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고 구브로로 선교 떠났을 때 만 해도 자기들의 전하는 기독교복음이 온 세계에 충만하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언더우드와 아펜셀라가 1885년 조선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천만 크리스천의 기독교 대국이 된 것을 그들이 듣게 된다면 참으로 놀라움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우리는 니카라과 선교에서 느낍니다.

14년 전 갈릴리 장로교회가 외롭게 니카라과 단기선교에 나설 때만 해도 화산과 호수가 있는 시골 떼꽈나메교회에 국한 된 그저 미약하고 소박한 선교였습니다. 그러나 니카라과 단기선교 19회를 지나면서 오늘날 캐나다 전국 주요도시 밴쿠버. 에드몬톤. 위니펙. 토론토.오타와. 몬트리올. 뉴브런스윅 몽턴과 남미 콜롬비아와 니카라과 현지 한인교회를 비롯한 온 세계에 흩어진 12개 한인교회에서 참여한 100명의 장·단기선교사와 함께 미화 10만 달러가 넘는 재정으로 디리암바 지역과 레온 두 지역에서 목회자세미나와 의료사역과 안경사역과 어린이여름성경학교와 노방전도와 전도집회 사역을 통하여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달하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선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 이끄셨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 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가 이 일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주님 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교신학이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선교사로 오시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에게 선교를 명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셔서 사도들을 능력있게 하시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그들이 선교하러 가는 곳곳마다 성령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고 회심자들을 주셔서 교회가 세워지게 하심으로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에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지난 과거를 돌아 볼 때 만일 우리가 어렵고 힘든 그 때에 니카라과 선교를 중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이러한 열매가 맺힐 수 없었겠지요. 이 큰 영적 축복에서 제외되고 말았겠지요. 그러나 결국 우리 갈릴리교회가 지난 세월 동안 순교하는 마음으로 고락 간에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고 오늘날 연합 단기선교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급과 축복이 크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선교에 관한 한 더 충성되고 확고한 신념으로 그리고 겸허하고 열린 마음으로 중남미선교회와 함께 계속 정진해 나가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 임수택 목사 - 갈릴리장로교회 담임목사, 중남미선교회장 >


[평신도 글마당]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

● 교회소식 2017. 7. 19. 14:2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가 같은 조건을 가지고 나오지는 않았다. 혈연, 건강, 재산, 지능이나 재능등 모두가 다르게 태어났다. 따라서 나 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인생이란 경주에서 보다 유리하게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제치기는 힘들다.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으로 경쟁 하는것 뿐이다. 그러나 시간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습관을 통해서만 그들과 경쟁할 수 있다.


삶의 질은 습관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습관을, 실패한 사람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지금까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살아 왔느냐의 결과인 것이다. 모든 일은 편해지기까지는 불편하고 힘 들지만 습관이 되면 전혀 힘들지도 불편하지도 않음을 우리는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양치질 하고, 신문 보고, T V 보는 것을 귀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습관이 되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하루를 24시간이 아닌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힘들다고 시도조차 안하는 습관도 한번 내게 습관이 되면 전혀 불편하지도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성공의 법칙’이란 책을 쓴 멕스웰 몰츠는 하나의 습관을 만드는데 21일이 걸린다고 말하고 있다. 손과 발이 절단된 사람은 얼마간은 그 사실을 잊은 채 물건을 잡으려고 하고 무의식중에 일어나 걸으려 하는 행동을 21일간은 반복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행동에 주의 한다고 한다. 하나의 습관을 만든데 단 21일간의 훈련이 필요 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나쁜 습관인지는 다 알고 있다. 단지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바꿀려고 노력조차 하지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새해 첫 달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목표, 실천 사항을 정하고 굳게 다짐하고 마음 먹지만 몇일 못가서 그 결단이 무너지고 마는것은 이미 길들여진 자신의 습관 때문이다. 따라서 그 습관을 끊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해 21일간 노력하는 동안은 힘 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 인생을 변화 시키고 새롭게 리모델링 하는데 그런 노력쯤이야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습관은 마치 중력을 돌파하는 것과 같다. 일단 돌파하기만 하면 새로운 공간을 끝없이 순항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요, 승자가 독식하는 시대이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순간 우리는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새롭게 출시한 제품은 곧 바로 구형이 되어 버리는 광속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경쟁하고 그들 보다 앞 서기 위해서는 하루 24 시간이란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떤 습관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시간은 습관에 따라, 그리고 쓰는 것만큼 늘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하며 시간을 보내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먼져 생각하고 기획해야 하는 것이다.

< 신성균 - 빌라델비아장로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소유를 넘어 관계로

● 교회소식 2017. 7. 19. 14: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회학자 에릭 프롬은, 인간생존의 두 가지 양식을 이야기 한다. “소유냐 존재냐?”
어떤 사람은 소유양식의 삶을 지향하고 어떤 이는 존재양식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전자는 재산이나 지식, 지위나 권력 같은 소유에 전념하는 삶이고, 후자는 자기능력을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확신하는 삶이다. 소유의 양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즉 돈, 학위, 지위 등으로 자기의 가치, 주체성, 존재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것은 ‘죽은 관계’라고 지적한다. 반면, 존재의 양식은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성장하는 삶으로, 다른 사람하고 나누고 관심하는 살아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해, 또 보다 더 풍요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소유를 넘어 관계를 풍요롭게 해야 한다. 소유를 넘어 관계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 시대, 아니 인류역사를 통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돈 때문에 사람들 관계가 깨어지고 분란이 많다. 돈 때문에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형제들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 돈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 또한 수없이 깨어진다.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 소유를 넘어서 관계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 어떻게 가능할 까? 그것은 자신 안에 가득 차 있는 자기(ego)를 비우고 하늘의 거룩한 뜻을 품는 데 있다.
어떤 졸부가 나이가 들어 묘비명을 쓰긴 써야겠는데 마땅히 쓸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를 찾아가 묘비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작가가 물었다. “그동안 지내오시며 하신 일을 말씀해 주시지요.” 그런데 졸부가 생각해보니 딱히 기억될 만한 일을 한 게 없었다. 그래서 답했다. “뭐 딱히 내세울 게 없네요. 그래도 당신은 유명한 작가니까 잘 써주쇼. 내가 값은 후하게 쳐드리겠소.” 그러자 작가는 그에게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고 한다. “낳다. 먹다. 죽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낳고 먹고 죽는 인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채워진 삶이라면 매우 불쌍한 인생이다. 성서를 보면 예수께서 비유를 통해 소유와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다. 보통 ‘탐욕’이라 하면, 무엇을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십계명처럼 남의 것 이웃의 것을 부러워하거나 갖고자 하는 욕심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탐욕은 보다 진보적이다. 탐욕은 분배하지 않는데 있음을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내 집, 내 차, 내 가족, 내 자신의 삶, 내 돈, 내 통장...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은 대개가, 다른 사람의 손길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내가 먹는 한 끼의 식사만을 생각해보아도, ‘내 밥’이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고들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밥 숟가락을 들 수 없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섭취하고 또한 나누어야 할 것이다.
내 것이라는 자기중심성, 자기 집착, 이기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중심성, 자기 소유에 대한 집착이 이 세상을 슬프게 한다. 지금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기아로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에서 나는 식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이 충분히 먹고 살고 살 수 있다. 문제는 나누지 않는데 있다.


구약성서에는 가을에 추수할 때 한 귀퉁이를 추수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바닥에 떨어진 낟알을 거두어 가지 말라고 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남겨 두라고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약1:27) 이라 말한다.
물질로 인해 불행하게 된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예수께서 주신 가르침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3-15).

< 문은성 목사 - 기쁜 소래교회 담임목사 >


[기쁨과 소망] 캐나다 건국 150주년을 맞으며

● 교회소식 2017. 7. 12. 13: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50 주년 캐나다 건국 축하행사가 교회를 포함한 사회의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풍부한 자원, 맑은 공기, 물을 포함해서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축복가운데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캐나다는 복합문화주의를 제창하며 하나님의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우리의 이웃인 우리를 포함한 수많은 이민자들과 서로 다른 문화•종교를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한다.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복지혜택과 높은 수준의 인권 존중 등등이 기독교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창의성과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이 사회를 함께 이루어 나가고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생명있는 교회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면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 동양의 철학에서 이야기 하는 ‘깨달음’이 교회의 마지막 목표가 된다면 이는 충분하지 않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한대로 성령의 열매는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야기 하는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정의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정의를 세운다는 것은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다시말해 교회는 사랑을 선포하며 빛과 소금의 삶을 살면서 정의를 세상 안에 이루어가는 하나님 백성의 모임이다.
 
내가 속한 캐나다 연합교회의 정체성은 교회가 추구하는 세가지 삶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 이는 ‘사회정의’ ‘선교’ ‘교회연합’의 정신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삶이 세상을 향해 열린 하나님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믿는다. 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서 볼 수 있는대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눈먼 자가 다시 보게 하고 억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대변한다. 이것은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역을 위하며 모이는 것이 참교회의 모습이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가 교인들의 친목만을 위하는 것이라면 세상적인 사교집단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스도 안의 친교라 함은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향해 한 몸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성경공부와 그외의 다른 교회내의 교육 또한 우리의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가, 왜 세상으로 나아가서 세상의 아픔과 함께 하려 하는가를 확실히 알아서 교회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세상 안에 살아있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세상과 함께 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열린 마음은 우리 교회가 사회정의, 선교, 교회연합의 정신으로 세상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라고 부르신다. 이때에 우리는 행동이 있는 교회를 이루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살아있는 교회를 이루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질 때 기독교의 정신이 건국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진정한 150주년 캐나다 건국을 축하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영정 목사 - 덴토니아파크연합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