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지도자의 자격과 공공의식

● 칼럼 2012. 4. 27. 17:57 Posted by SisaHan
김문수 경기지사가 엊그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새누리당에선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도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고, 민주통합당에서도 문재인 국회의원 당선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속속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여기에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재야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감안한다면, 올해 대선 후보군은 벌써 1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사람들은 적어도 나라 전체를 염두에 두고 비전을 가꿔왔을 터이니. 하지만 후보군 가운데 정말 우리의 삶을 맡겨도 좋겠다는 확신을 주는 이는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앞으로 검증과정에서 나라를 이끌 훌륭한 경륜을 갖춘 분이 드러나길 바랄 뿐이다.
대통령책임제 나라에서 대통령을 잘 뽑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올해 대선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떤 점에선 여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새 대통령이 단순히 이명박 정권이 지난 4년간 저질러놓은 난장판을 뒷설거지하는 일을 넘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평화·복지·공정에 바탕한 새로운 ‘2013 체제’를 만들어갈 책무를 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질은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적 품성,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해결능력,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소통능력 등 다양한 자질과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선에 나선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자질을 갖추는 것에 더해 정치에 관한 공자의 말씀을 경청해봤으면 좋겠다. 공자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자공에게 “먹을 것을 충족시키고, 군사를 충분히 갖추며,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공이 그 가운데 부득이 뭔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가장 먼저 버릴 것은 군사이고 그다음은 먹을 것이며 마지막까지 저버려선 안 될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고 했다. 국방정책이나 경제정책 등 개별 정책을 잘하는 능력이 있어도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국민의 믿음을 얻는 일은 그다지 녹록한 일이 아닌 듯하다. 정부 수립 이래 역대 대통령을 돌아봐도 그들 가운데 누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승만·박정희는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해 여러 차례 약속을 뒤엎었고, 전두환은 민주·정의 등 정권의 속성에 반하는 기치를 내세움으로써 국민을 우롱했다. 그 이후의 대통령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얻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부족도 그 중요한 원인 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 역대 대통령의 상당수는 그것을 사적 이익에 동원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 대표적 예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고소영’이니 ‘만사형통’이니 하는 말들이 회자되고,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단죄를 받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것,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사에 자신의 특보를 앉힌 것이나, 자신한테 비판적인 민간인을 사찰하는 데 공무원을 동원한 것은 그의 공공의식 결여의 증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대통령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회의원 당선인 문대성·김형태 씨를 보자. 그들의 공공의식 수준은 국회의원이란 공적 책임을 맡겠다면서 복사 수준의 표절을 하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제수 성폭행 미수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제시돼도 이를 부인하며, 오로지 ‘박근혜 위원장과 새누리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탈당한다고 할 정도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공직추구자의 도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차기 대통령에겐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만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