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모 ㅣ 교육인 출신·작가
‘공정과 실리를 우선하는 MZ세대’ 어느 보수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공정’과 ‘실리’가 아무런 문제 없이 양립 가능할지 혼란스럽다. 공정함과 실리는 양자택일은 아니라도 양립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보수 언론이 공정을 내세우는 저의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젠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20대 여성이 40대 남성과 함께 여당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낸 것과 달리 20대 남성이 전통적 보수지지층인 60대 이상의 세대보다 높게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젠더 문제에 더 민감할 20대 여성보다 20대 남성이 젠더 문제로 표심을 바꿨다는 것인데 ‘안티페미니즘’ 성향이 비교적 강한 그들이 각성해서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기라도 한 것일까?
다른 이슈도 마찬가지이다. 부동산 문제에 공정하지 못해서라는 분석이 맞다면 부동산 문제에 훨씬 더 흠결이 큰 야당 후보를 지지할 수가 없다. ‘조국, 엘에이치(LH) 사태’ 운운도 동의하기 어렵다. 조국 사태가 문제라면 지난해 총선에서도 여당이 패배했어야 하는데 사상 최고의 승리를 거두었고 20대도 마찬가지다. 엘에이치 사태가 권력형 비리가 아님을 20대가 모를 리가 없으니 더욱 그렇다.
본질은 2007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묻지 마 실리’이다. 대학에 있던 필자는 그 당시에 학생들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가 살아나 취업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 사실을 생생히 기억한다. 필자는 ‘현재도 경제지표는 좋다. 문제는 그 성과가 일부에게 치우치는 것과 아울러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이다’라고 말을 했지만 젊은이들뿐 아니라 기성세대조차 근거 없는 기대감에 차 ‘묻지 마 투표’를 했다. 이성이 작용할 여지는 전혀 없었을 정도였다. 그에 따른 선거 결과나 이후 실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동산 정책 때문에 여당을 버리겠다는 사람들이 필자의 주변에 지천으로 깔렸는데 어디서 원인을 찾는가? 심지어 세금 때문에 ‘위장 이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다. 국민은 피로감을 폭발시킬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으로 현 정권을 골랐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 정부의 개혁 의지가 꺾여 검찰개혁의 완성과 함께 언론개혁, 그리고 수요억제의 부동산 정책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도 1년 정도 남았는데 이번 선거의 패배가 개혁에 결정타를 날릴까 심히 염려된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세워진 정권이니 명분상으로도 안 되지만 실리를 따져도 마찬가지이다. 함부로 타협하고 나선다면 산토끼는커녕 집토끼마저 잃을 수 있다. 이번 20대의 표심 변화가 보수 언론의 분석대로 ‘젠더’나 공정의 문제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처럼 눈앞의 이익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일본 사회당의 몰락이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1993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사회당은 대승을 거두어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연립내각의 여당이 되었으며 1994년 6월에는 마침내 47년 만에 자당의 총리를 배출하며 기세등등하게 나아갔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은 사회당이 내건 가치를 훼손하였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 사회당은 교섭단체도 결성할 수 없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였다.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이 바로 일본 공산당이었다. 사회당의 지지층은 좌우로 찢어졌고 좌측 지지의 상당수는 공산당으로 향했다.
정권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신념을 함부로 버리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사회당의 몰락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여당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혁은 시대적 과제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이제 와서 적당히 타협한다면 실리적으로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혹여 정권을 내놓더라도 180석이 넘는 개혁지지세력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 개혁이 계속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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