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7주기 맞아 한달간 주말에 일반 공개… 손녀 낙서도 그대로

“중국 진시황이 살던 아방궁처럼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더니, 어디를 아방궁이라 하는지 모르겠네요. 실제 둘러보니 소박한 모습까지도 생전에 노 대통령을 그대로 빼닮았는뎄E 빼닮았는데….”

1일 오전 11시 부인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특별관람한 신양식(49·경남 창원시)씨는 이렇게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집을 지어, 퇴임 직후인 2008년 2월25일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9년 5월23일까지 살았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5월23일)를 맞아, 5월 한달 동안 토·일요일마다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다.

노 전 대통령 사저는 “지붕 때문에 뒷산 풍광이 가려서는 안된다”는 그의 뜻에 따라 나즈막하게 지어졌다. 대문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는 중문을 지나면 가로·세로 7m의 사각형 마당과 마주친다. 마당 건너편은 서재, 오른쪽은 거실·침실·식당·사랑채 등 개인공간, 왼쪽은 경호시설이 배치돼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 집에 혼자 살던 부인 권양숙씨가 지난해 11월 인근에 집을 지어 거처를 옮기면서, 경호시설은 비어있다. 마당 둘레에는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회랑처럼 지붕 덮힌 복도가 있다.

서재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읽던 책 1000여권이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다. 식당엔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식사했던 4인용 식탁이 놓여있다. 거실 책상엔 컴퓨터가 놓여있는데,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5월23일 새벽 5시20분께부터 5시40분께까지 이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사저 내 사랑채를 둘러보고 있다.


사랑채에선 네쪽의 넓은 창문을 통해 인근 봉화산을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창문 너머 경치를 “마치 병풍 그림을 보는 것 같다”며 즐겼다고 한다. 벽에는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글 ‘사람사는 세상’이 액자에 걸려 있는데, 액자 아래 벽면에는 연필 낙서가 남아있다. 한유진 노무현재단 기획관리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손자가 낙서한 것인데, 그는 손님들에게 ‘우리 손녀가 그린 거예요’라며 자랑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건물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뜰에는 경복궁 정원을 본뜬 계단식 정원이 있다. 많은 나무가 있지만, 기념식수는 2008년 11월16일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가 기증한 산딸나무 1그루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노 전 대통령 서재를 둘러보고 있다.


사저를 지을 당시 보수언론들은 집이 크고 화려하다며 비판을 쏟아냈고, 일부 정치인들도 ‘아방궁’이라며 가세했다. 이날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둘러본 시민들은 그런 주장을 했던 언론과 정치인들을 오히려 비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온 김시은(62)씨는 “아방궁이 아니라 그저 일반주택일 뿐이었다. 재벌들 주택보다도 훨씬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경남 김해시 장유동에서 온 설상근(54)씨도 “언론에서 아방궁이라고 하도 떠들어서 집이 무척 크고 화려할줄 알았는데, 한마디로 소박했다. 사랑채에 손녀의 낙서를 지우고 않고 놔둔 것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은 23일 오후 2시 사저 인근 묘역에서 열린다. 이와 별도로 5월 한달 동안 봉하마을에서는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란 주제로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노무현재단은 5월21·22·28·29일 노 전 대통령 사저 특별관람 신청을 오는 9일 오전 10시 재단 누리집(knowhow.or.kr)을 통해 받는다. 5월15일까지는 이미 신청마감됐다.

오상호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은 “특별관람 기간에 발견되는 문제점을 보완해 노 전 대통령 사저를 가능한 빨리 일반에 완전히 공개할 계획인데, 공개시점은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1500자 칼럼] 그랜드 벨리 통신 1

● 칼럼 2016. 4. 30. 19:49 Posted by SisaHan

쨍그랑 쨍그랑. 텃밭 일구는 쇠스랑 소리가 섣부른 봄을 재촉하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햇볕이 좋다며 잠깐 해 바라기 한다던 그이가 앞선 마음을 가누지 못해 연장을 챙겨 뒤뜰로 향한지 며칠 만에 제법 틀을 갖춘 텃밭이 되어간다. 아마도 지루한 겨울동안 수없이 그려 둔 밑그림 효과이지 싶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나도 덩달아 미완성인 텃밭을 곁눈질 하며 고이 모셔둔 야채 봉지들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나름대로 자리 배치시키느라 열을 올린다.


텃밭의 지존인 상추와 쑥갓은 맨 앞자리에다 뿌리고, 쓰임새가 다양한 부추는 가능한 한 넓게 터를 잡아야겠다. 키 큰 깻잎 군단은 뒷자리로 돌리고 얼갈이배추와 열무도 두어 두둑 뿌려야지. 가장 햇볕 좋은 곳은 당연히 청양고추 몫이고 넝쿨쟁이 더덕도 탐은 나는데 손바닥 만한 저 텃밭이 다 받아 주기나 할까,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다가 새파란 채소 잎이 나풀거리는 옆집 텃밭에서 시선이 멈췄다. 큼직한 케일에다 가녀린 팬지꽃까지, 며칠 째 모녀가 그이의 훈수를 받아가며 어쭙잖은 삽질을 하더니 어느 사이 모종까지 이식해 놓은 것이다.
씨 뿌리기도 망설여지는 시기에 봄 채비를 끝낸 이웃집을 보며 그들의 바람대로 더 이상 그런 날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상처투성이 숲을 건너다본다.
우리 가족은 그랜드 리버(Grand river) 강물이 마을을 감싸고도는 그랜드 벨리(Grand valley) 라는 소도시에 터전을 잡은지 네 계절 째다. 이곳은 ‘그랜드’라는 거대한 수식어가 붙은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 그리고 시냇물보다 규모가 조금 큰 강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이름이 주는 뉘앙스와 딴판인 마을길을 오갈 때마다 어느 작명가의 가장된 표현이라 여겼는데 겨울 꽁무니에서 그에 걸맞은 광경을 목도했다.


‘강물이 일어섰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포개진 거대한 얼음덩이가 솟구치거나 강변에 쌓여진 광경을 보며 번뜩 들어온 생각이다. 언제나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이 어느 날 갑자기 폭도처럼 일어나 남하하고 있는 광경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게 했던 강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후폭풍 격인 얼음비(freezing rain)는 온 마을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 연 이틀 얼음비가 내리더니 온 동네를 얼음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마을이며 숲이 얼음에 깔려 낮게 엎드린 광경은 소설 ‘더 로드’(The road) 에서 묘사한 지구의 종말을 연상하게 했다. 뒤이어 단전, 단수, 화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사이렌 소리가 온종일 끊이질 않았음은 물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얼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뿌리째 뽑히거나 찢어져 주민들의 재산에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토론토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100 km 남짓 떨어진 곳인데 상상 외의 모습으로 돌변한 자연 현상은 그 나름의 지형적 특성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붙여졌음직한 그랜드 리버, 그랜드 벨리는 결코 가장된 작명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아직도 그날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가슴 아프게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는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더 단단히 만드는 부수적 효과가 있음을 인지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봄이 성큼 왔으면 좋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칼럼] 북한 미사일 미스터리

● 칼럼 2016. 4. 30. 19:47 Posted by SisaHan

최근 한·미 군사연습인 키리졸브·독수리훈련 때 북한의 대응을 보며 피식 웃은 적이 있다. 한·미가 대규모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을 하자, 얼마 안 있다 북한은 대규모 상륙과 반상륙방어 연습을 했다. 또 남한이 F-15K, F-16 등의 정밀타격 훈련을 하자, 이번에는 장거리 포병대 타격 연습과 KN-06 지대공미사일 발사로 응대했다. 적의 군사행동에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장군’ ‘멍군’ 하는 게 너무 즉흥적이어서 치기처럼 느껴졌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다. 한·미의 양보를 노린 무력시위라는 분석도 있고, 당대회를 앞둔 대내 결집용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키리졸브·독수리훈련 때 북한의 행동을 보며 어쩌면 항공우주 전문가 마르쿠스 실러의 2012년 랜드연구소 보고서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다는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실러는 당시 ‘북한 핵 미사일 위협의 특징’이란 보고서에서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북한 미사일이 군사 수단이라기보다 외교협상력 강화 등 전략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 근거로 실러가 제시한 것 중에는 ‘발사 횟수 부족’이 들어 있다. 실러에 따르면, 스커드와 노동, KN-02 등 미사일 대부분이 실전배치 전 1~3번 시험발사를 했고 배치 후 3~8차례 발사했다.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은 한 번도 발사한 적이 없다. 미국과 소련 등이 10여차례 시험발사를 거쳐 신뢰성을 확보한 뒤 실전배치하며 매년 1차례 정도 발사훈련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혹 김정은 제1비서 집권 이후 부쩍 늘어난 미사일 발사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이런 의구심에 “그렇지 않다. 잘 보라”는 항변이 아닐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2014년부터 급격히 늘었다. 매년 10차례 이상 스커드와 노동미사일 등을 쐈고, 올해 들어서도 벌써 5차례나 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한 방송에서 “집권 5년차인 김정은이 김정일 시대 18년보다 더 많이 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런 행동이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라면-사실 신뢰성이 확보돼야 상대에 위협이 될 수 있고 그래야 전략적 목적도 달성할 것이다-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지난 15일 처음 발사한 무수단은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해 중거리 이상의 미사일 능력에 흠집을 남겼다. 그러나 23일 발사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은 30㎞를 날아 몇 년 안에 실전배치될 가능성을 높였다. 또 북한이 이례적으로 공개한 대기권 재진입 실험, 고체연료 로켓 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용 엔진 분출실험 등은 향후 북한의 미사일이 훨씬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도 일깨웠다.


그래도 실러가 던진 의문은 유효하다. 북한의 국내총생산량(GDP)은 중남미의 코스타리카 수준인데, 이런 나라가 10여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을까. 또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은 80년대 스커드 B를 3년 만에 역설계하면서 시작됐다고들 하는데, 그런 뛰어난 역설계 능력이 왜 다른 분야, 예컨대 차량이나 산업기계, 농기계 등에는 발휘되지 않았을까. 북한의 역설계 능력, 즉 미사일 개발 능력이 과대포장된 건 아닐까. 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는 북한을 “정보기관이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실패한 사례”로 꼽았다. 미사일은 어떨까. 북한이 보여주는 대로 다 믿어야 할까.
< 박병수 -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