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동성애·이슬람 막고, 민족복음화도 이룰 수 있을 것”
반대 “호응적고 갈등 유발‥한 두명이 어떻게 기독교 대변?”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한국교회 기독교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대형 교회 목사들과 관계자들이 이번 20대 총선에 등장한 ‘기독자유당’ 홍보에 목회자들이 나서서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야 동성애와 이슬람을 막을 수 있고, 민족 복음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4월5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조찬 모임에 이영훈·윤석전·장경동 목사 등 대형 교회 목회자를 비롯해 이윤석 의원(기독자유당), 김승규 장로(법무법인 로고스 고문 변호사), 전광훈 목사(기독자유당 후원회장) 등 기독자유당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의 화두는 동성애와 이슬람 저지였다. 발언에 나선 김승규 장로는 “동성애는 당사자는 물론 국가와 사회에 큰 피해를 준다.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적극 알리고 막아야 한다. 이슬람도 문제가 심각하다. 여러 대학 기도실을 점령하고 있고, 이슬람 불법체류자는 2만 4,00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는 동성애를 허용하면 한국교회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목사는 “한국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통일을 이루고, 동성애를 막고, 이슬람을 추방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비성서적인 법이 들어서지 않게 하려고 이번 일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연합 조일래 대표회장도 “물밀 듯 밀려오는 동성애와 이슬람 등 온갖 악의 세력으로부터 사랑하는 손자·손녀를 보호하고 지켜 내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자유당을 홍보하지 않는 목사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석전 목사는 “5번 기독자유당을 찍어 달라고 말 못하는 목사들이 많다고 한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데 교회가 하나님 뜻을 거슬러도 되겠는가. 어른이 아기 기저귀 챙기듯 기독자유당을 홍보하는 데 힘을 다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본 전광훈 목사는 “기존 정당이 못하는 일을 넉넉히 하기 위해 로고스 법무법인 안에 변호사 5명으로 구성된 전문 정책 자문팀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대한민국을 살리는 정당은 기독자유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또 다른 기독 정당인 기독민주당을 탈당한 이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비례 공천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고 결심해 기독자유당에 참석했다. 전광훈 목사와 함께 동성애, 이슬람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미래목회포럼이 4일 개최한 ‘4.13총선과 한국교회’ 주제의 긴급 포럼에서 정성진 목사(거룩한 빛 광성교회)는 “기독교 정당을 위한 인사들의 노력을 폄훼할 필요는 없지만, 그 부작용이 더욱 심하다고 보기에 저는 명확하게 반대 입장”이라며 “국회 1-2석으로 기독교를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고, 오히려 종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럼 대표 이상대 목사는 “기독교 정당은 2008년과 2012년 처참하게 실패해 안티기독교 세력만 늘어났다”며 “기독교 여러 연합단체가 모여 하나의 뜻으로 정당을 만들었다면 모르지만, 개인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데 기독교 전체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나아가는데, 과연 교회가 정당을 만드는 일에 일반인들이 얼마나 호응하고 인정할지 모르겠다”며 “개인적으로 기독교 정당을 만드는 데는 반대하고 우려가 크다”고 했다.


또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는 “첫째로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모든 종교들이 자기들 종교를 내세워 정당 활동을 할 경우 종교 간 평화가 깨질 우려가 생긴다. 둘째로 동성애나 이슬람 이슈는 법제화의 문제이기에 특정 종교가 아니라 보편적 이름으로 전달해야 효과가 있고, 기독교를 내세울 경우 반대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셋째로 의원 1-2명이 다수당을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당신들 일’이라고 미뤄 버리면 오히려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이슬람 교도 김강산 씨(찌마 패설)가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지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정치에 본격 참여한 김 씨는 19대 총선 때 최경환 의원 측에서, 같은 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측에서, 2014년 지방선거 때 김관용 경북도지사 측에서 유세를 도왔다.
그는 재작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 바쁜 일정에도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했을 정도로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독실한 무슬림으로 유명하다.



2016년에도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지내면서 또 다른 감회를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기 위하여,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의 삼위(三位)의 위상으로 역사하고 계시다. 따라서 성부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며, 성자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 대신 죽음으로써 구속사업에 관여하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며,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주 예수 구속사업에 역사하셨음은 물론 지금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고 계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고난, 부활, 승천, 재림, 심판과 구원은 이미 만세 전부터 계획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 그리고 품성과 역사하시는 비밀은 인간의 지적인 대상이 아니다. 최초 인간의 죄로 우리들은,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 상태인 형벌적 사망에 이르렀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왔나니, 이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그의 무한하신 공의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죄인들에게 값없이 용서의 자비와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고안해 내셨다. 이 길이 예수님의 대속의 길인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사건이 하나님 구원사업의 절정에 달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구원계획을 완료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가 있고 우리들의 구원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은혜는 십자가 옆에서 죽어간 두 강도에 의해서도 잘 나타나져 있다. 이들 중 하나는 강팍하고 완악해서 그가 여태까지 살아오던 대로 죄 가운데서 죽었고 다른 하나는 사악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그에게 자비를 구하여 낙원에 들어갔음을 본다. 여기서 회개한 강도는 회개 전까지도 도덕적인 생활이나 하나님의 법도와 인간의 법을 존중하거나 지키지도 아니 했으며 좋은 일에 대해 조금도 한 것이 없이 모든 악행을 자행했으며 회개한 후에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섬기는 일에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그가 스스로 행한 바 선행이라고는 내놓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구원받은 것은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오직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과 잠시 같이 있었을 뿐 그에 대해 들은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영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시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중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첫 말씀을 듣고 자기를 비방하고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분은 죄를 질 분이 아니구나! 하고, ‘유대인의 왕’이란 조롱의 가시관을 보고 또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하며 비웃는 관중들의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왕이며 구세주임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다만 영의 눈과 마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개개인마다 이미 알고 계신 분이다. 세상학문의 깊은 진리를 깨달은 인간도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보고 선함과 악함을 판단하고 또한 세상에 필요한 인물이 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고 계시지마는 그의 독생자를 믿지 아니하면 그 중 아무도 구원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땅끝까지 만민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우리들의 사명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고 구원 받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도 없고 오는 자들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는 자 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 하셨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0).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



전도대학 2016 봄학기 개강예배에 참석한 목회자와 사모 및 학생들.


이론·실천 병행 “전도열매 풍성히”

토론토 전도대학(학장 서인구 소망교회 담임목사)이 3월29일(화) 오전 소망교회에서 개강 예배를 드리고 제19기 2016 봄학기 강의를 시작, 12주 교육과정에 들어갔다.


이날 예배는 박인기 목사(21세기 희망의 교회 담임)의 사회로 나성주 목사가 기도하고 서인구 목사가 ‘계속되는 사도행전’(행 28: 23~31)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이번 학기에도 주님이 명하신 사명을 잘 감당할 전도일꾼 양성과 풍성한 전도 열매를 맺도록 성심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예배는 허인희 장로(소망교회)의 헌금기도에 이어 박웅희 목사(새빛교회 담임)의 축도로 마쳤다. 예배에 이어 박웅희 목사가 교재 ‘하나님 나라의 복음전도’를 통한 교육 및 강의일정 등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도대학은 이번 학기에도 이론 강의와 함께 지역별 실천 전도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전도대학은 목회사역에 보람과 용기를 얻고 싶어하고,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원하는 목회자와 사역자는 물론 개인적 신앙성장과 목회를 돕기 원하는 성도, 선교사역에 헌신을 원하는 성도 등 전도열정을 가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문의: 416-391-3151, 647-207-0702 >



[기쁨과 소망] 은혜 총량 법칙

● 교회소식 2016. 4. 1. 19:42 Posted by SisaHan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한 분 꼽으라면, 저는 지체하지 않고, 저의 어머니를 꼽을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가 받은 상처는 저의 상처보다 최소한 10배가 넘을 것입니다. 동년배들의 어르신들에 비해서도 훨씬 더 많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시대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머님이 받으신 상처의 총량,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여러 번 하시던 말씀, “내가 마음 고생한 것, 책으로 쓰면, 수백 권은 될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상처를 받으셨지만, 저의 어머니는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에 많은 상처를 가지셨지만,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어렵지 않으셨습니다. 어렵지 않으신 정도가 아니라, 누구와도 원만하시고, 누구에게나 베풀기를 좋아하십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하시거나,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말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어머니는 그렇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으셨는데,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실 수 있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제가 내린 결론은 어머님이 받은 상처의 총량 보다 어머님이 받는 은혜의 총량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받은 은혜는 언제나 어머님의 상처를 충분히 덮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처가 아무리 많아도 은혜가 있으면 얼마든지 상처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처와 은혜는 반비례합니다. 은혜가 많으면 상처를 덜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마르면 상처를 더 받습니다.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은혜가 마르고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교인들의 표정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상처에 집착하지 말고, 은혜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면서 상처를 안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조심해도, 아무리 내가 잘 해 주어도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 은혜를 더 많이 받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의 총량보다 은혜의 총량을 늘려서 은혜로 상처를 이기자는 것입니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상처를 받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은혜는 갚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계산법 때문에, 그래서 은혜는 물에 새기고 상처는 돌에 새기는 우리의 태도 때문에 결국 온통 세상에는 상처받았다는 사람들로만 넘쳐나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은혜의 총량을 늘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가 넘치면 상처가 줄어듭니다. 도처에 상처가 있지만 사방에 은혜도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툭하면 상처 받는 체질에서 툭하면 은혜 받는 체질로 바뀌어 지는 것, 이것이 상처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