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4월 12~16일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들이 아무리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내세워도 위성 기술이 미사일 개발 기술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지 못하는 한 그것은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이다. 또한 남한 총선에도 작건 크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선거철에 이런 도발을 하는 북한은 과연 누구 편일까? 철 지난 색깔론을 다시 꺼내든 수구세력의 주장처럼 야당 편일까?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여당 편이다. 역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1987년 11월29일 13대 대통령선거를 10여일 앞두고 북한 공작원에 의해서 대한항공기 폭발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대북 경계심리를 자극하여 새누리당의 할아버지뻘 되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20여일 앞둔 1996년 4월에도 북한이 비무장지대 유지관리 임무 포기를 선언하고 무장한 인민군을 판문점에 진입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국내에 급격하게 ‘전쟁위기론’을 확산시켰으며, 결과적으로 당시 청와대 인사의 거액수뢰 사건으로 선거 참패 위기에 직면해 있던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을 구하고 야당에 패배를 안겨주었다.
 
1997년 12월에 치러진 15대 대통령선거 때는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가 김대중 후보에게 ‘대통령이 되면 금세기 내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투표 6일 전에는 북한 방송에 출연하여 김 후보의 통일방안이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와 유사하다고 말해 그를 용공으로 모는 북풍을 일으켰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북한이 남한 선거에서 수구 집권세력의 우군이었음을 보여준다. 요즈음도 북한 선전매체는 이따금 남한 선거에서 여당을 반대하고 야당 지지를 선동한다. 이를 보고 어떤 이들은 북한이 야권의 승리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야권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믿음에 힘을 실어준다. 과연 그럴까?
우리 사회의 강한 반북정서를 고려할 때, 북한이 선거에서 특정 정치세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 거꾸로 이 세력은 ‘친북’ ‘종북’으로 몰려 선거에서 불리하게 된다. 남한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북한의 대남통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야당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야당 후보를 떨어뜨려 달라는 청탁이나 다름없다. 나는 북한 정권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자신의 독재적 성격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민주정부보다는 자신과 일정 부분 유사하게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닌 정권이 남한에 들어서는 것이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되고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도 대남 콤플렉스가 덜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북한의 위성 발사 계획은 앞의 역사적 사례와는 약간 다르게 남한 총선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발표된 것 같지는 않다. 남한 정세에 대한 고려 없이 김일성 출생 100년과 김정은 권력 공고화, 강성국가 건설 등 4월에 있을 자신의 정치 일정을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사고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남한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 변수를 선거에 끌어들여 북풍을 일으키는 데 화려한 전력을 지닌 수구세력이 이번에도 색깔론으로 톡톡히 안보장사를 하려 들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이 과거와 달라졌다. 2010년 천안함 사태 직후 치러진 6.2 지방선거에서 보았듯이 국민은 북풍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시작했다.
국민은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태를 통해 새누리당 정권이 이승만 정권 이후 최악의 안보무능 세력임을 체감했다. 이를 통해서 안보무능으로도 모자라 안보장사까지 하는 정부가 아니라, 아예 북한이 도발을 통해 남한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남북관계를 잘 이끌고 아울러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춘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문제는 대안세력이다. 이제 야권은 단순히 여권의 북풍에 대한 수세적 대응을 넘어 안보무능 세력을 교체하여 평화와 안보가 선순환하며 함께 증진하는 비전을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진짜 안보세력인지 당당하게 물어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