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Good Morning?

● 교회소식 2016. 12. 19. 21:12 Posted by SisaHan

조국의 소식에 미국 대선까지 겹쳐 정신없이 ‘속보’ 홍수 속에 살다가 좀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작금에는 속보가 시간 시간 터져 나오는 바람에 ‘굿모닝’ 이란 인사가 이곳 아메리카에서도 서먹해지는 요즈음이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도 해보고, 이질감으로 인한 상처도 받으면서 다시 치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상쾌한 아침 일 수 있지만, 어떤 이는 힘든 아침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같은 ‘Good Morning’ 이지만 억양(intonation, accent)에 따라서 그 감정이 묻어 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억압된 생활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좀 더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 가자는 말씀이다.


지난 9월 아내의 급작스런 통증으로 인한 일주일 간의 병원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느낌이 있었다.
첫째는 감사하며 살자는 생각이 더욱 깊이 자리 잡았다. 병원 응급실만 해도 정말 수많은 종류의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각종 위험한 상태의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물며 입원실에 가서 보면 말을 해서 무얼 하겠는가. 고통을 참지 못해 고함을 지르는 사람, 바쁜 간호사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사람, 보기에도 끔직한 상처가 있는 사람 등등…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말 할 수 있음만으로 감사하며, 심지어 감각이 있어 고통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함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아내의 고통이 가라앉지 않고, 수술일정도 잡히지 않아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의 뱃속에서는 배고픔을 알려왔다. 참지 못하고 병원 음식코너를 찾아 나섰다. 들어서는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서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란함과 활기차게 보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것은 방금 전 내가 있었던 병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내가 여지껏 살아왔던 그 모습이 아니던가. “지금 이 병원 건물 안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도 있으며, 고통을 참지 못해 소리 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갑자기 엄숙한 마음이 되었다. 하찮은 나의 행동이 이웃에게는 반갑지 않는 행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더욱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수술을 잘 받았고 회복도 빨라 일찍 퇴원 하였고, 다시 점검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을 아픔을 생각하며 좀더 조심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가끔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시는 분들이 중간 중간 멘트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자제하라고 항상 당부하고 싶다. 예배 드리러 오신 성도들을 믿음이 약한 자로 치부(?)하는 말투, 혹은 자신의 믿음만이 진실한 믿음 같은 말투, 어색한 성경구절 인용 등은 차라리 하지 않음이 옳기 때문이다. 우환이 있어 깊이 기도하는 성도를 배려해야 하며,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성도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곡도 중요하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인간답게 사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종교가 있고 철학이 있으며, 영원히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될 것 이기 때문이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기다림

● 교회소식 2016. 12. 19. 21:10 Posted by SisaHan

2016년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2016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빠른 것은 시간만이 아닙니다. 세상 또한 참으로 빨리 변합니다. 예전에는 강산이 10년에 한 번 바뀐다고 말했지만, 요즈음은 10년에 몇 번씩은 바뀌는 것이 예사입니다.
사실 변화의 속도가 느린 캐나다에서는 느끼기 힘들지만, 몇 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보면 세상이 이렇게도 빨리 변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지요.
변하는 것, 좋습니다. 그만큼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변화를 통해 인간의 삶이 점점 편리해져 가기 때문에 이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대표적으로 너무 빨리 변하니까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단번에 그리고 쉽게 성공하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신앙생활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차분히 기다리기보다는, 즉석 응답을 기대합니다. 몇 번 기도하다 안 되면, 대충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바람에 기도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신앙에 있어 기다림과 인내는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목인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도 응답의 기쁨을 맛보기를 원한다면, 씨앗을 심어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는 농부처럼 오래 참고 기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식물이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때는 낮이 아니라 밤입니다. 어둠 속에서 성장합니다.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만들어내는 때는 햇빛이 비치는 낮이지만, 줄기가 자라고 잎이 넓어지며 봉오리가 벌어지는 세포증식을 하는 때는 밤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밝은 낮만 있지 않고 고난의 밤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둠을 지나가야 하는 기다림이 필요한 이유는 성숙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어두움 속에서 진행됩니다. 사람들은 조급하여 서두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시지 않으십니다. 정하신 때가 되면 지체하지 않으시고 분명히 이루십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그친 그 땅에 비가 오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에 하나님께서 즉시로 응답하셨나요? 엘리야가 기도하자 마자 먹구름이 몰려와서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나요? 아닙니다.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비의 소식이 있는지 바다 쪽을 바라보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사환이 바다 쪽을 바라보았더니 구름 한 점 안보이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사환에게 명령하는 것이, “일곱 번까지 다시 가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믿음으로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줍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될 그날이 분명히 올 것을 기다릴 수 있게 해줍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떠나 보내면서 기다림이란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 송만빈 목사 - 노스욕 한인교회 담임목사 >


하나님 마음 시원하실 찬양으로 우리 마음 시원케 해주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캐나다 장로교 한카 동부노회(노회장 윤영도 키치너 워터루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소속 교회들은 12월4일 주일 오후 본한인교회(담임 한석현 목사)에서 산하교회 연합 2016 성탄찬양 예배를 드리며 성탄의 기쁨을 나누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이날 찬양예배는 먼저 1부 예배에 이어 2부 찬양제로 노회소속 교회 중 참가한 9개 교회 성가대가 순번으로 찬양을 했다. 1부 예배는 김성근 목사(미시사가 우리교회 담임) 사회로 이효신 장로(서부장로교회)가 기도하고 노회장인 윤영도 목사가 잠언 25장 13절을 본문으로 ‘마음을 시원하게’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윤 목사는 “찬양제에 오신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겠는가?”라고 묻고 “여러분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대와 천국을 향한 소망을 찬양과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축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윤 목사는 이어 “우리들의 마음과 찬양이 아름다운 찬양, 천사도 흠모하는 찬양, 온 세상에 울리는 찬양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찬양이 되기를 축복한다.”면서 “그래서 이 찬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며 우리 마음을 시원케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넘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고 전했다. 예배에는 본 시니어합창단과 서부장로교회 드보라 미션콰이어가 각각 찬양과 헌금송을 했다. 예배는 합심기도로 미쳤다. 한카동노회는 이날 예배 헌금을 낙스신학대학원 신학생들을 위해 전액 사용하도록 했다.


이어진 찬양제는 디모데장로교회(담임 김인기 목사) 성가대를 시작으로 갈릴리장로교회(담임 임수택 목사), 런던 한인장로교회(담임 장성환 목사), 기쁜소래교회(담임 문은성 목사), 토론토 한인장로교회(담임 손명수 목사), 키치너 워터루 한인장로교회, 서부장로교회(담임 박헌승 목사), 나이아가라 한인장로교회(담임 서욱수 목사), 본한인교회 등 순으로 각각 준비한 성탄 찬양곡을 불렀다. 각 교회 성가대에 이어 마무리는 전체 참석자와 성가대들이 모두 기립해 ‘할렐루야’를 연합 합창하는 감동을 나누고 유복영 목사의 축도로 찬양제를 마쳤다.


< 문의: 416-626-6282 >


은혜를 받은 크리스천들은 우리 영광의 첫 열매요, 영광의 시작인 <은혜>를 인하여,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신앙은 약속을 존중하고 소망은 그 약속된 것을 존중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소망은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신앙>은 “소망의 어머니다” “우리가 참으로 기다릴 지니라”. 이 영광을 소망하는 우리는 이것이 오는 길목에서 당하는 여러 고통과 그 지연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길이 험하고 거칠어도 오실 자는 오시고 말 것이요, 지체하지 않으리니, 따라서 그것이 지체하는 것 같이 보여도 그분(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로서는 마땅하다.

오! 주 하나님! 설교자(사역자, 목회자)와 청중은 상호 연관 관계에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찾을 때 큰 축복이 따름을 알게 하소서. 곧 듣는 자는 외치는 자의 수완과 성실성에서, 외치는 자는 듣는 자의 의욕과 순종에서 서로 기쁨을 찾게 도와 주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해야만 한다. 주 하나님의 종으로 위임을 받고, 그 일에 자격(소명-召命) 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말씀을 전파 할 수 있을 까요. <사역자>들을 보내는 이는 “주 하나님”이시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교회의 필효한 질서 유지를 위해 직책과 지혜와 능력을 인정 받은 유능한 자들의 공통된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 즉 정직한 신자들과 영성이 넘치는 신자들의 모임인 “공동회의”에서 사역에 자격과 적성을 갖춘 자들을 가려내어 대(代)를 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이 만대에 영원토록 존속되고, 그의 보좌가 천상에서 처럼 빛나게 한다는 사명감을 갖춘 자들이어야 한다. 이렇게 엄격히 따로 세워진 자들(사역자)은 보냄을 받은 자들 이기에 전파할 수도 있겠지만, 전파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복음> , 평화의 복음은 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의 말씀이다. <사역>은 사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니 “좋은 소리를 가져오는 것”이요, “평화를 전도하는 것”이며, 좋은 소식을 전도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전할 메시지를 심령에 담기 전에 푹 빠진 <기도>와, 설교 후에도 신도들에게 그 메시지가 믿음의 말씀으로, 열매 맺도록, 믿음을 일으키는 말씀이 되도록, 간절히 더욱더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 축복받은 인간이요! 그리스도의 대사요! 하늘의 총아요! 수천만의 영적 아버지이신! <사도 바울>은 주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겸손하셨는지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만일 오늘날도 사역자들 가운데는 그들의 종말에 가서 쓰라림이 될 것을 모르고, 음행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 이곳 저곳에서 활보하고 설교 강단에 서고 있다면, 가증하고, 통탄하고, 통탄할 노릇이다. <사악한 사람>은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다. <사악한 크리스천>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다. <사악한 교역자 (사역자)는 크리스천들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교회와 신자의 교제로부터 내어 쫓김을 당하여야 된다.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 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5:13).

불 나비는 불꽃을 보고 들떠서 날아 들다가 어리석게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 그것은 깊은 함정이므로 그 가장자리에 감히 서려고 하는 것조차도 미친 짓이다. 그러한 악명(악행)이 높은 자들과 교제하고 동행하며 접촉하는 자들은 자기의 결백과 신앙을 오래 보존할수 없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법도와 보호로 부터 스스로 튀어 나오게하는 자들이다. <내주(內住)하는 죄의 잔재야 말로 은혜로운 영혼의 고통스런 짐이 아닐수 없다> 가난한 자 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는 자들의<기도>는 하나님께서도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 불쌍한 자들의 울부짖음을 우리가 듣지 않는다면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어 우리에게 큰 해(害)가 될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선인에게 대하여 매우 지극한 사랑을 품고 계시는 까닭에 그들 안에서 작용하는 것은 그 자신의 성령의 역사이시다. 주님은 반드시 그들의 <기도>에 응답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걸음걸이가 아름다운 때는 선한 일에 앞장서고 의로운 길로 남들을 인도하는 때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재갈을 물려서 억합해야 하며, 정당하게 책망을 받을 때는 언제나 수치를 감수하고서 자신의 결백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남보다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쳐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며, 거만하고 무례한 자는 치욕을 자취(自取)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노출할 따름이다. 즉 우리는 잘못 행한 일에 대해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미련한 짓을 행한 경우에는 사람앞에서 그것을 고집하지 말고, 침묵으로 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죄를 자인하고 자백하여야 될줄 믿는다. 우리는 언제나 <복음>을 우리와 맞닿아 잇게 하여 우리 마음과 목에 맨 것처럼 그 감동을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하자! 그리하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 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이 나의 경고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마 우리에게 이김(승리)를 주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 하노라>.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