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수사’의 오염된 증거가 말하는 것

● 칼럼 2021. 7. 30. 04:1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브레이디 판결’은 미란다 원칙을 정립한 ‘미란다 판결’(1966년)과 함께 형사절차의 현대적 원칙을 빚어낸 최고의 판결로 평가된다. 캐나다 대법원도 1991년 ‘국가는 피고인의 혐의 입증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법정에 제출할지 여부와도 상관없이, 수집된 모든 증거를 피고인 쪽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캐나다 대법원은 “수사를 통해 얻은 정보는 유죄 판결을 얻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국민 모두의 소유물이다”라고 밝혔다.

 

 

박용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A는 절도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절도가 벌어진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리바이를 증언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파티 참석자 한 명이 검찰에 와서 조사를 받는다. 파티에서 A를 봤다는 말을 잠깐 언급한다. 검사는 이 진술을 사건 기록에만 넣어두고 변호인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A를 기소한다.

 

미국에서는 검사의 이런 행위는 직권남용으로 위법이다. 검사는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거나 형량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증거·증언을 확보했을 때 피고인 쪽에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1963년 연방대법원 판결(브레이디 판결)로 확립된 원칙이다. 이를 어겼을 때는 무죄가 선고되거나, 기존 검찰 쪽 증거를 배척하고 재판이 진행된다.

 

미국변호사협회의 윤리강령도 ‘검사는 무죄나 감경 사유가 되는 증거 및 정보를 얻었을 때는 지체 없이 변호인과 법원에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다. 검사도 한 명의 변호사로서 변호사협회의 규율을 받는 미국에서는 이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할 경우 변호사 자격이 박탈돼 검사직을 잃을 수도 있다.

 

‘브레이디 판결’은 미란다 원칙을 정립한 ‘미란다 판결’(1966년)과 함께 형사절차의 현대적 원칙을 빚어낸 최고의 판결로 평가된다. 캐나다 대법원도 1991년 ‘국가는 피고인의 혐의 입증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법정에 제출할지 여부와도 상관없이, 수집된 모든 증거를 피고인 쪽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캐나다 대법원은 “수사를 통해 얻은 정보는 유죄 판결을 얻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국민 모두의 소유물이다”라고 밝혔다.

 

우리 대법원도 2002년 “검사가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제출해야 한다는 건 이렇게 문명국가의 보편적 형사절차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재판에서 나온 조 전 장관 딸 친구들의 증언을 보며 이 원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 전 장관 딸 조아무개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가 허위라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이고, 이와 관련해 2009년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에 조씨가 참석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의 하나다. 이는 공범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도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세미나에서 조씨를 봤다는 여러 증언을 배척하고,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조씨의 친구 박아무개·장아무개씨의 ‘현장에서 조씨를 본 기억이 없다’는 증언을 받아들여 유죄 이유로 삼았다. 정 교수는 세미나 장면을 찍은 동영상 속의 여학생이 딸 조씨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23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씨가 “검찰 조사에서 동영상을 보자마자 ‘저건 조씨다’라고 말했다”며 “검사가 ‘증거들을 보면 아니지 않겠느냐’고 질문해, ‘그럼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명확하게 조씨를 그(세미나) 자리에서 봤다는 기억이 있다면 검사 질문에 ‘아니다, 조씨다’라고 말했겠지만, 10여년 전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저건 조씨다’라는 진술과 ‘그 자리에서 봤다는 기억이 없다’는 진술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있었어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더구나 ‘조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데 있어, 당시 현장을 찍은 동영상 속 인물이 조씨인지 여부와 그 자리에서 조씨를 본 기억이 있는지 여부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인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자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동영상을 ‘보자마자’ 나온 친구 박씨의 ‘저건 조씨다’라는 진술은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채, 검사의 추가 질문 끝에 나온 희석된 진술들만 증거로 제출했다. 박씨의 애초 진술을 변호인 쪽에 알려주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다른 친구 장씨도 이번 재판에서 “동영상에서 확인된 여학생이 99% 조씨가 맞다”고 증언했다. 장씨는 이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현장에서 조씨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저는 없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조씨가) 아예 오지 않았다’라고 한 것”이라며 “저의 증오심과 적개심, 인터넷으로 세뇌된 삐뚤어진 마음, 즉 우리 가족이 너희를 도와줬는데 오히려 너희들 때문에 내 가족이 피해를 봤다라는 생각이 그날 보복적이고 경솔한 진술을 하게 한 것 같다”고 했다. 장씨는 조씨를 논문 제1저자로 등재한 단국대 장아무개 교수의 아들로, 장 교수는 검찰 조사를 받고 출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조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진실을 덮은 것이 박씨나 장씨의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도 객관적으로 다루는 공정한 태도를 지녔다면 이 사안은 기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건 조씨다’라는 진술이 기록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부터가 검찰의 객관성을 허문다.

 

조 전 장관 수사는 이 밖에도 여러 형사절차적 문제를 노정했다. 검찰이 주요 증거인 동양대 강사휴게실 피시(PC) 포렌식 결과를 일부만 선별 제출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는 또다른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의 제출 원칙’ 위반일 수 있다. 이 피시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절차를 위반했다는 법원의 판단도 나온 바 있다.

 

이러한 문제는 조국 개인에 대한 비난과 옹호로 열뜬 논란에서 한발 떨어져 봐야 할 다른 차원의 사안이다.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형사절차의 원칙과 실행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씨와 장씨처럼 친구 부모의 수사·재판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는 게 어떤 이유로든 어려웠다면 그것은 문명사회의 형사절차가 아니다. 동영상이 증거로 남아 있는데 거기에 찍힌 인물이 조씨라는 기초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데 결과적으로 2년 가까운 법정 공방이 필요했다는 이 비합리성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조 전 장관의 딸은 지난달 법정 증인으로 나와 “재판에 유리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친구들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형사절차가 객관성을 잃어버린다면 전근대적 여론재판과 다를 게 없다.

 

이럴 때 중요한 게 형사절차를 개시하고 끌고 가는 능동적 주체인 검사의 역할이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피고인일지라도 검사는 그와 대립하는 상대방의 위치에 머물지 말고 객관성과 공정성의 담지자가 돼야 한다. 그런 검찰의 역할에서 바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의 제출 원칙’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 속에서 검찰은 결과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수사를 하는 집단이고, 그 전형의 하나가 조 전 장관 수사였다.

 

이번에 박씨와 장씨의 ‘오염된 증언’이 바로잡힌 것은 조씨의 세미나 참석이라는 단편적 사실을 확인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임한 태도의 문제점을 극명히 드러내줬다. 수사는 사냥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형사절차는 야수의 본능이 아닌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두 젊은이의 고백적 증언은 조 전 장관 부부의 유무죄에 미치는 영향보다 아직 야만의 티를 벗지 못한 우리 형사사법제도의 현주소에 대한 경종으로 더 큰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