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정도 된 것 같다. 진찰이 모두 끝나고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피로를 풀기 위해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방이 사라지더니, 곧 아파트가 사라져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두렵게도 내 시야가 미치는 곳 어디에도 아파트 벽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벽을 제거하라는 이번달 17번째 포고령에 따라….’”
1934년 한 독일인 의사가 기록한 꿈의 내용이다. 나치가 개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가던 숨막히는 체제에서 그 의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주 잠깐 ‘자유로운’ 개인적 취향(16세기 종교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탐닉하는 것)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감시당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에 처해질 수 있다는 강박이 그를 짓눌렀던 게다.
“꿈을 기록한 뒤에 그 의사는 또 한 번 이 꿈을 기록한 사실 때문에 고발당하는 꿈까지 꾸었다. 이제 잠조차 사적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은 <한겨레21> 편집장 시절이던 2009년 9월 권두칼럼 ‘만리재에서’에 쓴 이야기다. 따옴표로 묶인 부분은 유럽 현대사를 다룬 책 <암흑의 대륙>에서 인용했는데, 사찰당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를 잘 보여준다. 당시 이런 글을 쓴 이유는, 끔찍하게 묘사된 저 파시즘 사회가 우리에게도 전조를 드리우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촛불정국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거치며 날로 시민의 자유를 옥죄어 오는 공권력의 횡포에서 이 정부의 ‘파시즘적 경향’을 읽어낼 때였다.
바로 그즈음인 2009년 11월9일 작성된 민간인 사찰 문건에 <한겨레21> 편집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당시 수많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 진행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었다. 우리도 모르게 아파트의 벽들이 투명해지고, 징그러운 사찰의 눈빛이 기본권의 벽을 뚫고 들어와 ‘자유로운’ 개인의 영역을 훑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 6월 <한겨레21> 764호 표지이야기에는 미국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가 제시한,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성이 소개돼 있다.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개인의 전과와 정치성향, 사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자료를 활용한다.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비판적 검사(판사)를 해임하는 등 법의 지배 방식을 뒤엎는다.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시민들의 사상·행위·표현을 ‘법의 이름으로’ 처벌한다…. 최근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과 소름 돋도록 일치한다.
이제 비로소 “잠조차 사적 영역이 아니”라는 표현의 절실함을 알겠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선 것, 실존의 심연을 덮는 슬픔이다. 인간의 외피를 입고 있으되,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기본권의 경계 밖, 짐승의 영토로 내동댕이쳐졌다는 깨달음은 온몸과 정신을 구정물로 적시는 듯하다. 슬픔의 깊이를 더하는 건 이 추잡한 현실을 되돌리는 것조차 순조롭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사찰의 책임자도, 그를 처벌해야 할 검찰도, 민주주의 파괴를 개탄해야 할 상당수 언론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물타기에 급급하다. 과거 우리나라나 외국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제도적으로 단죄와 교정 과정을 거쳤기에 민주주의가 살아남았다. 이것이 불가능한 사회는 이행기를 지나 본격적인 파시즘의 도래라는 절망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다. 우리에게 선거가 다가와 있다는 것,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파시스트 세력을 민주주의의 전당에서 축출할 기회가 한번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박용현 - 한겨레 신문 오피니언넷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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