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홀리’는 거룩한 비즈니스
집회 현장서 개인정보 담긴 서명 수집
딸 운영 알뜰폰 등 6개 사업 가입 이용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에서 내란 선동 혐의 관련 입장을 말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주류 언론의 관심 밖에 있던 인물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부흥사로 지역 소규모 교회를 돌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선거 때마다 기독당의 원내 진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극우 개신교 집회에도 꾸준히 참여했지만 주목받진 못했다. 그랬던 그가 극우 진영의 우두머리로서 어지러운 한국 정치 한복판에 서 있다. 무엇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한겨레21은 2019년 전 목사를 열렬히 따랐던 한 지지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전 목사의 행보를 되짚어봤다.

“눈물이 나네요.”

2019년 9월 어느 날, 현금 100만원이 담긴 봉투를 받아 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날 전 목사에게 자발적 헌금 100만원을 전달한 인물은 대구에 사는 이아무개(60)씨다. 그는 열렬한 전광훈 지지자였다. 전 목사가 활짝 웃은 건 단지 100만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날 이씨가 들고 온 ‘메인’ 선물은 1만2천여 명의 생년월일과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긴 서명지였다. 두꺼운 서명철과 함께 돈을 준 이씨는 전 목사와 나란히 앉아 유튜브 방송에 출연했다.

 

1만명 서명 받아 갔지만…약속한 연금은 없었다

 

이씨는 대구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평범한 기독교 교인이었다. 정치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집회에 나가거나 거리 서명에 참여한 적도 없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2019년 5월쯤 유튜브에서 전 목사가 운영하던 ‘너알아티브이(TV)’를 접한 뒤부터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었던 전 목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파기했다는 등 7가지 주장을 내세우며 하야를 촉구했다. 국제외교에서 한국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거나 문 대통령이 주사파에 사로잡혀 한국을 해체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씨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런 주장을 반복적으로 접하다보니 어느새 정말 나라가 위험에 빠졌다고 느꼈다.

 

다만 그런 위기가 실재하는 것과 그가 행동에 나서는 것은 별개였다. 이런 이씨에게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건 전 목사의 연금 발언이었다. 이씨는 2025년 2월4일 대구에서 한겨레21 취재팀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전 목사가) 계속 책임져준다고 하고 연금을 준다고 하니까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한 거죠. 1만 명 이상 서명을 받으면 평생 연금을 준다고 서너 번 이야기했어요. 기독청 지으면 이름도 남겨준다고도 했고….”

지금은 너알아티브이 채널이 삭제돼 영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씨가 받은 서명 책자엔 이런 내용이 남아 있었다. ‘이 서명에 앞장서신 1만 명 이상 등록해 주신 서명자들은 앞으로 국가유공자로 추대하여 국가 운영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것 (…) 연금 지급을 비롯한 많은 대책을 세울 것입니다.’ 

 

이아무개씨가 2019년 9월 전광훈 목사를 만나 1만2천여 명의 문재인 하야 촉구 서명과 함께 100만원을 봉투에 담아 전달하는 모습. 이아무개씨 제공
 

일단 서명을 받기 시작한 뒤로는 거침없었다. 요양보호사 일도 그만뒀다.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에 많게는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았다. 외우려 하지 않아도 입에선 자연스럽게 ‘문재인 하야 7가지 이유’가 줄줄 흘러나왔다. 서명에 반대하거나 반박하면 간첩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렇게 약 4개월 동안 1만 명 넘는 서명을 모았다. 개인이 문재인 하야 촉구 서명을 1만 명 넘게 모은 건 이씨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연금은 없었다. 대신 노숙과 헌금을 강요당했다. 2019년 10월3일 이씨는 집회 참여를 위해 서울 광화문으로 향했다. 전 목사는 당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를 꾸려 청와대 앞까지 진출해 자리를 잡았는데, 이씨도 이때부터 뜻하지 않게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다른 지지자 수백 명과 3개월 넘게 그 자리에서 한겨울을 지냈다. 주최 쪽은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일 정도로 참여자들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했다. 주말엔 광화문광장으로 나가서 집회와 예배에도 참여했다.

 

주최 쪽은 매주 헌금을 걷었다. 조끼를 입은 교인 수백 명에게 돌아다니면서 헌금을 걷게 한 것이다. 내지 않으면 낼 때까지 다른 교인이 계속 왔다. 홀린 듯한 3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고 2020년이 돼서야 이씨는 희망을 거두고 집회에서 빠져나왔다.

 

한때 전광훈 목사를 지지했던 이아무개씨가 2019년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서명을 받을 당시 나눠준 전단과 서명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류석우 기자
 

“윤 지지율, 하나님이 주셨으니 예물 드려야”

 

이로부터 5년이 흐른 2025년, 광화문에선 주말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가 여전히 열린다. 설 연휴 첫날인 1월25일 오후 2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설치된 무대에 전 목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사랑제일교회 조우행 목사가 올랐다. 이미 집회가 시작한 지 약 2시간이 지나 잔뜩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그는 헌금 시간이 됐음을 알렸다. “명절날 대통령께서 이 자리 오셔서 여러분에게 선물 주셨죠. 지지율 50%로. 이거 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께 명절 선물을 드려야 할 것 아니요. 대통령이 빨리 석방되시고 자리로 복귀하셔서 나라를 잘 다스려주세요 하는 소원예물도 되는 것이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대통령 윤석열이 집회 자리에 왔을 수도 없고, 지지율 50%도 일부 극단적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지만, 발언의 사실 여부는 상관없었다. 조 목사가 말을 마치고 찬송가를 부르자 집회 현장 곳곳에 주황색 조끼를 입고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던 이들이 헌금 봉투를 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한겨레21 취재팀이 “사랑제일교회에서 나왔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헌금 시간을 뜻하는 조 목사의 찬송가는 10분간 이어졌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에서 내란 선동 혐의 관련 입장을 말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헌금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집회 참여자들로부터 ‘수금’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먼저 집회 현장과 가까운 광화문역과 시청역엔 출구 곳곳마다 ‘백만송이봉사단’이라고 적힌 빨간색 조끼를 입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 손에 자유통일당 입당원서를 들고 부지런히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한겨레21 취재팀이 입당 문의를 해보니 당원 가입을 하려면 매달 1천원에서 5만원까지 당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광화문역부터 시청역 사이 한쪽 길가엔 천막이 늘어서 있었는데, 대부분 전 목사 일가가 운영하는 사업들이었다. ‘광화문몰’에선 전 목사와 이승만 관련 서적을 주로 판매하고 있었고, 휴대전화 사업인 ‘퍼스트모바일’ 가입을 위한 천막도 크게 펼쳐져 있었다.

 

2025년 1월25일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 동화면세점 앞 모습. 집회 현장 한쪽으로 ‘자유통일을 위한 천만조직’ 천막과 퍼스트모바일 사업 홍보 배너가 보인다. 주황 조끼를 입은 이들은 헌금을 걷는 역할을, 빨간 조끼를 입은 이들은 자유통일당 가입 신청을 받는다. 류석우 기자
 

이들이 현장에서 가입을 권유한 것은 전 목사의 ‘광화문 우파 7대 결의 사항’에 나와 있는 상품들이다. △(커뮤니티 앱인) ‘자유마을’ 가입 △(신문인) ‘자유일보’ 정기구독 △‘퍼스트모바일’ 핸드폰 이동통신사 참여 △선교카드 가입 △‘광화문온(ON)’ 앱 설치 및 가입 △‘너알아티브이’ 등 전 목사의 유튜브 3개 시청 및 구독 등의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전 목사는 지지자와 교인들에게 사실상 자신이 운영하는 이 6개 사업에 가입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전 목사는 “광화문에 한 번이라도 참석한 1850만 명은 주사파 척결과 자유통일을 위해 ‘반드시’ 이 결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투쟁의 언어를 입은 강제 호객이다.

KT 망 대여하는데 KT보다 비싼 요금제

 

사업을 하나씩 뜯어보면, 우선 퍼스트모바일은 2022년부터 ‘더피엔엘’이라는 업체가 운영하는 알뜰폰 서비스다. 전 목사의 딸 전아무개씨가 더피엔엘의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4월 전 목사가 설교 중 “딸의 주도 아래 30억원을 들여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알뜰폰’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퍼스트모바일의 요금제는 퍼스트모바일이 망을 대여한 케이티(KT)보다 더 비싸다. 월 데이터 100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퍼스트 데이터100G+블라이스’ 요금제는 월 6만5천원짜리인데, 같은 양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케이티의 ‘엘티이(LTE) 다이렉트 45’ 요금제와 견줘 2만원 비싸다. 대놓고 기부금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로 ‘퍼스트 기부10’(데이터 3기가바이트·월 3만8천원)이라고 이름 붙은 요금제도 있다.

 

그렇지만 전 목사는 ‘명령’이라며 신도와 지지자들에게 이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전 목사는 2023년 4월 유튜브 ‘너알아티브이’에서 퍼스트모바일을 소개하며 “(신도, 전 목사 지지자들은) 통신사 이동 1천만 개를 해야 한다. 이러면 한 달에 2천억원을 번다. 이 사건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며 “통신사 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나 돈 굉장히 좋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광훈 목사의 딸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알뜰폰 퍼스트모바일의 요금제(위)와 같은 용량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케이티(KT)의 요금제. 퍼스트모바일은 케이티 망을 대여하고 있음에도 더 비싼 요금제를 판매하고 있다.

 

농협 제휴 선교카드 수수료, 사실상 전광훈에게로

 

‘선교카드’는 전 목사가 농협카드와 제휴해 만든 체크·신용카드다. 카드 상품 설명을 보면, ‘백화점/ 대형 할인점/ 농·축협 직영매장 2~3개월 무이자 할부’ 외에는 별다른 혜택이 없다. 그렇지만 전 목사는 “선교카드 1천만 장을 만들면 현찰 21억원을 벌 수 있다”고 회유하며 교인들에게 카드를 발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전 목사가 2016년 ‘뉴스앤조이’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선교카드 수수료의 0.2~0.5%가 선교은행에 넘어온다”고 밝혔다. 2017년 인터뷰에서는 “(선교카드로 인한 수익이) 매달 수천만원 정도 되고, 청교도영성훈련원이 관리한다”고 말했다. 선교은행은 전 목사가 “은퇴 목회자 1만 명에게 매월 10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겠다”며 10여 년 전부터 언급해왔지만, 아직 설립되지 않았다. 청교도영성훈련원은 전 목사가 설립한 단체다. 사실상 전 목사의 주머니로 카드 수익이 들어갔지만, 수익과 지출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이 밖에도 전 목사는 식료품과 건강식품 등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광화문온 앱’을 출시하기도 했고, 너알아티브이 등의 유튜브 3개를 운영하며 광고 수익, 슈퍼챗 이익을 거두고 있다. 정확한 수익 규모와 사용처는 역시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2025년 1월25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현장 한편에 설치된 퍼스트모바일 홍보부스. 노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붙잡고 휴대전화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전 목사가 이런 사업들을 시작하고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초기에 이씨와 같은 지지자들이 건넨 개인정보가 담긴 서명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씨가 2019~2020년 문재인 하야 서명을 받았을 당시 서명지 하단엔 개인정보를 통해 문자를 받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회원에 가입하는 것을 동의한다는 내용이 작게 쓰여 있었다. 현재 활발히 모집 중인 ‘자유마을’ 신청서에도 개인정보가 신규 서비스나 이벤트, 제3자의 상품 등에 이용될 수 있고, 광화문온이나 자유일보 등에서 제공받도록 명시돼 있다. 전 목사는 2019년 문재인 하야 촉구 서명을 대규모로 수집한 이후 꾸준히 개인정보가 담긴 서명을 수집해왔다.

 

매개는 이씨에게 말했던 ‘연금’이다. 최근엔 자유일보와 퍼스트모바일 등 본인이 운영하는 6개 사업에 500명을 가입시키거나 1천만 명이 동시에 가입하면 “종신연금을 주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국내 언론 중 가장 유료 부수가 높은 신문이 100만 부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자유일보 구독 1천만 명부터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다. 광화문온이나 유튜브 구독 등은 가입자가 돈을 내진 않지만, 저인망식으로 영업망을 펼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후 자유일보 구독이나 퍼스트모바일 가입 등으로 이어지면 매달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다단계 영업방식이다.

 

“100만원을 받고 싶은 그 마음을 이용하는 거죠. 그래 갖고 늙은 사람들 다 서명받으러 다니도록 만드는 게 전광훈 수법이에요. 그리고 나중엔 책임을 안 져요.” 이씨가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전 전 목사와 함께 집회 활동을 했지만, 이후 그와 대립하며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사람들 꼬셔서 매달 100만원씩 주겠다는 사기”라며 “많이 가입시키면 수당을 주겠다는 전형적인 다단계”라고 지적했다.

 

이런 공격적인 영업에 질려 전 목사와 결별한 목사도 있다. 서울 은평구 은평제일교회의 심하보 목사는 2022년 2월10일 교회 유튜브 채널에서 “전 목사가 나한테 (광화문온) 앱 광고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교인 한 명이 보더니 ‘그건 장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래서 광고를 거절했더니 바로 (전 목사가) ‘이거 같이 안 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할 수 없고 애국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 류석우   채윤태    김완 기자 >

 

관세 폭탄 막을 ‘트럼프와 담판’…한국엔 파트너가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철강 수입에 대한 성명서에 사인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부터 자국에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전까지 ‘예외와 면제’ 조치를 받아내려는 각국의 외교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트럼프발 무역전쟁의 핵심 당사국인 중국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가운데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한 국제 통상질서 전체가 변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철강 제품 등에 대한 관세 부과가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12·3 내란사태로 인한 ‘외교 마비’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한국의 불안과 답답함이 가중되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12일 “일본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미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관세 부과 결정에 깊은 유감을 나타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1일(현지시각) “확고하고 비례적인 대응 조치”를 언급하면서도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는 등 협상을 통한 해결점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서는 관세 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게 각국의 움직임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한국으로선 트럼프 1기 때처럼 협상을 통해 예외를 인정받는 게 최선이다. 앞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미국 관세 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대미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2·3 내란사태가 초래한 권력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정상 간 담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 외교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 면제나 유예를 받으려면, 한국이 실질적인 카드를 들고 가서 주고받는 거래를 해야 하는데, 한국이 미국에 내놓을 카드에 대한 국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지금 같은 국내 정치 상황에서는 이런 포괄적인 거래는 불가능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트럼프 외교에서 한국의 순번은 당분간 뒤에 있을 수밖에 없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애초 워싱턴을 이달 초에 방문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외교장관 회담을 열려고 했지만 일정을 잡지 못했고, 이번 주말 독일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 기간 동안 루비오 장관과의 첫 대면 회담을 조율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 권한대행과 통화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상회담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엔 그의 레이더에서 당분간 벗어나 있는 것이 한국에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수입 철강 제품 등의 관세 부과 시점이 3월12일로 정해지자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상 외교는 어렵지만 일단 3월12일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실무선에서는 최대한 미국과 협상을 할 것이고 대응책도 마련할 것”이라며 “뮌헨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하게 되면 조태열 외교장관은 북한 핵 문제 외에 나머지 시간은 관세 문제에 대한 협상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핵심 타깃인 중국의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한국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중국이 어떻게 맞대응할지는 국제 무역질서의 향배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란사태의 여파로 김대기 주중대사 지명자의 부임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동창인 정재호 주중대사가 지난달 31일 귀국해버렸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는 추후 한국에 밀어닥칠 격렬하고 거대한 무역전쟁의 서곡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20일 취임 당일 ‘미국 우선 통상 정책’에 서명하면서 무역 전반에 대한 보고서를 4월1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에 따라 한국, 유럽, 일본 등에 더욱 가혹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만수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은 아직 탐색전 단계인데, 미국이 중국의 전기차 과잉 생산이나 국유기업을 겨냥한 본격적인 무역전쟁에 나서면 국제 무역질서 전반이 요동치고, ‘미국이 전세계를 중국 취급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전반적으로 염두에 둔 대비책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 박민희 기자 >

 

12·3 내란에 중국 끌어들이는 윤석열


중국언론도 한국언론 가짜뉴스 주목
'윤석열 위해 한국 언론 미쳤다' 표현
윤석열 가짜뉴스 인용 변론 국제망신
탄핵심판 변론내용 여과없이 전세계로


중국 외교부 선거개입 관련 첫 입장 내
"한국내정 무리하게 중국과 연관 말라"

 

중국중앙TV(CCTV)에서 윤석열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모습을 보도했다. 중국중앙TV(CCTV)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주한미군이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했다'는 <스카이데일리(중국명 : 천공일보 天空日報)> 가짜뉴스를 사실인 양 인용한 가운데, 중국 언론과 온라인 포털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가짜뉴스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중국 매체들은 주한미군이 '전적으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고 전하며 가짜뉴스를 '주한미군도 눈뜨고 지켜볼 수가 없는 지경'이라고 비판했고, 중국 온라인 포털에는 '한국 언론이 윤석열을 위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중국에서 화제가 되면서 한국 이미지가 계속 실추되고 있지만, 가짜뉴스를 확산시킨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는 여전히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급기야 주한중국대사는 "한국의 내정문제를 무리하게 중국과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매체 "윤석열, 근거없는 반중감정 조장"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环球时报)>는 지난달 21일 "중국과 관련된 뉴스는 주한미군도 지켜볼 수 없는 완전한 거짓"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의 해당 보도는 주한미군이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했고 한국 경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성명을 냈다"고 <중앙일보>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달 22일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즈>에서도 "주한미군 '완전히 거짓…선관위에서 중국 간첩을 체포했다는 주장 반박"이라는 제목으로 <스카이데일리> 보도가 '전적으로 거짓'이라고 입장을 낸 주한미군과 선관위, 대통령을 수사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수사본부의 입장을 <한겨레>를 인용해 보도했다.

 

스카이데일리 가짜뉴스 관련하여 중국 환구시보(环球时报)는 지난달 21일 '주한미군도 지켜볼 수 없는 중국과 관련된 뉴스는 완전한 거짓'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환구시보 갈무리. 2025.02.12.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즈에서 지난 22일 '주한미군“완전히 거짓”...선관위에서 중국 간첩을 체포했다는 주장 반박'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즈 갈무리

 

<중화망(中华网)>도 "중국과 관련한 윤석열의 발언은 주한미군도 두고 볼 수 없는 완전한 헛소리"라며, 지난달 21일 헌재 탄핵심판에 참석한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도했다. 이 매체는 "윤 대통령이 최근 헌재 법정 변론에서 반복적으로 반중감정을 조장하며 중국이 한국의 선거에 개입했다는 근거없는 주장과 과장을 하고 있다"고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를 인용해 소식을 전했다.

 

또 중국 매체 <관찰자망(观察者网)>은 "무죄 입증 위해 윤석열, 중국 '선거개입' 비방 계속…주한미군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윤석열이 변론에 인용한 보도는 한국의 <스카이데일리> 뉴스"라며 "윤석열이 가짜뉴스를 처벌을 피하기 방어도구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관찰자망>은 "윤 대통령이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있어 중국은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희생양"이며 "특히 한국 국민이 전과 다르게 '북한 위협'에 점점 더 무감각해짐에 따라 더욱 중국을 이용한 것"이라고 윤성석 전남대 정치학과 교수의 분석을 인용하면서, 윤 대통령 지지자 다수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개입해 윤 대통령을 탄핵에서 구해내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관찰자망은 "윤석열이 변론에 인용한 보도는 한국의 스카이데일리 뉴스"라고 전했다. 관찰자망 갈무리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20일 윤 대통령의 변호사가 계엄령 시행을 옹호하며 최근 "중국과 북한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인용했다면서, 윤 대통령 측의 주장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했다.

 

SCMP는 "윤 대통령 변호사가 대통령 탄핵을 심의 중인 한국 헌법재판소에 62쪽 분량의 문서를 제출했고, 한국의 야당인 민주당을 '선거 사기를 저지를 수 있는 반민주주의적 집단'이라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윤 대통령 변호인이 '민주당은 대한민국을 중국과 북한의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하면서 중국의 재정에 의해 지원받고 있다'고 말한다"며 "'선거 시스템 비밀번호 '12345'가 중국 정부나 중국 해커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도 "한국 내정 문제를 중국과 무리하게 연계말라" 입장 표명

 

중국 매체가 '가짜뉴스'에 대해 집중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주한중국대사관이 처음으로 선거 개입설 관련해 입장을 냈다. 

 

대사관은 <연합뉴스>에 보낸 다이빙 주한중국대사 명의 입장문에서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해 왔다"며 "한국 내정 문제를 중국과 무리하게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들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다이빙 주한중국대사가 24일 외교부 강인선 2차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로 들어서고 있다. 2025.1.24. 연합
다이빙 중한중국대사 2025.02.10. 엑스 갈무리.

 

앞서 중국 외교부는 12·3 비상 계엄 이후인 지난해 12월 4일과 5일, 9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의 계엄 사태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으나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으나 한국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겠다"면서, 최대한 반응을 자제했다.

 

'중국인 간첩'을 언급한 윤 대통령의 12·12 담화 이후에만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국이 내정문제를 중국 관련 요소와 연관시키고 소위 '중국 간첩'을 근거 없이 조작하고 선전해 정상적인 경제무역 협력에 먹칠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한 차례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동안 입장 표명을 자제해 온 중국 외교 당국이 직접 나선 배경에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멸공 페스티벌' 집회와 같이 한국 내 '혐중' 정서가 점점 고조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짜뉴스가 두 나라 국민에게 부정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내 자국민의 안전을 고려해야 할 만큼 중국 당국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7일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멸공_페스티벌' 집회현장. 연합

 

실제 중국 온라인 포털에서는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직무정지된 윤 대통령이 헌재 탄핵심판에서 중국인을 간첩으로 몰이하는 '가짜뉴스'를 근거로 변론하고, 일부 한국 국민들은 가짜뉴스에 속아 거리로 나와 중국을 욕하고 집회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로 인한 폭력성 극우 집회가 중국 내 '반한' 감정만 키우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가짜뉴스에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하고 국제 이미지 실추만 이뤄지고 있다. 수억 명이 사용하는 중국 인기 온라인 포털 넷이즈(网易)에는 '한국 언론이 윤석열을 위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혐의로 <스카이데일리>와 기자를 수사 중이지만, 가짜뉴스는 여전히 양산되고 있다. 매체의 자정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탐사보도그룹 <워치독>은 최근 가짜뉴스를 확산한 <스카이데일리>와 과거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관계자들의 연관을 밝힌 바 있다.(☞관련 기사) 그러나 관련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조직적인 가짜뉴스 제작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수사뿐 아니라 국회 조사 등을 통해 가짜뉴스 근원을 밝히고, 처벌 등을 통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사태를 막을 필요가 있다.  < 뉴탐사 김시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