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맞장구

● 교회소식 2016. 4. 8. 19:29 Posted by SisaHan

우리 모두는 자신이 나쁜 사람, 혹은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 이라거나 선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하기에는 약간 부족함을 느낍니다. 사실 자신이 좀 이기적 이었음을 내심 숨길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설령 나의 모든 삶을 이웃을 위하여 살아간다해도, 거기에는 자기만족 이라는 것이 약간은 포함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 합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은 참으로 의미 심장한 말씀입니다. 매일의 일상을 그저 그렇게 돌아가는대로 지내다가, 주일에 예배드림으로 그자리에서 회개의 눈물도 흘리고, 감사의 마음이 되살아 나기도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일을 뒤돌아 보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즐겁게 만남을 갖고 집에 돌아와서 말실수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던 말이 생각나서 입니다. 그렇다고 친구 사이에 금이 가거나 상처를 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보고 생각을 다시하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장구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은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잘 치면,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고, 선한 사람으로 인정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비평을 하거나, 상대의 말을 자르는 습관은 소통에 찬물을 끼엊는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느 모임이나 토론에도 이런 비평가가 한 사람 반드시 끼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응원 한마디에 힘이 솟고, 자신의 진로를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자신의 삶이 완전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존경 받는 성공을 하신 분’들의 공통점은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잘 경청하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부모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 합니다. 자녀들이 잘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 이든지 자녀들의 성격과 재능을 존중하고 의견에 맞장구를 잘 쳐주는 것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야 할 일입니다.


글을 쓰시는 어느 작가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쓴 글에 완전 만족을 느낀다면 다음 글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부족함을 느끼기에 글을 계속 써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잠시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부족함이 얼마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 ‘맞장구’가 나오게 됩니다.
성경에도 선생이 되지 말라 기록하셨습니다.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에게는 친구가 많습니다.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맞장구’ 잘 배워서 함께 춤 한번 춰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버스 테러 무장단체 맞서 “우리도 죽여라”

승객 구하고 사망

“그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그리고 함께 살아야만 한다’고 말한 후 죽음을 맞이했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기독교인들을 구한 살라 파라(34:사진)를 기리는 연설문을 낭독하자 수백명의 의원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케냐타 대통령은 “그는 우리 모두가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리고 그는 모든 생명이 고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2일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공격에 맞서 기독교인들을 지켰던 ‘영웅 살라’가 사후에 케냐에서 가장 큰 영광을 누리게 됐다고 전했다. 살라는 이날 ‘케냐의 위대한 영웅’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라는 지난해 12월 소말리아 접경지대인 케냐 북동부 만데라주 엘와크에서 60여명의 승객과 함께 만데라에서 나이로비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그가 탄 버스는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총격을 받았다. 버스를 세운 10명의 알샤바브 대원들은 “무슬림이라면 안전할 것”이라며 기독교인들을 따로 분리했다. 총격을 받고 부상한 살라는 함께 탄 승객들을 독려하며 “기독교인들을 죽이려거든 우리(무슬림)도 죽여야 한다”고 저항했다. 살라를 비롯한 승객과 알샤바브의 충돌 과정에서 승객 2명은 사살됐지만 나머지 승객들은 목숨을 건졌다. 살라는 이때 입은 부상이 악화돼 지난 1월 끝내 숨졌다. 생전에 살라는 병원에서 이뤄진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단지 종교만 다를 뿐이다”며 “나는 무슬림 형제들이 기독교인들을 돌봐주길 바라고 기독교인들 또한 우리를 돌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다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케냐타 대통령은 이날 “그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상징”이라며 “그는 우리가 자유를 수호해야 하는 역할을 잊지 않도록 값진 일을 해줬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그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아버지는 영원히 존경받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케냐 북부 만데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살라는 다섯 자녀의 아버지였다. 훈장이 수여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영웅 살라의 가족들을 돕는 운동이 벌어져 현재 약 60만 케냐실링(약 70만원)이 모아져 전해졌다.



방한 허천회 목사 “자매결연 관계 갱신”

토론토 대학 낙스 신학대학원(Knox College)과 서울신학대학교(Seoul Theological University)가 2년이 지난 자매결연 관계를 갱신했다고 허천회 목사(말씀의 교회 담임, 낙스신학대학원 겸임교수)가 밝혔다.


지난 달 한국을 방문한 허 목사는 낙스 신학대학원 도르카스 고든(Dr. Dorcas Gordon) 학장의 친서와 관련문서를 휴대하고 지난 3월17일 서울 신대 유석성 총장을 예방, 자매관계 갱신절차를 마무리하고 앞으로 양교 사이에 교수와 학생 간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낙스신대원과 서울신대는 지난 2004년 5월6일 자매결연을 맺은 이래 친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한편 낙스 신학대학원 내에는 성결교단에서 오는 학생들이 목회자 과정(M.Div)을 공부할 수 있는 상준 신학대학원(Sangjoon Hall of Theology)이 지난 2006년에 설립돼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이와관련 오는 10월 한국에서 관계자들이 토론토를 방문해 1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허 목사가 아울러 밝혔다.


< 문의: 416-756-9743 >



[기쁨과 소망] 부활의 믿음

● 교회소식 2016. 4. 8. 19:19 Posted by SisaHan

최근에 개봉한 영화중에 “Gods of Egypt”라는 영화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집트의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재미있는 오락영화입니다. 그저 눈요기거리이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을 보면서 그들이 가진 부활에 대한 신앙을 봅니다.
이집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피라미드입니다. 피라미드는 잘 알려진 것 처럼 이집트를 통치하던 파라오의 무덤입니다. 고대 이집트는 파라오들에 의해 다스려졌고 그들은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고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태양신의 아들이어서 죽어도 육체를 매장하지 않고 미이라로 만들어 보관하면서 그들의 영혼(Ka)이 육체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육체안에 남아 있던 인격(Ba)와 다시 결합하면 부활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일반 서민들과 달리 죽어도 그 영혼이 남아 있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많은 피라미드를 만들고 그 안에 왕들의 미이라를 보관했습니다. 굉장한 정성과 에너지를 동원해서 만든 무덤은 그들에게 특권이자 상징이었습니다. 이 무덤에는 왕들 뿐 아니라 왕이 권위를 인정한 귀족들도 함께 묻히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도 그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일반 서민들에게도 그 문이 열려 있다고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수의 귀족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그 당시 이집트의 총리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총애받는 총리여서 당대 가장 강력한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얻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죽어 미이라로 피라미드에 묻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창세기 50장에 보면 그곳에 묻히지 않고 그의 시신을 나중에라도 가나안 땅으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 묻어 주기를 유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문화속에서 그 권리를 누리고 복을 기대하기보다 자기를 인도하시고 지키신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있는 것을 사모했고 그 언약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더욱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부활의 믿음일 것입니다.

< 김요환 목사 - 런던 제일장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