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시중, 그 이후

● 칼럼 2012. 2. 13. 18:03 Posted by SisaHan
자질의 제1순위가 정치적 중립성이라 할 방송통신위원장이 정치권에 거액의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 자체가 해외토픽감이다. 자신의 멘토를 극구 방통위 수장에 임명해 결과적으로 이런 코미디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늘 그렇듯 반성이나 성찰은 없다. 시치미 뚝 떼고 후임자를 임명하면 그만이다. 
중립성과 전문성. 방송과 통신 정책 수장에게 요구되는 핵심 자질이다. 두 조건을 완벽하게 비켜 간 최시중 위원장이 공공의 가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방송의 공영성 강화나 시청권 보장 같은 공적 가치 대신 정치공학이나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만 그득했다. 예컨대 그가 수신료를 6000~7000원(현 2500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운을 떼면서 앞세운 논리는 방송산업의 발전이었다. 시청자 편익 증대가 아니었다. 종합편성채널 광고 늘려주자고 수신료를 2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강변한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문화방송>(MBC)에 제자리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공영방송의 외피를 벗으란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영적 소유구조에 광고로 먹고사는 방송들이 세계 여러 곳에 많음에도 억지를 부렸다. MBC 앞에 자주 붙는 공영이란 말이 마뜩잖았을 것이다. 대신 IP-TV 도입이나 종편 도입과 같은 유료채널 확충엔 적극적이었다.
 
2010년 <에스비에스>(SBS) 월드컵 단독중계나 케이블의 지상파 재전송 대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시청권보다는 사업자 이해가 우선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청자들이 월드컵을 지상파로 보지 못했다. 케이블 가입자 수백만명이 지난달 <한국방송>(KBS) 2채널을 하루 이상 보지 못했다. 
방송과 통신은 모두를 위한 재화다. 이게 편파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쓰였을 때 공공에 미치는 화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은 가장 먼저 방송사에 분노를 터뜨렸다. 
오죽했으면 언론학자 200여명이 이 정권 초 미디어공공성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었을까? 공공성이 위기에 처했는데 대학에서 학문적 논의만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의 소산이다. 
최 위원장이 남긴 상처는 깊다. 2010년 말 종편 4곳을 허가한 최 위원장은 직접 광고영업 혜택까지 줬다. 종편에 준 이 떡이 재앙이 되고 있다. 종편의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위탁이 풀리지 않으면서 미디어 공공성을 지켜낼 방송광고판매제도의 도입이 장기간 늦춰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종편 쪽의 무리한 영업과 SBS의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 체제 이탈 등의 여파로 미디어 다양성의 토대인 작은 매체들 광고가 줄고 있다. 
그가 방통위원장 취임 뒤 바로 벌인 공영방송 사장들 물갈이는 방송뉴스의 공정성 상실과 신뢰도 위기로 이어졌다. 기자들은 취재 대신 낙하산 사장과 싸우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최 위원장 후임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듯하다.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올바른 방송철학이나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법 전문가가 후임으로 유력하다는 예상을 보건대 이런 우려는 크게 빗나가지 않은 듯하다. 
오는 4월 국민의 선택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무너져 내린 미디어 공공성의 가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근본 틀을 다음 국회에서 설계하거나 마련해야 한다. 방통위 체제 개편은 물론 공영방송 사장 선임 방식 개선과 공익적인 방송광고판매제도 마련, 여론 독과점 규제 강화 등 숙제가 수두룩하다. 국민이냐, 특정 업자 편이냐?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해법지가 달라질 것이다.

<강성만 - 한겨레신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