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13일 전국위원회 의결로 새단장을 마무리지었다. 당명과 로고, 정강·정책을 바꾸고 새출발을 선언했다. 총선 목전의 부산한 치장을 국민이 변신으로 봐줄지, 본디 모습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변장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보수정당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의 변화 요구가 거세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새출발에 대한 기대에 설렌 듯했다. 전국위 연설에서 “당의 겉모습과 속 내용을 확 바꾸고 공식적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역사적인 날을 맞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짧은 연설에서 ‘새로움’이란 표현을 10차례나 사용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은 당을 바꾸는 데 무슨 기여를 했을까. 별로 없다. 오히려 변화에 반대하며 저항하다가 대세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수용한 게 대부분이다. 비대위 구성과 박근혜의 전면 등장도 그의 결단에 따른 게 아니었다. 그는 인기없는 여당의 얼굴로 나서기를 머뭇거렸다. 최고위원 3명의 동반사퇴로 지도부 공백이 초래돼 추대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뒤에야 나섰다. 당명과 로고 개정도 쇄신파의 재창당 요구를 거부하다가 찾은 절충점이었다.
그는 정강·정책 개정에 대해 “새로운 시대정신과 국민 눈높이에 맞춰 당이 나갈 비전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라고 상찬했다. 실천이 문제지만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은 데 대해선 평가가 좋다. 이걸 박 위원장이 주도했나? 아니다.
박 위원장은 꺼렸고 김종인 비대위원이 사퇴 배수진을 친 끝에 관철했다는 게 정설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연말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최상위 부유층의 세금을 늘리는 방안에도 끝까지 반대하다가 의총에서 다수가 찬성해 대세가 결정된 뒤에야 반대론을 접었다. 그러고도 본회의 표결에는 불참했다.
정강·정책에 ‘유연한 대북정책’과 ‘인도적 지원’을 삽입한 것 등도 전향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천안함 발언’을 문제 삼아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을 부결시키면서 이런 평가가 무색해졌다. 박 위원장이 눈짓으로라도 가결 신호를 보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조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천안함 문제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는데 박 위원장은 요지부동이다. 친박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 사망 당시 조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남북관계 변화를 주도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탄식이다.
박 위원장이 변화를 주도한 게 있다. 지도부 회의 방식이다. 지도부가 아침 공개회의에서 마이크를 잡고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 것은 한국 정당의 유구한 전통이다. 진보정당들도 이 전통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비대위 공개회의는 박 위원장 말이 끝나면 곧바로 비공개로 전환한다. 다른 비대위원들 앞에 있는 마이크는 무용지물이다.
박 위원장은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하겠다고 누차 얘기했는데, 그를 뺀 다른 비대위원들은 공식회의 자리에서 국민에게 공개발언할 기회조차 원천봉쇄당한다. 쇄신보다 퇴행에 가까운 변화다.
박 위원장은 이제 명실상부한 정치 주류다. 10년간의 야당생활에 이어 여당 의원이 된 18대에도 대통령의 견제를 받는 비주류였으나 지금은 대통령이 눈치를 살펴야 하는 여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이자 대표다. 그에겐 이제 힘이 생겼다. 바꾸려고 마음먹으면 정책이든 행태든 얼마든지 과감하게 바꿀 수가 있다.
변화를 거부하다 대세로 확인된 뒤에야 수용하는 것은 리더보다 팔로어에 가깝다.
그가 변화를 망설이며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임석규 - 한겨레 신문 정치부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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