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셰퍼드 로켓과 캡슐, 15번째 시험비행

고도 106km 우주경계선 찍고 무사 귀환

 

준궤도 우주관광용 캡슐을 싣고 이륙하는 뉴셰퍼드 로켓. 블루오리진 제공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 로켓과 캡슐이 15번째 준궤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준궤도란 우주경계선으로 불리는 고도 100km 안팎을 가리킨다.

14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서부의 블루오리진 발사장에서 이뤄진 이번 시험비행에선 처음으로 사람이 이륙 직전과 착륙 직후에 직접 캡슐에 들어가 발사 전 통신 상태를 확인하고 착륙 후 안전하게 내리는 과정을 시연했다. 실제 비행에선 마네킨으로 사람을 대신했다. 블루오리진은 이날 비행은 유인 비행에 앞선 검증 단계였다고 밝혔다.

 

준궤도 비행후 착륙하는 뉴셰퍼드로켓

 

미국 언론들은 블루오리진이 다음번 발사에서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첫 유인 비행에 도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엔비시’는 블루오리진이 16번째 임무에서 첫 승무원 탑승을 희망한다고 회사 경영진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뉴셰퍼드는 이날 최고 106km 지점의 하늘까지 올라간 뒤 10분만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비행 중 최고 상승 속도는 시속 3596km였다.

높이 18미터의 뉴셰퍼드는 블루오리진이 우주관광용으로 개발한 재사용로켓이다. 이날 비행한 로켓은 두번째 비행이었으며, 특정 로켓을 최대 7번까지 사용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번 시험비행에선 이륙에 앞서 사람이 탑승해 통신 상태 등을 점검했다.

블루오리진은 뉴셰퍼드 로켓과 캡슐을 이용해 우주경계선까지 올라가 몇분간 무중력 체험을 하면서 지구를 구경한 뒤 내려오는 준궤도 우주관광을 추진하고 있다.

준궤도 관광은 스페이스엑스가 추진하는 저궤도 비행에 비해 상승 고도와 우주 체류 시간은 크게 못미치지만 무중력 체험과 지구 조망이 가능하고 비용이 좀 더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의 캡슐엔 최대 6명이 탈 수 있다.

베이조스는 지난 2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앞으로 관심을 기울일 분야로 우주사업을 꼽았다. 실제로 그는 2019년 달 착륙선 모델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블루오리진은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곽노필 기자

연료 탑재 우주선과 위성 도킹 성공…5년 수명 연장

“위성에 제트팩을 달아준 격”…5년후 다른 위성으로

 

 연료를 탑재한 우주선(왼쪽)과 인공위성이 도킹하는 과정을 묘사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던 우주 급유가 현실이 됐다.

고도 3만6천km의 정지궤도를 도는 통신위성들은 대개 10~15년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위성에 탑재된 장비들은 이보다 훨씬 더 오래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장비가 아무리 멀쩡해도 연료가 떨어지면 인공위성은 끝이다. 이런 상태에서 활동을 종료하는 위성이 한 해 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연료를 무리하게 싣게 되면 위성을 목표 궤도에 올려놓기가 어렵다. 우주에서 연료를 다시 공급해줄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우주 급유가 가능해지면 연료를 덜 싣고 가도 돼 인공위성 무게가 줄고, 따라서 발사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위성 수명이 연장되면 새로운 위성을 준비하는 시기를 뒤로 미룰 수 있다.

 

1960년대 아폴로 우주선을 제조했던 미국의 항공우주업체 노스럽그러먼(Northrop Grumman)이 최근 우주 급유에 성공함으로써 우주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노스럽그러먼은 지난 12일 연료를 탑재한 수명연장용 특수위성 `메브-2'(MEV-2=Mission Extension Vehicle-2)가 정지궤도에 있는 인텔샛의 통신위성과 도킹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텔샛 위성은 수명이 5년 더 연장됐다. 2003년 발사된 이 위성은 이미 설계수명 13년을 5년이나 지나 곧 폐기를 앞둔 상황이었다.

우주 급유의 성공은 우주선 발사 비용을 줄이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로켓 재활용 기술로 우주로 가는 비용을 대폭 절감한 것에 버금갈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지난 12일 도킹하기 직전 15미터 거리에서 촬영한 인텔샛의 통신위성. 노스럽그러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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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휴면상태 도킹...이번엔 작동중 궤도 내 도킹

연료탱크를 탑재한 메브-2 우주선은 앞으로 5년간 인텔샛 위성의 예비엔진 역할을 한다. 이 회사 대변인은 "메브-2는 일종의 위성용 ‘제트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스럽그러먼은 5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메브-2가 수명이 다한 다른 위성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임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브-2가 작동할 수 있는 기간이 15년이므로 2개의 위성 수명을 5년씩 더 연장해 줄 수 있다.

노스럽그러먼의 수명연장을 위한 우주 도킹 자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2월 메브-1(MEV-1)이 다른 인텔샛 위성과 도킹에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는 다른 위성과의 충돌 등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위성을 300미터 더 높은 ‘묘지궤도’로 이동시키고 휴면 상태로 전환한 뒤 실시한 도킹이었다. 메브-1은 도킹 두달 후 자체 추진력을 이용해 이 위성을 정지궤도로 복귀시켰다. 실제 궤도 선상에서 작동 중인 위성과 직접 도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킹 후의 모습. 앞쪽이 메브-1 우주선, 뒤쪽이 통신위성.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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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과 한몸이 되는 간접 우주급유 방식

노스럽그러먼의 우주급유 방식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우주선 도킹처럼 두 우주선이 완전히 결합한 뒤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다. 현재의 위성들엔 이런 식의 도킹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메브-2와 인텔샛 위성의 도킹 방식은 완전 결합보다는 걸쇠 방식에 더 가깝다. 메브-2 우주선이 인공위성에 서서히 접근하면서 위성의 뒤쪽에 있는 원뿔 모양의 액체연료 원지점 엔진(liquid apogee engine)에 탐침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탐침이 3개의 지지대(또는 발)를 엔진 고리에 뻗어 두 우주선을 단단히 연결한다. 도킹 이후엔 자체 연료를 탑재한 우주선이 위성과 한몸이 돼 연료탱크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의 간접 우주급유 방식이다.

노스럽그러먼은 현재 정지궤도에 있는 위성의 약 80%에는 이런 원뿔형 엔진이 있어 다른 위성들에도 같은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스페이스엑스의 스타십 우주선끼리 지구 저궤도에서 우주급유를 하는 모습(상상도). 스페이스엑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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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엑스, 저궤도서 스타십 우주선끼리 급유 추진

명실상부한 우주급유 방식도 추진되고 있다.

화성 여행을 목표로 한 차세대 우주선 스타십을 개발 중인 스페이스엑스는 지구 저궤도에 연료보급용 스타십을 보내 화성행 우주선의 중간 급유기지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스타십에는 100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기 때문에, 연료를 가득 실은 스타십은 먼 우주 탐사를 위한 중간 급유 및 기착지로 활용할 수 있다. 나사는 지난해 스페이스엑스와 스타십 우주선 간에 10톤의 액체산소 연료를 주고받는 시범비행을 시도하는 계약을 맺었다.

록히드마틴과 보잉 합작의 우주발사업체 유나이티드런치얼라이언스(ULA)도 73톤의 추진제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우주급유선을 개발 중이다. 이르면 2023년 첫 시험비행, 2020년대 중반 첫 우주급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나사는 장기적으로 로봇팔을 이용한 우주 급유나 수리 시스템도 연구하고 있다. 노스럽그러먼도 2024년께 로봇을 이용한 다음 단계의 우주 서비스 시스템을 시험할 계획이다. 곽노필 기자

거부권 행사 하루 앞 합의, SK, LG에 2조원 상당 배상액

 

                배터리 특허권 침해 분쟁으로 소송중인 엘지화학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 하루를 앞두고 수년째 이어온 엘지(LG)와 에스케이(SK) 두 회사의 배터리 분쟁이 극적 합의에 성공했다. 미 현지에선 ‘바이든의 승리’란 평가가 나온다.

엘지에너지솔루션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두 회사 관계자는 1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주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과 관련해 합의를 이뤘다. 오늘(11일) 중 각각 이사회를 열어 최종 공동 합의문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합의문에는 에스케이 쪽이 무는 보상금의 규모와 내용도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합의키로 한 사건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엘지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엘지 쪽이 에스케이 쪽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사건이다. 미 국제무역위는 지난 2월 엘지 쪽 손을 들어주며 에스케이 쪽에 10년 수입 금지 조처 등의 최종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은 11일 오후 1시(한국시각 기준)이 시한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앞두고 있었다.

두 회사의 타결에 대해 미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합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승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분쟁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가치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에 따라 에스케이 쪽의 조지아주 투자 계획은 유지되고 동시에 엘지 쪽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따른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두 회사의 합의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달된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두 회사 합의 과정에 밝은 한 인사는 “미 무역대표부(USTR) 쪽에서 미 현지 언론에 합의 사실을 구두로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배터리 분쟁이란? : 배터리 후발주자인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과거 엘지화학(엘지에너지솔루션이 분사하기 전 업체)의 기술진을 영입하면서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건이다. 엘지화학은 지난 2019년 4월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들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미 국제무역위는 지난해 2월 조사 과정에서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핵심 자료를 부당하게 파기했다는 이유 등을 앞세워 엘지화학 손을 들어주는 예비판결을 내린 데 이어 지난 2월 최종 확정판결했다.

LG-SK, 배터리 분쟁 극적 타결 막전막후

미 정부 중재 겸한 압력…글로벌 배터리 대전 본격화

 

성장 잠재력이 큰 배터리 기술을 둘러싼 국내 대표 그룹인 에스케이(SK)와 엘지(LG) 간의 전투가 마침내 끝났다. 지난 2019년 4월 엘지가 에스케이를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분쟁 제기한 지 2년 만이다. 미 정부의 적극 중재와 압력 속에 2조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받는 것을 전제로 에스케이와의 합의문에 엘지가 서명했다. 이로써 배터리 사업 전체를 잃을 뻔한 에스케이는 재도약의 발판은 마련했다. 두 회사는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배터리 대전’에 나설 태세다.

 

엘지-에스케이 극적 타결

두 회사의 분쟁 합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11일 오후 1시, 한국시각 기준)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두 회사가 이날 함께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으로부터 2조원(현재가치 기준) 상당의 배상금을 받는다. 2조원 중 1조원은 현금으로 나머지 1조원은 배터리 기술과 관련한 기술사용료(로열티)다. 다만 사용료 지급 기일 등에 대해선 ‘합의된 방법’이라고만 두 회사가 밝혔다. 동시에 두 회사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미 국제무역위에 계류 중인 특허권 침해 관련 소송 등 각종 쟁송 절차를 멈추기로 했다. 한발 나아가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 금지 약속도 했다.

두 회사는 모두 ‘우호적 협력’을 강조했다. 김종현 엘지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사장은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밝혔다. 두 사장은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국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는 두 회사의 공식 발표 전에 미 언론을 통해 처음 전해졌다. 두 회사 합의 과정에 밝은 한 고위 인사는 “바이든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시한을 앞두고 미 무역대표부(USTR) 중심으로 강한 중재가 있었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합의를 처음 보도한 미 <워싱턴포스트>는 “(거부권 시효가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 이번 합의는) 바이든의 승리(Victory for President Biden)”라고 보도했다. 친환경 사업과 일자리 창출에다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두마리 토끼를 바이든이 잡았다는 뜻이다.

 

주전장은 미국…“바이든 마음을 훔쳐라”

두 기업의 사활을 건 배터리 전투의 주전장은 ‘미국’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두 회사가 지출한 대미국 전방위 로비 내역이다. 미국 비영리 시민단체 ‘정치반응센터’(CRP)가 운영하는 ‘오픈시크릿츠’(www.opensecrets.org) 자료를 보면, 두 회사가 지난해 한 해에만 미국 상·하원과 미 백악관과 상무부 등 정부에 쓴 로비자금은 모두 13억원이 넘는다. 미 국제무역위 판결이 임박한 지난해 4분기(10~12월)에 자금 투입이 집중됐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던 에스케이 쪽은 미 국제무역위 위원장을 장수(2005~2014년)한 샤라 애러노프씨를 고용한 로비 회사에 일감을 맡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대표(사장)는 지난 3월 말 미국으로 건너가 현장에서 배터리 분쟁을 진두지휘했다. 엘지와의 최종 합의 시점에도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지난 한 달 남짓 동안 ‘배터리 합의’에 김 대표가 모든 현안을 젖혀두고 올인(All-in)한 셈이다. 특히 이 회사의 김종훈 이사회 의장(사외이사)도 지난 3월 김 대표와 함께 출국해 주목을 받았다. 김 의장은 참여정부 때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지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한국 쪽 협상 대표였다. 미 국제무역위는 물론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김 의장의 출국이 관심을 끈 이유다. 김 의장은 2017년에 에스케이이노베이션에 영입됐다.

최근 2~3개월간 두 회사의 로비전은 ‘바이든 마음 얻기’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1월 임기를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노선이 두 회사의 배터리 분쟁과 미묘하게 맞닿아 있어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사업과 일자리 창출에 정책 우선순위를 높게 두고 있다. 특히 배터리-완성차로 이어지는 전기차 밸류 체인(Value-Chain)을 미국 내에 형성하는 걸 원해왔다. 미 조지아주에 공장 증설을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선 에스케이로선 반색할만한 포인트다. 에스케이가 오바마 정부 당시 법무부 차관을 지냈으며 조지아주 태생의 샐리 예이츠 변호사를 소송단에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는 지식재산권(IP) 훔치기에 강경 기조를 갖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기술 추격과 이 과정에서 벌어진 기술 탈취에 경계심이 높기 때문이다. 미 국제무역위가 판결한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Veto)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처지였단 얘기다. ‘바이든 딜레마’로 불린 까닭이다. 엘지 쪽이 지난달 에스케이의 조지아공장 증설을 받아 안을 수 있는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딜레마를 의식해 내놓은 공세였다.

 

한 층 복잡해진 글로벌 배터리 대전

두 회사가 2년 남짓 전투를 벌인 배경엔 최근 3~4년 만에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화를 보이는 글로벌 배터리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분쟁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냐에 따라 세계 배터리시장의 주도권 쟁탈전 양상도 달라질 수 있었다.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영·미권과 유럽권 매체들도 앞다퉈 두 회사의 분쟁을 다룬 뉴스를 내보낸 까닭이다.

배터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뒤를 이으며 급성장 중인 전기차에 반드시 필요한 부품이다. 기술 양식도 표준화되지 않은 단계라 기술 발전 여지가 크고 그에 따라 변화 양상이 다층적이다. 현재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류 기술이지만 전문가들은 멀지 않은 시기에 전고체 배터리가 등장하며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예견한다. 특히 최근 들어 배터리를 전문업체에 의존해오던 완성차 회사들이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관심을 쏟는 행보도 시장의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 예로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미국의 테슬라뿐만 아니라 독일의 폴크스바겐(VW)은 지난달 15일 ‘파워 데이’를 열어, “배터리를 핵심 사업으로 삼겠다”며 2030년까지 유럽에서 총 240GWh 규모의 배터리 셀 생산 설비를 자체적으로 갖춘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번 합의로 두 회사가 얻은 이해득실은 뚜렷하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사업 정리’ 위기에서 벗어나 재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연내 완공키로 한 미 조지아주 공장 건설도 진행된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기술 우위’를 확인시키며 2조원 상당의 배상금을 챙겼다. 덕택에 투자 재원을 넉넉히 확보한 측면이 있다. 이 회사는 2016~2020년 기간 동안 중국과 폴란드 공장 증설에 쏟아부은 돈만 7조원에 이른다. 2022년까지 두 지역에 잡혀 있는 잔여 투자액만 1조6천억원이다. 현대차의 코나 화재 관련 물어야할 배상금 재원도 이번에 확보한 측면이 있다.

엘지 쪽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본격 개화기에 들어간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며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케이 쪽도 “미국 사업 운영과 확대에 불확실성이 제거됐다. 미국은 물론 글로벌 전기차 산업 발전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추가 투자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해 상인들의 경쟁업체 입점 막아

  2019년 매출액의 4%에 해당… 알리바바 "결연히 복종"

 

 

중국 정부가 ‘미운털’이 박힌 알리바바에 자국 반독점법 사상 최고액인 3조원 넘는 과징금을 물리는 등 다시 고강도 압박을 가했다.  창업자 마윈이 당국의 호된 조사를 받았던 알리바바는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따르겠다고 밝혔다.

10일 관영매체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시장감독관리총국은 알리바바의 2019년 중국 내 매출액의 4%에 해당하는 182억2천800만 위안(약 3조1천124억원)을 과징금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당국이 2015년 퀄컴에 부과한 기존 최고 과징금 9억7천500만 달러(약 1조1천억원)의 약 3배에 이르는 액수다.

당국은 알리바바 위법행위의 성격·정도·지속기간 등을 고려해 이러한 금액을 정했다고 밝혔다. 중국 관련법에 따르면 전년도 매출액의 1% 이상을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돼있다.

당국은 알리바바가 2015년부터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타오바오(淘寶) 등 자사 쇼핑플랫폼에 입점한 상인을 대상으로 다른 경쟁 플랫폼에 입점하지 못하도록 '양자택일'을 강요해온 문제에 대해 조사해왔다.

당국은 알리바바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시장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부당한 경쟁 상의 우위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당국은 조사 결과 알리바바가 온라인 소매플랫폼 서비스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고, 상품서비스 및 자원 요소의 자유로운 유통을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과징금 부과 배경을 설명했다.

플랫폼 경제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플랫폼 내 입점 상인의 합법적 권익과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당국은 이밖에 알리바바 측에 위법행위 중단을 명하는 한편 플랫폼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행정지도했다.

알리바바 측은 "성실히 수용하고 결연히 수용한다"면서 "법에 따른 경영을 강화하고 혁신발전에 입각해 사회적 책임을 더욱 잘 이행할 것"이라고 정부조치에 복종의 뜻을 밝혔다.

중국이 최근 들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기업 규제를 강화하면서 알리바바를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알리바바 산하 앤트그룹은 지난해 11월 초 상하이(上海)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할 계획이었지만, 창업자 마윈(馬雲)이 공개석상에서 중국 금융당국을 비판한 뒤 상장이 연기됐다.

이후 당국의 사업 범위 제한과 금융지주사 재편, 대규모 증자 요구로 전자결제 서비스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앤트그룹은 공중분해 되어 실질적인 주인이 바뀔 처지에 놓여 있다.

인민일보는 이번 과징금 결정에 대해 "반독점을 강화하고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막기 위한 당국의 구체적 조치"라면서 "건전한 플랫폼 경제 관리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