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민주당에 친일 비호 정치인 있는 것 같다"

● COREA 2021. 3. 2. 07:4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친일파 파묘법' 당론 채택하지 않는 것에 불만

 

                      발언하는 김원웅 광복회장

 

김원웅 광복회장은 1일 "더불어민주당 안에도 친일을 비호하는 소수의 사람, 정치인이 있는 것 같다"며 특정 의원을 지목했다.

김 회장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더불어민주당이 '친일파 파묘법'(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과 관련, "민주당 지도부가 당내 의견을 완전히 하나로 모으지 못한 단계인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강북구에 있는 민주당 소속 P 국회의원이 '그런 법을 왜 만드느냐'는 언행을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북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천준호 의원(강북갑)과 박용진 의원(강북을)의 지역구다.

박 의원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친일파 파묘법과 관련해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상황에서 선도국가로 가려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새로운 진영 대립을 낳을 수 있는 과거사의 무한 반복은 답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친일파 파묘법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도록 하고, 안장 자격 상실시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김 회장은 위안부를 매춘부로 규정한 논문을 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에 대해 "나치를 찬양하면서 학문의 자유라고 말 못 하지 않느냐"면서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설명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벗어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대만까지 1,200곳 이상 … "추가 발견 계속"

중 전문가 "역사상 유례없는 부끄러운 사건"

  

일본군에 점령된 중국 상하이(上海) 거리의 전쟁 폐허 속에서 일본군 위안소를 가리키는 '황군위안소'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이 사진은 1937년 말에서 1938년 초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쑤즈량 상하이사범대 교수 제공=연합뉴스

 

중국 상하이(上海)시 훙커우(虹口)구 둥바오싱(東寶興)로에는 전면에 아치 모양 창문이 나란히 박힌 오랜 2층 서양식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이 건물에는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가 바로 이 건물에 있던 것이다.

일본군은 1931년 11월부터 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 패전 때까지 이곳에서 일본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인 '다이살롱'(大一沙龍)을 운영했다.

다이살롱은 세계 최초로 들어선 일본군 위안소였다. 또 가장 오래 운영된 일본군 위안소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 '다이살롱'이 있던 건물. 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구 둥바오싱(東寶興)로의 옛 '다이살롱' 건물 앞을 한 행인이 지나고 있다.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성을 부정하는 취지의 논문을 써 거센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중국 지역에서만 다이살롱처럼 실제 존재한 것으로 확인된 일본군 위안소만 해도 1천 곳을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는 28일 연합뉴스에 지금까지 중국에서 각종 사료를 통해 실재한 것으로 확인한 일본군 위안소가 최소 1천127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행 성(省)·직할시별로 보면 후베이성이 295곳으로 가장 많았고 산둥성(208곳), 저장성(183곳), 상하이시(172곳), 장쑤성(70곳), 안후이성(70곳), 후난성(50곳), 광둥성(42곳), 윈난성(37곳) 등이다.

당시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에서도 최소 137곳의 위안소가 운영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대만까지 합쳤을 때 중국어권 지역에서 발견된 일본군 위안소는 '1천264곳 이상'이다.

센터 측은 1천여 곳에 달하는 일본군 위안소가 각종 사료를 통해 철저히 확인된 곳만 추려낸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동북3성, 베이징시, 톈진시, 허난성, 허베이성, 푸젠성, 하이난성 등 일본군 위안소가 다수 존재했던 다른 지역의 경우 일본군 위안소의 전체적 규모를 산정하는 작업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어 향후 존재가 확인된 일본군 위안소 규모가 수천 곳으로 급증할 것으로 센터 측은 전망했다.

나아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중국 외에도 동남아시아 각국 등 각지에서 다수의 위안소를 운영한 사실까지 고려하면 전체 일본군 위안소 운영 규모는 훨씬 클 수밖에 없다고 센터 측은 설명한다.

이번에 1차 규모가 드러난 중국 내 위안소는 한반도 출신 위안부들이 큰 고통을 받던 장소다.

센터 소장인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사실 한국 출신 위안부 여성들이 주로 피해를 본 곳이 중국"이라며 "일본이 중국에 주둔하면서 북쪽의 헤이룽장에서 남쪽의 하이난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든 한국 위안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서 확인된 것만 해도 1천 곳이 넘는 방대한 규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지적한다.

                               중국 위안부 문제 전문가 쑤즈량 교수.

쑤 교수는 "많은 사료가 위안부가 자유를 잃고 일본군의 통제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하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위안소의 규모에 관한 것"이라며 "인류 문명사상 이런 시설이 이렇게 많이 설치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군이 상하이 한 도시에서만 해도 최소 172개의 위안소를 뒀는데 이는 매우 부끄러운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의 10여개 성과 직할시에서 (위안소 분포를) 조사하고 있지만 계속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쑤 교수는 연합뉴스에 과거 위안소가 운영되고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찍힌 사진을 제공했다.

1937년 말에서 1938년 초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에는 폐허가 된 상하이의 도시 한복판에 '황군위안소'(皇軍慰安所)라는 안내판이 걸린 모습이 나와 있다.

쑤 교수는 "이 사진은 일본군 점령 하의 상하이에서 촬영된 것으로서 주변이 대부분 폐허로 변한 전장 한복판에서도 일본군이 위안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쑤 교수는 "과거 위안소가 있던 건물들이 도시 개발로 대량으로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며 "우리 대에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젊은이들이 계속 이어 연구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습니다

● COREA 2021. 3. 1. 12:2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6,228명 후손 확인 안돼 훈장도 전하지 못해

 

3·1독립운동 102주년인 1일 시민들이 독립운동 선열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돌아보고 있다.

 

광복 후 75년이 지났지만 후손을 찾지 못해 잊히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안정된 가정사와 재산상의 이유 등으로 후손이 명확한 친일파와 달리, 독립운동가들은 국외거주와 불우한 생활, 자손들의 무관심, 월북 등으로 후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채찬·장재욱·백광필·김경도·이갑문 등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6228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으로 건국훈·포장 등을 받았지만, 전해줄 후손이 없어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다.

 

충북 충주 출신 채찬.

 

                                            충북 충주 출신 채찬

충북 충주 출신 채찬은 1905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무장투쟁을 하다, 1910년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 뒤 국내로 들어와 친일기관인 일민단, 보민회 등을 습격하는 등 무장투쟁을 하다가 1922년 상해임시정부에 파견돼 주만참의부를 설립해 참의장 겸 제1중대장으로 항일투쟁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충북 청주 출신 백광필.

 

                                           충북 청주 출신 백광필

충북 청주 출신 백광필은 1919년 최석인, 류연화와 함께 <자유민보>를 창간해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은 독립해야만 한다”는 논설기사를 싣고 1000매씩 5호까지 제작 배포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3년 옥고를 치른 뒤 1921년 2월17일 출소했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

 

충남 논산 출신 장재욱.

 

                                            충남 논산 출신 장재욱

충남 논산 출신 장재욱은 1927년 5월 한족노동당에 가입해 1928년 칭위엔현 남산성 지방대표로 중앙대표대회에 참가해 재만농민동맹을 결성하는데 기여했다. 1929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한 뒤, 자위대에 참여해 무기 탈취를 위해 칭위엔현 중국인 보갑대를 습격하기도 했다. 1932년 하이롱 영사 경찰에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 및 살인’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6년 7월8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

 

경기 수원 출신 김경도.

 

                                            경기 수원 출신 김경도

경기 수원 출신 김경도는 1919년 수원 오산시장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감옥살이를 했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

 

제주 출신 이갑문.

 

                                             제주 출신 이갑문.

제주 출신 이갑문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1년 7월 서울 시내 중등학교 동맹휴업에 참여해 격문 2300여매를 제작 배포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7월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용산적색노동조합’ 사건에 연루돼 10여명의 동료들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송치됐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8년 건국포장.

국가보훈처는 누리집(https://e-gonghun.mpva.go.kr/user/RewardDisList.do)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적으로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 명단과 정보를 제공하고 후손을 찾고 있다. 공훈관리과(044-202-5781)를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박종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