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한번 저지르면 그만’

● 칼럼 2021. 4. 24. 13:58 Posted by SisaHan

 

"개혁은 ‘한번 저지르면 그만’인 범죄적 통념과 악행을 뿌리뽑는 일이다."

 [한마당 칼럼]  ‘한번 저지르면 그만’

 

조선시대 ‘보쌈’이라는 일종의 납치풍습이 있었다. 약탈혼, 즉 강제결혼 방식의 하나였다. 흔히 장가 못간 노총각이 처녀를 보에 싸서 납치해 결혼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절과부가 홀아비나 노총각을 보쌈해 과부처지를 면하곤 했다. 또 양반집에서 남편을 둘 이상 섬길 팔자라는 처녀 딸을 위해 총각을 은밀히 납치해다가 한번 동침시켜 ‘액땜’하고는 다른 남자에게 출가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의 보쌈 비슷한 ‘약탈혼’의 풍습은 다른 나라에도 많다. 정복자 칭기스칸도 어머니 호엘룬이 몽골판 보쌈을 당해 태어났다고 전한다. 지금도 이슬람 나라들과 아프리카 등에서 종종 그런 뉴스가 나온다.

 

‘보쌈’은 아무리 선의이든 절박한 사정이 있었든,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원시적 강력 범죄다. 그런데도 서슴없이 결행하고, 일부에서 ‘묵인’해 온 관행은, 어느 경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 번만 해치우면 그만’이라는 통념이 바탕에 깔려있다. 다시 말해 여자든 남자든 한 차례 범하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사람이 되고, 결국 인정받지 않느냐는, 강제적 체념과 이기적 범죄 합리화의 산물이다. 요즘 일부 젊은 층의 성범죄와 스토킹 등에서도 그런 의식의 흐름의 저류에 있다고 본다.

 

문제는 ‘한 번 해치우면 그만’이라는 인식과 행태가 비단 남녀 관계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게 옳든 그르든, 선이든 악이든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저지르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마치 보쌈하듯 해치우고도 뭐가 어떠냐는 식의 범죄적 인식과 언행들, 하지만 사람들은 잠시 분노하다가도 은연 중 체념해버리는 ‘정의의 상실과 무감각화’ 현상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유린 한 뒤 궁궐터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동물원까지 만들어 버렸다. 정기어린 명산들의 정상에는 쇠말뚝을 박았다. “자, 이쯤 해놓으면 너희들이 대대손손 굴복하지 않고 어쩌겠느냐”는 악질 범죄자의 흑심이었다. 그들 노림수대로 체념할 뻔했지만, 총독부 건물을 과감히 헐고 경복궁 창경궁을 복원하여 민족 혼을 되살렸다. ‘한 번 저지르면 그만’인 통념에 철퇴를 가해 민족 정의를 바로 세운 사례다. 그런데 “한 번 저지르면~”의 범죄적 소산을 뿌리 뽑고 “~안된다!”는 정의를 되살린 일들이 얼마나 될까. 역사에서, 공동체에서, 개인의 일상과 인륜에서…

 

최근 ‘개혁’의 화두가 뜨겁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등 여러 분야가 대상이다. 개혁은 불법 불합리와 부조리들이 켜켜이 쌓인 적폐를 혁파하고 쇄신한다는 의미가 있을 터이지만, 무엇보다 ‘저지르면 그만’인 범죄적 악행을 근절하고 징벌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돌아보면 ‘한번 저지르면 그만’인 속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삶이 무너지고, 사회가 뒤틀리고, 민주주의와, 정의와 선이 어그러졌는가.

 

독재와 사욕의 정치인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패가망신 시킨 일들, 멀쩡한 기업을 공중분해 했고, 국토를 마구 파헤쳤으며, 역사를 거꾸로 돌렸던 일들까지. ‘나라를 통째로 보쌈한’ 범죄적 행태들. 그런데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발상이 검찰에서 나왔었다, “이미 저지른 걸 어쩌느냐”는 것이다.

검찰의 그런 망발은 그들의 통념이고 습성이었으니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한번 저지르면 그만’인 자의적 악행과 범죄들이 너무 많았다.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도 했던…, 그들은 여전히 그 버릇을 팽개치지 못하고 혐의 조작과, 조직 이기의 선택적 수사에, ‘한 번 기소하면 무죄가 나와도 상관없는’ 기소 독점권을 휘둘러, 재판으로 3~4년을 고생하게 만든다. 검찰개혁은 그 못된 버릇을 고쳐주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악습과 통념의 연장선에서 역시나 잠깐 감옥에 갔던 전두환과 그 일당은 지금껏 철면피한 언행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갓 재판이 끝난 이명박과 박근혜도 사면하자고 한다. 권력자가 ‘한번 저질렀으니 봐주자’는 개탄스런 통념의 무감각화다.

 

언론은 어떤가. 엄청난 비리처럼 떠들다가 사실이 아니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그걸 막자는 것이다. 처음 떠든 것처럼 아님이 밝혀졌으면 그 또한 크게 떠들고, 가짜와 거짓으로 피해를 입혔으면 합당하게 보상하라는 경고다.

최근의 선거에서 일부 후보자는 수많은 비리와 의혹이 나왔고 고발도 됐다. 하지만 이를 검증해야 할 언론은 극히 편파적으로 선택적 보도를 했다. 의혹을 선전하고 고발도 했던 정치권은 선거 가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선거판의 언론 못지않게 정치인들의 ‘한번 저지르면 그만’, ‘당선되면 그만’인 습관적 고질병이다. 유권자들도 의례 그러려니 한다. ‘저지르면 그만’이 바로 악행이며 범죄라는 인식과 징벌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마 다음 선거에도 그런 양상일 테니, 어느 세월에 선거가 참 민주의 축제로 승화될 것인가.

그렇다, 개혁은 뭐니 뭐니 해도 ‘한번 저지르면 그만’인 구석구석의 통념과 악행을 뿌리뽑는 일이다.

                                                                                        < 김종천 시사 한겨레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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