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글마당] 복음과 사역과 기도 (22)

● 교회소식 2017. 7. 5. 13:5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주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부와 출세의 유혹을 깨쳐 버리고, 치욕과 곤경 속에서 신앙을 보호하는 자들은 두 배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교회 안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교회 밖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보다 나으며, 가난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부유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믿고, 알고 살아가자! 뜻을 작정하기 전에 조언을 받아 들이며, 무엇이 일어날지 예견할 수 없는 것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별하도록 주의해야 하고,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우리는 먼저 죽은 우리의 가까운 친척들과 신앙의 선배들의 죽음을 상기해서 죽음과 무덤을 우리에게 보다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민27:13). 은혜는 자연의 질서를 지키지 않으며, 주 하나님은 우리가 꼭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 맘에 드는 사람을 선택(뽑는다)하신다. <분노>는 큰 죄의 원인이고 원천이며, 우리를 하나님의 저주 그리고 심판에로 보낸다(마5:22).

우리는 우리의 열의를 표현함에 있어서 사람 대신 죄를 사랑하거나 축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항상 <죄인>과 <죄>를 구분해야 한다. 사역자(교역자)들의 할 일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죄를 알려 주는 것이요,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죄>가 너희를 큰 위험 속에 빠뜨리기 때문 이라고” 주 하나님께 지식을 받은 자들은 기꺼이 그것을 남의 유익을 위해 전해야 되며, 전적으로 자기만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대중(공동체)을 속이는 자들이 가장 큰 사기군 들이다. 만일, 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것이 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악하다면, 같은 법칙에 따라서 공동체(교회)를 속이고 교회나 국가를 착취하는 것은 한 개인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일 것이다. 이제 우리 성도들(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름 속에서와 같지 않고>, “거울에서 보는 것과 같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게 된다”. 만일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버려두고, 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와의 즐거움을 택한다는 것은 친구에 대한 지나친 아첨이 된다. 우리는 한껏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근심과 걱정의 짐을 떠 맡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위 높음이, 일(사건)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충실히 봉사하라는 것이라고 생각 된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춰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이다. 천사라 할지라도, <봉사>하는 겻을 명예로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은 큰 상급을 받으리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정직하고 성실한 자>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첫째로 언행을 신임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 이어야 된다. 그런 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신의를 배신치 아니하며 교활한 행동을 하지않는 자이다. 우리는 또한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어 사리를 분별할 수있는 통찰력과 위협이나 불평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마음을 소유한다면, <재덕>이 겸전(겸비)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충고>는 항상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겸손히 순복하는 마음으로 주어져야 하며, 언제나 주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이 서야(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현명한 사람은 남의 말을 들으며 배우기를 쉬지 않는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자의 충고라도 충고를 경시하지 않는 것이다. 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혼에 빛을 비출 때에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죄는 죄인 자신의 부패나 타락이고, 곧 <자아>부패이다. 결국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정욕에 끌려 유혹을 받는다.

우리를 다스리는 세상 위정자들이나 교회의 사역자들의 눈에는 감추어진 죄악이라도 주 하나님 앞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 난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악>한 비밀은 <비밀>로 남지 않는다. 의로우신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됨됨이도 아시며, 우리 생활 속의 행동 뿐만 아니라 우리 <영>의 기질 까지도 아신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약한 것 들을 멸시하지 말아야 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경탄함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작고’ 세상에서 가난하여 보잘것 없어도 극히 ‘지혜로우며’ 주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로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자신의 불완전성과 연약함을 의식한다면 보호와 후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보다 지극히 높은 바위>되신 주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높은 바위에 거처를 마련하도록 하자!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기도는 하나님이다

● 교회소식 2017. 7. 5. 13: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기도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순수행위입니다. 절대행위입니다. 기도에서 하나님이 빠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인격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것 자체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점에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의 기도’(Prayer of Heart)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마음의 기도는 사막의 교부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의 기도는 사막의 교부들이 사막 한 복판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간절히 추구하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시내 광야에서 독거 수도사로 평생을 살았던 사막의 교부 중 한 분인 요한 클리마쿠스(Joannes Climacus)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 장식적인 말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가장 물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이시는 기도는 작은 어린이의 간단하고 반복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지성이 많은 말을 찾음으로써 신앙심을 혼란시키지 않도록 하시오. 세리의 한 마디 기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에 족했소. 믿음을 가지고 드린 겸손한 간청이 우리를 구하기에 충분하오.” 클리마쿠스의 말처럼 마음의 기도는 하나님만을 구하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짧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기도입니다. 그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짧은 기도문을 반복해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 나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이런 문구 중에서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대로, 하나의 문장을 선택해서 마음으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문을 외우듯이 기계적으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이 실려 있지 않은 형식적인 기도를 경계하시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한번 복잡한 마음을 버리고 단순한 마음으로 마음의 기도를 드려 보시면 어떨까요?
한번 이 시간 저와 함께 마음의 기도를 드려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조용히 눈을 감으십시오.
-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십시오. 깊은 심호흡을 몇 번 하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십시오.
- 그리고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기도 문구를 선택하십시오.
 지금 제 마음에는 ‘주님 사랑합니다.’가 떠오릅니다.
- 이제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 주님, 사랑합니다.’를 반복하십시오.
- 중간 중간 잡념이 찾아오면, 부드럽게 물리치고, ‘주님 사랑합니다’에 집중하면서
 계속해서 반복하십시오.

처음에는 3-5분정도 기도해 보시고, 점점 시간을 늘려 보십시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운전할 때에, 길을 걸을 때에, 일을 할 때에도 마음을 놓치지 마시고, 짧은 기도를 통해서 마음을 주님께 드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단순하고 짧은 기도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한인교회 담임목사 >


“땅을 진동케 하는 교회로”

● 교회소식 2017. 6. 28. 13:3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다운스뷰 장로교회 새 성전 현관에서 테이프 절단식을 갖고 있는 전상규 목사와 교회 장로들 및 KAPC 캐나다노회장 지근우 목사와 부노회장 박원철 목사, 서기 지근혁 목사 등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다운스뷰 장로교회, 새 성전 입당예배 드려

다운스뷰 장로교회(담임 전상규 목사: 4110 Chesswood Dr. North York, M3J 2B9)가 6월11일 주일 오후 5시30분 입당 예배를 드리고 새 성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당 개축에 수고한 성도들이 함께 수고를 위로하고 기쁨을 나눴다.
전상규 목사 인도로 드린 예배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210장) 찬송과 윤종대 장로의 기도로 시작, 연합성가대가 ‘거룩한 성’을 찬양하고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캐나다노회장인 지근우 목사(런던 안디옥교회 담임목사)가 설교했다.
지 목사는 ‘땅을 진동케 하는 교회’(학 2:6~9)라는 제목으로 “사람을 살리는 복음으로 충만하며, 하나님 찬양의 소리로, 기도의 소리로 땅을 진동시키는 교회가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기를 기대한다”고 전하고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위해 통성기도한 후 복음성가 ‘임재’를 찬양했다.


축사 순서에서 KAPC 총회장인 유재열 목사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며 총회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모범되고 귀감인 교회가 되기 바란다”고 축하했다. 노회서기 지근혁 목사(온세상장로교회 담임)는 “좋은 지역에서 좋은 이웃과 함께 동역하는 기도의 눈물이 있는 교회로,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며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고 축하의 권면을 전했다. 이어 토론토 장로성가단은 ‘주님의 택함이었소’등 축가를 불렀다.
전상규 목사는 감사인사를 통해 그간의 건축과정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걸음씩 내디딜 때 동굴 속으로 상처와 아픔을 안고 걸어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선물을 주셨고 상처를 별이 되게 하셨다”면서 “성전 건축을 통해 우리 성도들은 기도만이 능력임을 알게 되었고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어 “새 예배당은 목적이 아니라 새 시대를 향한 발판”이라며 “이 곳에서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되어 토론토를 섬기고 다음 세대를 양육하며 온 땅에 하나님 나라 꿈을 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 목사는 그동안 예배당 리노베이션에 참여한 시공업체 관계자들을 호명하며 꽃다발을 전해 감사를 표했다. 또 교회 건축위원으로 고생한 원성호(위원장) 김홍규·정기섭 ·김광호 장로와 고효상·이호성·조갑영 집사의 노고를 위로하고 성도들과 함께 축복기도했다.
예배는 부노회장인 박원철 목사(늘사랑교회 담임)의 축도로 마치고 현관 테이프 커팅식을 가진 뒤 온 성도가 만찬을 함께 하며 입당을 자축했다.
다운스뷰 장로교회는 지난 2014년 12월3일 건물을 매입,건축허가 절차 등을 마친 뒤 지난해 5월29일 기공예배를 드리고 리노베이션 공사에 들어가 지난 2월 공사를 모두 마치고 이전, 3월1일 첫 새벽 예배에 이어 3월5일부터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교회 이름도 종전 ‘열린한마음’에서 ‘다운스뷰’로 바꿨다. 새 성전 면적은 2만sqft로, 396명 수용 규모인 본당 외에 체육관 겸 친교실과 교육관, 도서실 등 부속 공간을 갖췄다.

< 문의: 416-510-8215 >


[기쁨과 소망] 쉽게 포기하지 말기

● 교회소식 2017. 6. 28. 13:2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겨울내내 거실에서 공기정화를 위해 한쪽 구석에 놓아 두었던 작은 나무 잎사귀가 마르기 시작했다. 물도 줘보고, 햇빛도 조금 잘 드는 곳에 놓아 주면서 건강한 회복을 기원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기에서 점점 물기가 마르더니 아예 거추장 스러워 보이는 자신의 모든 잎들을 다 떨어뜨려 버린 채 나는 이제 죽었다고 스스로 체념한 듯 생명의 기운은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작은 나무를 주신 분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냥 버릴 수 없어서 교회 현관에 두면 혹시 따스한 볕에 적당한 산소를 통해 되살아 날수도 있겠다 싶어 교회 현관 다른 실내 정원수들 틈에 두었지만 역시 그냥 다 말라 버린 듯 물기 조차 없어 보였다. 아무리 봐도 나무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리려고 하는데 아내가 혹시 모르니까 밖에 세워둬 보자고 했다. 현관에 두면 미관상 좋지 않아서 밖에 한쪽 구석에 사람들의 눈길이나 관심도 닿지 않는 곳에 혼자 있도록 두었다. 그 후 몇 주가 지난 며칠 전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신기한 것이 보였다. 말라버린 가지에 가녀린 잎 하나가 보였다. 혹시 어디서 날아와 붙어버린 잎인 줄 알고 다시 가까이 들여다 보니 오호라! 마른 가지에서 너무나도 가냘픈 숨결이 돋아나 그 끝에서 생명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때론 우린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 내가 필요하다 싶어서 소유하고 있다가 이젠 그 가치가 상실되었거나 불필요하게 되면 버리거나 없앤다. 심지어 유기견 같은 경우처럼 생명을 버리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 이후에, 거추장스럽다 싶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해 나가고 있는 유물론적 사고이다. 물질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사람까지 사물화 시켜버림으로써 돈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고 심지어는 사람의 신체까지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과 같이 그 종류대로 창조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받은 신령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소유나 가치에 따른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온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들로 아끼시고 소중히 여겨주신다.


이 세상은 ‘포기’에 너무나 쉽게 나를 던져 버린다.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그만큼 포기라는 악한 영이 우리 인간들을 삼켜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랑하는 교민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임을 명심하시고, 그 어떤 일이든, 무엇보다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탕자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끝까지 기다렸다. 만약 오지 않았다면 올 때까지 그 아들을 문밖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기다림은 기도다! 기도하는 자는 기다림의 인내를 실천하는 자다. 우리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끝까지 한 영혼에 대한 구원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길 멈추지 말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 강정길 사관 - 구세군 토론토한인교회 담임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