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Love of the Game

● 칼럼 2012. 3. 23. 20:38 Posted by SisaHan
캐나다에서 제일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면 가장 많아 하는 말이 있다. “Love of the Game.” 유명해지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받고 하는 운동인데도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들은 하얀 얼음판 위에 붉은 피를 흘리고, 이빨 다 부러져 가면서 하키라는 게임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다는 말을 한다. 나는 아직도 한 번도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키를 한다고 말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사실 그들은 선택된 극소수이다. 결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까지 이르기까지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으리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나가서 돈을 벌고 그리고 명예를 얻는다는 것. 얼마니 행복한가?
 
캐나다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한국에서는 굵직한 저음으로 중얼 중얼대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알려진 레오나드 코힌(Leonard Cohen)이라는 작가가 있다. 나는 그를 소설가로서 캐나다 소설 문학 시간에 처음 접했다. 그의 소설 ‘아름다운 패자(Beautiful Loser)’는 캐네디언 문학사에서 post modernism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표작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스스로 좋아서 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영 불투명한 아니 차라리 가망성이 없는 일에 매달리는 자신을 보면, 그런 그가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글을 쓴다는 것 더욱이 한국말로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이 실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따지기에 앞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조차 나는 확신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일본문학과 중국역사를 공부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물어 오곤 했다. “그거 나와서 뭐 하는 거예요?” 나는 할 대답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학교에 돌아가 영문학을 공부한다면 조금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해왔다. “영어로 소설을 쓸 거예요?” 처음 이민 올 때만 해도 여기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를 나오고, 십 년이 지나고 이 십 년이 지나면 영어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솔직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제 삼십 년을 넘기고서 막연한 꿈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솔직히 느끼고 있다. 한 가지 문학을 공부하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소위 말하는 여기 애들도 문학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자신들의 장래의 사회생활,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냥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Love of the Game”인 셈이었다.
 
뒤늦게 와서 남의 눈치 보아가며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는 이민자에겐 너무 사치스러운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뒤늦게 이 땅에 와서 온갖 장벽과 차이 그리고 차별을 극복하고 발 디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우리들로선 그런 소리는 먼저 와서 소파에 등을 기댄 자만이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였다. 우리가 그들과 똑 같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하는 날이 언제 올까? 이민자인 우리에겐 선택의 폭이 좁고 제한돼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늘 자기가 처한 처지를 합리화시키고 스스로 자기만족을 느끼려 한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실력이 없고, 돈이 없고, 그리고 능력이 없어 마지못해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노력을 한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며 패자의 변명인지 몰라도 내가 지금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Love of the Game’을 생각하며…….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