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이른 봄을 맞았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긴 겨울 끝에서 아주 더디게 오던 봄이었는데 올해는 어느 날 갑자기 곤두박질치듯 달려왔다. 혹시 잘못 온 건 아닌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어리둥절하기는 사람뿐 만이 아닌가 보다. 삼월에 튜울립, 개나리, 목련, 과실수 등이 만개하여 온 동네에 꽃 잔치가 벌어졌다. 따뜻한 햇살 받으며 꽃구경을 하면서도 염려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틀 후면 다시 영하권이라는 일기예보에 뒤뜰을 한 바퀴 돌아본다. 우리 집 자두나무는 꽃봉오리를 송송 물었고 이웃집 도화는 연분홍 미소를 흘리고 있다. 거기다 지난 주 까지도 꽁꽁 얼었었던 대지는 언제 그런 날이 있기나 했냐는 듯 푸석하게 풀려서 갖가지 잡초를 밀어올리고 있다. 야들야들한 잡초 속에 성큼 자라난 민들레 무리에 눈총을 쏘다말고 가만히 다가가 손을 내 민다. 민들레 나물 그리고 시아버님, 늘 이맘때면 싸아하게 일어나는 그리움이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여든을 목전에 둔 어느 해 봄에 손주들이 눈에 밟힌다며 다니려 오셨다. 워낙 부지런한 성품이어서 한 순간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고 잔디 관리하며 나무손질이며 늘 바쁘게 움직이셨다. 우리 내외는 그런 아버님이 염려되어 수 없이 말리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간밤에 내린 봄비로 촉촉하게 젖은 뒤뜰을 보면서 나는 시아버님께 민들레 좀 뽑아주시라고 말씀드렸다. ‘민들레 나물이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부연 설명으로 소일 삼아 조금만 뽑으시기를 염원하면서 말이다.
그날 퇴근해서 부엌에 들어서니 큼지막한 플라스틱 봉지 두개가 싱크대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뿌리째 뽑힌 민들레가 말끔하게 씻긴 채로. 그것을 본 순간 또 불효를 하고야 말았다는 자괴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아버님은 숙제를 잘해온 어린아이마냥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의 얼굴과 민들레 봉지를 번갈아 보며 그날 하루 일과를 눈빛으로 보고하셨다. 나는 뜻한 의도와는 다르지만 행복한 모습을 뵈니 괜찮았던 묘안이라 위안하며 안쓰러운 마음을 삭였다. 하루 종일 그 질긴 놈들과 고투하셨을 아버님을 생각하니 민들레 봉지가 사랑 봉지로 화하여 둘, 넷, 여덟… 제곱으로 늘어나 보였다.
 
그날 저녁엔 민들레 나물을 만들었다. 경험은 전무했지만 ‘참기름 한 병 손에 쥐고 봄 산에 오르면 나물 아닌 게 없다’는 한국 아낙네의 솜씨를 한껏 발휘하였다. 우선 치아가 성치 않은 아버님을 생각해서 푹 삶았더니 냄새가 좀 묘했다. 조짐이 심상치 않았지만 어쩌랴, 갖가지 양념과 정성으로 조물거려 상에 올렸다. 온 식구들이 반겨서 한 저분씩 집어가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난 동조를 구하듯 아버님을 쳐다보니 ‘음, 맛이 특이하긴 해도 나쁘지 않구나, 잘 물러서 좋다.’고 위로 해 주셨다. 하지만 말씀과는 달리 다시는 그쪽으로 눈길마저 주지 않으셨다. 
나는 인기 없는 나물접시를 슬며시 상 아래로 내리며 속으로 이렇게 용서를 구했다. ‘아버님! 올해는 민들레가 우리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을 겁니다, 아버님 자식사랑에 기죽어서 말입니다.’ 
넓은 가계를 이끄시느라 민들레 같은 삶을 사셨지만 늘 따뜻하고 인자하셨던 시아버님, 이맘쯤이면 그분의 넓고 깊었던 사랑이 더욱 그립다.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