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5·18문서 14건 추가 공개…군사반란으로 권력장악 전두환에 '딜레마'

발포 책임자 등 내용은 이번에도 없어…미국에 공개 요청한 80건중 23건 남아

 

1980년 5월 18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위를 하고 있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실권이 없었고,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실세였다는 점이 미국 정부의 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

2일 미 국무부가 외교부에 전달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서(14건·약 53쪽)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본국에 긴급 타전한 '서울에서의 탄압'이란 제목의 전문도 포함됐다.

 

이 전문은 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로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전두환에 대해 "군부 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당시 전두환의 계급은 소장에 불과했지만, 군부의 실세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며 '무기력한 대통령'(HELPLESS PRESIDENT)이라고 표현했다.

 

해당 전문은 1990년대 중반 기밀 문서에서 해제됐지만 전두환과 최규하에 대한 이런 기술은 가려져 있다가 이번에 빠진 부분없이 모두 공개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서 고립된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가 1978년 7월 26일 신임인사차 중앙청을 예방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美 대사와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규하 대통령뿐 아니라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도 실권이 없음을 솔직하게 밝힌 내용이 1980년 1월10일 주한 미 대사관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2·12 사태 후 국방부 장관이 된 주 장관이 방한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의원으로부터 '우리는 한국군의 안정을 바라며 지휘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신을 돕겠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군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12·12사태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군부 세력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실질적 지휘체계가 12·12 이후 형성됐다"고 말했다.

미 정부가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도 실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한 정황도 외교문서에서 확인된다.

 

미 국무부가 1980년 3월13월 작성한 문서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전두환 간 면담 내용이 담겼는데, 국무부는 "전두환이 이번 만남을 올리브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그의 높아진 위상을 수용하고 당신(미 대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전두환이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국무부가 지적한 것"이라며 "전두환과 접촉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미국 정부의 메시지도 계속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 공개는 5·18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선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시민단체 및 학계의 의견에 따른 우리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미국에 모두 문서 80건의 공개를 요구했는데, 작년 43건에 이어 이번에 14건이 공개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나 지휘체계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런 내용은 국무부가 아닌 미국 국방부나 한미연합사령부 등 군 기관이 보관하는 문서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아직 23건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정치적 파급력이 큰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일 수 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나머지 23건은 미국 정부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면 공개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겁도 없이 커다란 곰 향해 돌진

곰은 소녀 공격에 담장에서 떨어져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어미 곰 공격하는 소녀: 어미 곰은 소녀가 미는 바람에 담장 아래로 떨어졌다.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의 17세 소녀가 반려견을 공격하는 커다란 어미 곰을 내쫓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큰 화제다.

2일 AP통신, ABC방송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외곽 도시 브래드버리에 사는 헤일리 모리니코는 미국의 현충일인 지난 31일 메모리얼 데이에 새끼 두마리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침입한 불청객 어미 곰을 용감하게 쫓아냈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보안 카메라 영상을 보면 환한 대낮에 1.5m가량으로 추정되는 낮은 높이의 한 주택가 담장 위로 갈색 털을 가진 어미 곰 한 마리가 새끼 곰 두 마리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이에 모리니코 가족의 반려견 네 마리가 곰들을 향해 달려와 짖기 시작하자 새끼 곰들이 놀라 도망쳤으며, 어미 곰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 위에서 연신 짖어대는 검은 대형견을 향해 강하게 앞발을 휘둘렀다.

 

반려견 구해 뛰어가는 소녀: 어미 곰의 공격을 받던 반려견을 구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소녀. 인스타그램 캡처.

 

이때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모리니코는 반려견들의 짖는 소리에 슬리퍼를 신고 급하게 정원으로 뛰쳐나왔다.

소녀는 고함을 치며 또 다른 반려견을 공격하고 있던 곰에게로 달려가 두 손으로 밀쳐낸 뒤 바닥의 개를 안고 서둘러 집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개들의 짖는 소리에 신경을 쓰던 어미 곰은 소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담장 위에서 미끄러져 뒤로 떨어졌으나 다시 앞발로 담장을 붙잡고 기어 올라온 뒤 숨어있던 새끼 곰들에게로 돌아갔다.

이번 일이 화제가 되자 모리니코는 틱톡에 올린 영상에서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곰과 싸웠다"고 말했다.

 

떠돌아다니는 개나 다람쥐 때문에 반려견들이 짖는 줄 알았다던 소녀는 "곰이 개처럼 보이긴 했다"면서 "내가 접근했을 때 곰은 가장 어린 강아지 발렌티나를 공격하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도 나는 산에 살았다. 이런 일은 내게 흔했다"면서 "여름이면 곰들은 더 자주 출몰한다"고 말했다.

당시 곰을 세게 공격하지는 않았다던 모리니코는 "균형을 잃을 정도로만 밀었다"면서 어미 곰이 이번 일로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녀의 엄마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우리 아이가 초인적인 힘으로 반려견들을 구해냈다"면서 폐쇄회로(CC)TV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모리니코는 곰을 밀면서 손가락과 무릎을 살짝 다쳤으나 큰 이상은 없고, 반려견들의 상태도 괜찮다고 전했다.

이 영상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4천400만 회 넘게 재생되는 등 크게 주목받고 있다.

 

어미 곰과 새끼들: 어미 곰이 새끼 두마리를 데리고 주택가 담장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어미 곰과 반려견의 대치: 곰이 나타나자 반려견들이 달려가 짖어대며 서로 대치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1일 광주 장애인국민체육센터서 원정대 발대식

 

    열 손가락 없는 김홍빈 산악인 [콜핑 제공]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 도전에 나선다.

1일 오후 광주 장애인국민체육센터에서는 김 대장 원정대 발대식이 열렸다.

발대식에는 이용섭 광주시장,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장, 장병완 전 국회의원, 박만영 콜핑 회장 등이 참석해 도전 성공을 기원했다.

원정대는 김홍빈 대장을 주축으로 류재강 등반대장 등 6명으로 구성됐다.

 

원정대는 10일부터 다음 달 29일까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 고봉인 브로드피크(8천47m)를 등정할 계획이다.

당초 지난해 등정 계획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됐다.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천194m) 단독 등반 중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산악인이다.

김 대장은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중 13개의 정상에 올랐다. 이번 원정이 성공하면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