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현직 교사도 읽고 깜짝 놀랐다

 '수준 미달'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이 중 처음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는 보수적 시각으로 현대사를 서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교과서는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을 실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을 제일 앞에 실었다. ⓒ 연합

 

극우 세력이 준동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게 될 줄 기대했건만 김이 제대로 새어버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가 반대 여론에 밀려 좌초된 후 뉴라이트 세력의 두 번째 '도발'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수준과 품격을 갖춘 교과서일 줄 알았다. 올해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한학평)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이야기다.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심지어 독립기념관장까지 역사 연구와 관련된 다수 국책기관의 수장이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인사로 채워진 상황에서 한학평의 교과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들의 역사 인식과 의도, 수준 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여겨진 까닭이다.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모든 과목의 견본 교과서가 일선 학교로 배부됐다. 과목별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검정 교과서를 살펴본 뒤 점수를 매겨 평가한 뒤 합산해 내년에 사용할 교과서를 선정하게 된다. 현재 학교마다 모든 교사가 많게는 십수 권의 교과서들을 일일이 검토하느라 경황이 없다.

그런데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일괄적으로 배부됐는데도 유독 한국사만 나흘 뒤로 미뤄졌다. 검정 과정에 잡음이 있거나, 교육부가 교사와 여론을 상대로 간을 보려는 행태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듯 한학평의 교과서는 학교로 배부되자마자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었고, 이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둔 형국이 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는 전혀 무관한 아이들조차 찾아와 한학평 교과서를 구경할 수 없냐고 물을 정도가 됐다. 교과서 관련 뉴스를 봤다며, 사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거다. 아직 교과서 선정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학평 교과서를 비하하는 별명을 짓는 아이들도 있다. 그때마다 그들 앞에서 (선정 작업 전)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며 한학평 교과서를 두둔하곤 했다.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까?

 

▲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이 중 처음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는 보수적 시각으로 현대사를 서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과서 표지에 3·1운동, 88서울올림픽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함께 연평도 포격사건 그림을 넣은 모습. ⓒ 연합

 

거듭 고백하건대, 자칭 보수 세력이 만든 제대로 된 한국사 교과서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어차피 역사란 해석의 학문이고, 공론의 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수렴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의 '품'이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좌우의 날개로 나는 건 새뿐 아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 역사도 좌우의 날개를 펼쳐 날 때라야 온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 한학평 교과서는 좌우를 떠나 교과서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수준 미달이다. 기존의 역사적 상식을 무시했고, 철 지난 색깔론을 동원하는가 하면, 금기시된 식민사관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예컨대, 6.25 전쟁 이후 남과 북에서 이승만과 김일성의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다는 건 이미 역사적 상식인데, 이승만의 '독재'는 '장기 집권'이라는 용어로 은근슬쩍 지웠다. 1946년 이승만의 '정읍 발언'은 분단으로 치달은 직접적 계기인데도, 그 책임을 오롯이 북에 넘기고 있다는 점도 위험하다.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한 수만 명의 제주도민과 여수, 순천 지역 양민들을 학살한 책임마저 북에 떠넘기려는 술책이다.

교과서 표지에 지난 연평도 포격 사건 삽화를 내건 것도 뜬금없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실시된 우리 군의 서해상 사격 훈련을 문제 삼아 북한이 도발한 것으로, 당시 국내외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북한의 정권 안정을 위한 기도라는 분석부터 과거 정부의 '햇볕 정책' 승계를 거부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의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표지의 사진이나 삽화는 교과서 발행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6.25 전쟁 관련 내용도 아니고, 연평도 포격 사건을 강조한 건 대놓고 반공, 반북의 기치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가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도 '끔찍한 삶을 살게 했다'는 한 줄짜리 문장으로 퉁치고 있다. 일제에 부역한 지식인들의 공과를 함께 평가하자는 탐구활동 주제에서는, '부역'이라는 표현조차 감춘 채 '협력'이라는 단어를 썼다.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고 정부 수립 후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대표적인 독립운동가('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명'에 포함)로 앞세운 건 독립운동사를 희화화하는 행태다. 민족시인 윤동주와 친일 문인 서정주를 양시론적 입장에서 비교하는 건 역사를 타락시키는 행위다. 양시론과 양비론은 역사교육의 금기다.

눈에 띄는 건, 한국사 교과서 '1'과 '2' 두 권 중 2학기 때 배우게 되는 2권의 내용이 유독 나머지 8종 교과서와 극단적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학평 교과서 1권의 경우도 과거 국정교과서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여있어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우파 '의 성과가 이 교과서란 말인가

 

▲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지난8월 30일 공개됐다. 사진은 한국학력평가원 고교 한국사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내용이 서술된 모습. [국회 교육위원회 김준혁 의원실 제공]

 

한학평 교과서는 분단의 모순과 반공, 반북의 정서에 기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마음으로 이때다 싶어 제작했을 테지만, 서두른 티가 너무 역력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사실 관계의 오류만도 무려 3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교과서는커녕 책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이쯤 되니 검정을 담당한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업체의 적격 여부부터 교과서 내용 검증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공직사회가 죄다 일손을 놓은 채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지만, 적어도 미래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공직자라면 그래선 곤란하다.

보수를 참칭하는 극우 세력들은 입만 열면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부르댔다. '좌편향 교과서'로 수업한 전교조가 우리 교육을 망쳤다면서, 공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전교조 탓으로 돌리는 데 혈안이었다. 교육계에서도 이른바 '대안 우파'가 등장해 정치 세력화했고, '좌편향 교과서'에 맞서 '대안 교과서' 제작에 발 벗고 나섰다.

그 오랜 성과물이 이 한학평 교과서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못해 얼굴마저 화끈거린다. 사상과 학문의 시장에서 경쟁하자고 대련을 신청하기엔 수준이 떨어진다. 마치 지난 2월에 개봉된 <건국전쟁>의 조악함을 떠올리게 한다. 최소한의 균형 감각조차 상실한 <건국전쟁>은 이승만의 업적을 재조명하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이념적 양극화만 부추긴 꼴이 됐다.

한학평 교과서를 살펴보면서 엉뚱한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교과서를 두 권 선택해서 배워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 한학평 교과서와 다른 교과서를 서로 대조해 공부하다 보면, 아이들이 친일파가 미군정의 수족이 되어 이승만과 공생한 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하며 승승장구한 참담한 역사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나아가 한학평 교과서 집필진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극우 세력의 실상도 알게 될 테고, 그들과 사상적 일심동체인 현 정부의 의식 수준을 평가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이번 사달을 교육에 잘만 활용하면, 아이들의 역사의식을 성장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서부원 기자 >

‘수천명 조선인 태운 선박 폭발침몰’ 우키시마호 참사

기시다 방한 하루 앞두고 승선자 명단 일부 79년만에 공개하며 “인도적 차원”

 
 
             1945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등을 태우고 교토 앞바다에서 폭침한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
 

일본 정부가 1945년 광복 직후 강제동원 노동자 등 재일 한국인들이 탔던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 침몰 당시 조선인 명부 제공과 관련해 “한국 정부 요청을 받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명부 제공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정부 대변인 겸 관방장관은 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후생노동성이 보유하고 있는 우키시마마루호 침몰 관련 문서 가운데 정밀조사를 마친 (조선인 탑승자와 관련) 문서에 대해 5일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는 이제까지 과거 군속 관련 (한국인) 명부나 포괄적인 명부 전달과 관련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가능한 성실하게 대응해 왔으며, 우키시마마루호 승선자 정보도 이런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은 1945년 8월24일, 광복을 맞은 한국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올랐던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호가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사건 당시 전체 승선자 3700여명, 이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가 524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인 생환자와 사망자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고, 승선자 8천여명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만 수천 명에 이른다고 맞서 왔다.

한국 정부는 이전부터 우시키마마루호와 관련해 일본에 자료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건 발생 이후 79년간 자료를 주지 않다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일정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처음 승선자 명단 일부를 내놨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내부조사를 마친 19건의 자료를 이날 도쿄 주일대사관에 우선 제공하고, 다른 승선자 명부 자료도 내부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도 우키시마마루호 관련 사망자 명부를 추가 제공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승선 명부를 한국에 전달한 과정에 대해 자세한 (협상) 경위는 답변을 삼가겠다”면서도 “후생노동성이 보유하고 있는 우키시마마루호 관련 다른 명부에 대해서도 향후 조사가 완전히 끝나는 대로 한국 정부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본 정부가 확보한 자료 가운데 추가로 어느 수준의 자료를 제공할지는 불분명 하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마루호 승선 명부 관련 자료가 70종 안팎이라고 밝혀왔는데, 이번에 외교부를 통해 보내온 19건 안에 몇 명의 인적 정보가 들어 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도쿄=홍석재 특파원 >

 

우키시마호 유족 “정부, 79년 기다린 유족에 명부공개·진상규명”

한영용 우키시마유족회 회장 인터뷰

 
 
한영용 우키시마유족회 회장(왼쪽)이 지난 7월 도쿄에서 최봉태 변호사(오른쪽)과 함께 후쿠시마 미츠호 일본 사민당 대표를 만나 우키시마 승선자 명부 사본을 전달받고 있다. 한영용 회장 제공
 

“일본에서 승선자 명부를 받았다는데, 정부에선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 79년을 기다렸다. 유족들한테 하루빨리 명부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

한영용(82) 우키시마유족회장은 8일과 9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답답한 심정을 여러차례 이야기했다. 79년간 승선자 명부의 존재를 부인해온 일본 정부가 지난 5일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일부를 외교부에 전달했지만, 유족들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외교부에서 듣기로는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승선자 명부 전체는 일본 정부가 공개를 거부했다고 한다. 유족들이 알아서 찾아오라는 얘기인데, 정부에 제대로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한 회장의 아버지 고 한석희씨는 1945년 1월 일본 아오모리로 강제동원됐다. 패전한 일본은 수많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부산항으로 돌려보내겠다며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에 태웠다. 1945년 8월22일 아오모리항을 출발한 우키시마호는 부산항이 아닌 교토 마이즈루항으로 향했다. 8월24일 그곳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배가 침몰했고 타고 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세살이었던 한 회장은 1970년대부터 선친의 유해를 찾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 1991년 우키시마호 피해자 유족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배상 민사소송도 제기했지만, 일본 사법부는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1년 한영용 회장 등이 도쿄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설명회를 하고 있다. 한영용 회장 제공
 

한 회장은 일본이 이번에 내놓은 승선자 명부 일부 뿐 아니라 전체 명부를 조속히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75종의 명부 가운데 19종만 보냈다는데, 나머지는 언제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79년을 기다렸는데, 100년 동안 기다리란 말인가. 아버지를 (끌고가) 부려먹고 목숨을 빼앗은 것도 원통한 데, 79년 만에 내놓은 게 명부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니 기가 막힌다.”

 
 

승선자 명부 입수는 시작일 뿐 진상 규명과 유골 발굴·봉환 등 남은 숙제가 훨씬 많다. 그는 진상규명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정부 대신 지난 2012년 5월엔 자비를 들여 스쿠버다이버 2명을 데리고 일본 항만청 허가를 받아 우키시마호 폭침 현장 바닷속을 1주일간 조사하기도 했다. “유품과 유골이 침몰 현장 3m 펄 아래 묻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서 인양하고, 일본 도쿄 유텐지에 합골된 희생자 유해 275위도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한영용씨의 부친 한석희씨가 공부했던 책,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부친의 유일한 유품이다. 한영용 회장 제공
 

양국 정부 모두 사건조사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은 탓에 희생자 규모부터 의문투성이다. 한 회장은 “일본 정부는 승선자가 3700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1만2천명이고, 부산추모협회 조사는 8천명이다. 침몰 원인도 엇갈린다. 일본은 미국 기뢰 때문이라는데, 살아 돌아온 동네 어른은 분명히 배 안에서 폭발물이 터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진상규명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노력이 관건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장관 등에게 수많은 탄원서를 보냈다는 한 회장은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요즘 하는 얘기를 들으면 기가 막히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 말대로 ‘일제시대에 우리가 일본인’이었다면, 일본 정부가 유족들한테 원호금(군인·군속 등에게 주는 돈)을 주는게 맞지 않으냐고 따져묻고 싶다”고 했다.  < 박민희 기자 >

 

13일 오전 10시까지 단식…"정부 대답 없으면 사직 불가피"

 

"2025년도 의대 증원 취소 촉구"…의대 교수들 삭발·단식 투쟁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반대하는 의대 교수들이 삭발과 단식 투쟁에 나서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채희복 충북대병원·의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충효 강원대 의과대학·강원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 박평재 고대의료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9일 충북 의대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열고 2025년 의대 증원 취소를 촉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병원을 지키면서 의료 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힘에 부치도록 노력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며 "이제 마지막으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곡하게 요청한다. 현재의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폐기하고 의료 대란의 원인 제공자를 중징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비대위원장은 "2025년 의대 정원을 취소해야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설득할 수 있다"며 "간호대와 한의대는 입시 도중 정원이 변경된 적이 있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반대" 의대 교수들 삭발·단식 투쟁= 채희복 충북대병원·의대 비상대책위원장 등 의대 교수 3명이 9일 오후 충북대 의과대학 본관 앞에서 의대 증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뒤 삭발식을 열고 있다. 2024.9.9

 

 

그러면서 "의정여야 합의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며 단식 투쟁이 끝날 때까지 정부의 대답이 없으면 사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삭발식을 마치고 충북대 의대 첨단강의실로 이동, 오는 13일 오전 10시까지 24시간 단식 투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 연합 천경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