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증거인멸을 지시한 “몸통”이라면서도 불법사찰에 대해선 “청와대와 나는 무관하다”고 방어막을 쳤다. 유죄가 확실해진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선 책임지고 총대를 메되, 불법사찰과 자금문제 등으로 청와대로 불똥이 튀는 것은 막겠다는 취지가 강하게 읽힌다. 그러나 그동안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이 공개한 녹음과 인터뷰 내용 등에 비춰보면 소가 웃을 일이다.
그의 주장처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증거인멸이나 은폐조작과 무관하다면 장석명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왜 장 전 주무관에게 5000만원을 제공하면서까지 입막음을 하려 했는지 설명이 안 된다. 2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게 줬다가 최근 돌려받은 데 대해서도 “선의로 준 것이지 입막음용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정황에 비춰보면 사실로 믿기 어렵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 민주통합당에 “정치공작”이라는 등 적반하장의 정치공세를 퍼붓는 걸 보면 정권 핵심부와 상당한 조율을 거친 인상이 짙다.
 
그의 주장과 달리 그동안 드러난 사실을 되짚어보면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손쉽게 동원하고 거액을 조달해가며 사건의 실체를 은폐조작하려 했던 거대한 힘의 존재가 느껴진다. 은폐조작 혐의를 받는 청와대와 검찰에 이어 어제는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의 부탁으로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됐다는 5000만원은 국세청 간부가 조달한 돈이라는 <서울신문> 보도가 나왔다. 엊그제는 노동부 공무원이 최종석 전 행정관의 지시로 장 전 주무관에게 변호사 비용 4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지금까지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됐거나 시도된 자금만 해도, 지난해 4월 2심 공판 직후 장 비서관이 만들어줬다는 5000만원, 진경락 전 총리실 과장이 제안했던 2000만원, 이 전 비서관이 건넸다 돌려받은 2000만원, 최 전 행정관이 조성한 변호사 비용 4000만원(2500만원 반환) 등 1억3000만원 규모다. 공무원들이 합법적으로 이런 거액을 만들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자기 사재를 털었을 리도 없다.
 
의혹은 청와대를 향해 번져가는데 검찰 수사는 게걸음이다. 이 전 비서관의 회견을 보니 정권 핵심부는 아직도 청와대 비서관 수준에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하리라고 판단하는 모양이지만 착각이다. 검찰 수사에 이어 국정조사든 특검수사든 후속 조처가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제부터는 공직자들의 은폐 시도 하나하나가 범죄행위다. 더 이상 죗값을 벌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