아이들은 또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그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하룻밤 자고 가겠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꽃 보다 더 예쁜 손녀들의 방문은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주중이라 등교는 어떡하나 내심 걱정되었다. 세 식구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서두를 것이 염려되어 물었더니 아들은 태연하게 어머니 집에서 등교하면 된단다.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아들의 여유로운 답변에서 감을 잡았다. 신학기부터 아이들은 등교수업이 아닌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곤 온라인 수업도 등교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곱씹으며, 아이들의 수업참관을 은근히 기대하게 되었다.
‘얘들아, 얼른 일어나 학교 늦었어.’ ‘빨리 씻고 밥 먹어.’ 애비는 아이들을 채근하면서 각 방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간식과 물컵도 비치해 준다. 느긋한 아이들에 비해 혼자 동동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예전의 우리와 흡사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리아의 방을 들여다봤다. 쾌활한 성품인 평소와 달리 집중 모드인 리아, 그 앞 모니터엔 여섯 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출석체크를 하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good morning, Lia.’ 하고 호명하니 조그만 손으로 마이크 버튼을 누르더니 ‘Good morning Mrs. Thomas’ 하고는 익숙한 듯 다시 버튼을 눌러 마이크를 끈다. 이 과정조차도 아이들에겐 벅차서 어느 학교에서는 40명 출석체크 하는데 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신학기 들어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알아가야 할 시기에 아이는 컴퓨터 작동법을 배우고 익히며 온라인 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교실에서 영상으로만 접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훗날 아이는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무궁무진한 아이의 상상력이 모니터 속에 갇힌 그들을 훨훨 날아다니게 하지 않을까 싶다.
4학년 서현이의 방을 살짝 들여다 봤다. 교사와 학생들 모두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등교수업처럼 서로 교감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진 못해도 반 토막이나마 가정에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거나 전자게임을 하며 자매끼리 깔깔거렸다. 등교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 시간인데, 애잔한 마음에 먹거리에 더 신경이 쓰였다.
오후 수업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서현이 방에서 나왔다. 선생님이 바빠서 과제만 주셨단다. 자주 이런 수업을 받고 있다며 제법 서운해 하는 눈치다. 그리곤 프랑스어 선생님은 며칠째 결근이란다. 그 부분은 내가 더 서운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프랑스어 수업을 꼭 참관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시국이다. 학교는 온라인수업과 등교수업으로 나뉘고 교사들은 양쪽으로 오가며 최선을 다한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비록 결근이 잦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아이들 곁을 지켜주십사 간곡히 간청 드린다.
임순숙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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