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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글마당] 맞장구

● 교회소식 2016. 3. 18. 19:59 Posted by SisaHan

우리 모두는 자신이 나쁜 사람, 혹은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 이라거나 선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하기에는 약간 부족함을 느낍니다. 사실 자신이 좀 이기적 이었음을 내심 숨길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설령 나의 모든 삶을 이웃을 위하여 살아간다해도, 거기에는 자기만족 이라는 것이 약간은 포함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 합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은 참으로 의미 심장한 말씀입니다. 매일의 일상을 그저 그렇게 돌아가는대로 지내다가, 주일에 예배드림으로 그자리에서 회개의 눈물도 흘리고, 감사의 마음이 되살아 나기도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일을 뒤돌아 보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즐겁게 만남을 갖고 집에 돌아와서 말실수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던 말이 생각나서 입니다. 그렇다고 친구 사이에 금이 가거나 상처를 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보고 생각을 다시하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장구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은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잘 치면,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고, 선한 사람으로 인정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비평을 하거나, 상대의 말을 자르는 습관은 소통에 찬물을 끼엊는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느 모임이나 토론에도 이런 비평가가 한 사람 반드시 끼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응원 한마디에 힘이 솟고, 자신의 진로를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자신의 삶이 완전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존경 받는 성공을 하신 분’들의 공통점은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잘 경청하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부모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 합니다. 자녀들이 잘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 이든지 자녀들의 성격과 재능을 존중하고 의견에 맞장구를 잘 쳐주는 것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야 할 일입니다.


글을 쓰시는 어느 작가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쓴 글에 완전 만족을 느낀다면 다음 글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부족함을 느끼기에 글을 계속 써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잠시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부족함이 얼마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 ‘맞장구’가 나오게 됩니다.
성경에도 선생이 되지 말라 기록하셨습니다.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에게는 친구가 많습니다.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맞장구’ 잘 배워서 함께 춤 한번 춰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최근에 한국에서 목사가 자기 딸을 때려죽였다는 뉴스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중학생 딸을 죽이고도 그 시신을 11개월이나 집에 방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며칠을 분노와 슬픔, 그리고 두려움으로 마음이 평안하지가 않았다. 딸을 죽이고 시신을 방치한 후에도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을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사람이 무서운지 모른다. 48세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이면서 독일유학 후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어느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또한 2권의 신학서적을 펴낸 엘리트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직한 일을 저질렀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교회연합회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명서>를 냈다. 그리고 그가 다니던 신학교에서도 성명서를 냈고 그가 속한 교단의 교단장도 사과의 성명서를 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렇지 않아도 목사들과 교회가 비난받는 시대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는 일이 벌어졌으니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님에 틀림없다고 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 마디로 가정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는 1남 2녀를 둔 행복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7년 독일 유학중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에 7살 연하의 미녀와 재혼하면서 풍파가 일기 시작했다. 아들이 가출해버렸다. 한 살 아래 딸은 독일에 있는 아는 사람에게 보내졌다. 막내딸은 계모의 친정에 보내졌는데 계모 여동생에게 매를 맞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아버지 집에 들어 왔다가 아버지와 계모의 폭력에 의해 숨을 거둔 것이라고 한다. 가장 안전한 곳,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그런데 그 가정이 가장 두려운 곳, 무서운 곳이 되고 말았다.


지금 한국의 가정이 깨어지고 있다는 소식들을 들으면서 걱정이 된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가정이 든든히 설 때 사회가 든든히 선다. 가정이 행복할 때 그 사회의 미래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가정은 작은 천국을 경험하며 살라고 주신 첫 번째 기관이다. 복을 받고, 복을 만들어 내고, 또 복을 후대에 계속 전하도록 주신 장소이다. 이 가정이 아담과 하와로 인해 깨어진 후로 계속 가정은 도전을 받아 왔다. 그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두 번째 기관인 교회를 만들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키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를 통하여 가정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할 목사가 가정을 깨뜨렸으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이 뉴스를 듣고 마음이 아파할 때 내가 오래 전에 세미나에 참석했던 시카고 Willow Creek Community 교회의 빌 하이블(Bill Hybel)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이 되면서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되었다. 어느 날, 건축하는 일에 바쁜 하이블 목사님에게 사모님이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유는 남편이 너무 바빠서 가정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격을 받은 목사님은 아내를 달래고 나서 당회에 휴가를 가고 싶다고 청원했다. 그것도 장기간의 휴가를 허락해달라고 한 것이다. 당회원들이 반대를 했다. 지금 교회 건축을 하고 있는 중인데 담임 목사가 휴가를 간다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빌 하이블 목사님은 정색하며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목사가 무슨 교회를 지을 자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말이 당시 나에게는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고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가정을 희생시키면서 목회를 하는 것이 진정한 목회자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딸을 죽인 그 목사님도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우선적으로 가정부터 지켜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이민자들의 가정은 더욱 취약하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가장 행복한 곳으로 지키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 강성철 목사 - 우리 장로교회 담임목사 >



2016 유스코스타 참가학생들이 찬양팀과 함께 열띤 찬양을 하고 있다.


2016 유스코스타 개막, 5백40명 복음축제
말씀과 기도·찬양의 뜨거움… 풍성한 은혜

1.5~2세 청소년을 위한 연합 수련행사인 2016 토론토 유스 코스타(Youth KOSTA)가15일 오후 Muskoka Woods Christian Resort 에서 개막, 17일까지 2박3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이번 유스코스타는 ‘복음으로 살라’(요일 3:16, 요 3:16)는 주제로 온타리오 각지역 46개 교회에서 7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4백30여명 청소년들이 39명의 인솔자와 함께 참가했고 스탭 65명과 강사진 8명 등 5백40여명의 많은 인원이 참가해 열띤 분위기 속에 은혜롭게 진행되고 있다.


첫날인 15일 오후에는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찬양에 이어 개회예배를 드리면서 학생과 인솔자, 사역자, 일부 부모 등이 함께 어우러진 기도와 복음의 축제로 뜨겁게 막이 올랐다.
이번 집회에는 Kye Chung 목사(Discovery Church California), 최영진 목사(Joshua Choi: Heart Beat Church, Sydney), 황선욱 목사(시카고 순복음 교회), 이정규 형제(개그맨. 가수), Brian Kim(CCM 찬양사역자), Joel Gorden 전도사(Willowdale Baptist Church: 전 영화- 감독 및 배우, 청소년 문화사역), 정현범 간사(YWAM: 토론토 문화 예술사역 담당), 유임근 총무(KOSTA 국제본부) 등 강사들이 출연해 말씀과 예배, 찬양, 세미나, 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주제 강의를 통해 은혜와 도전을 안기는 연합축제로 이어진다.


개회와 함께 드린 예배에서 설교는 호주에서 온 최영진 목사가 맡아 ‘복음은 무엇인가?’(엡 2:1)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최 목사는 “복음은 이해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면서 “우리는 행동의 죄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해 죽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리스도의 긍휼과 은혜로 살리셨고, 우리를 대신해 승리하셨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이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몰라 아버지 되심을 믿지 못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자녀자격이 없다고 하면 부모 마음이 아프다. 이번 유스코스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관계가 새로워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고 참석 유스들에게 도전의 메시지를 전했다.


집회는 이어 한국과 호주·미국 등 거리를 불문하고 유스 코스타를 섬기기 위해 참석한 강사진을 소개하고 올해 대회장인 주권태 목사(수정교회 담임)가 강사진을 축복하는 기도를 했다.
저녁 시간에는 인솔자들이 모인 ‘인솔자 카페’로 사역의 고락과 의견을 나눈 교제의 시간이 있었으며, 이어진 집회에서는 가수이며 개그맨인 이정규 형제의 간증과 Kye Chung 목사의 말씀 인도로 참가 유스들이 복음의 은혜를 체험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17일 오전까지 계속되는 유스 코스타는 16일 오전 황선욱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와 Brian Kim의 찬양콘서트, 선택식 세미나와 조별모임 등이 있었으며, 「골든 슈퍼코스타 K」라는 탈렌트 쇼와 게임을 통해 참가 청소년들이 함께 즐거워 하고 하나되는 시간도 가졌다. 동행 인솔자를 위한 인솔자 세미나도 별도로 진행됐다. 저녁집회는 Joel Gorden 전도사의 간증에 이어 최영진 목사가 다시 말씀을 전했다.
폐회일인 17일은 Kye Chung 목사가 폐회예배 말씀을 전하고 참가 학생들의 간증 등으로 행사를 모두 마무리 한다.


< 문의: 416-275-4382, 416-885-5787, www.yktoronto.com >



[기쁨과 소망] 선택

● 교회소식 2016. 3. 12. 20:36 Posted by SisaHan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우화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뷔리당은 14세기 초중엽 파리 대학에서 활동했던 스콜라 학자이며 과학 이론가인데, 참으로 엉뚱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아주 기묘한 우화를 사용하거든요. 이 우화에 따르면, 배고픈 당나귀에게 건초더미를 줍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독특합니다. 당나귀의 양 옆에 똑같은 맛과 질감을 가진 건초더미를 쌓아 두는 것이에요. 그런 후 과연 당나귀가 어느 쪽 건초를 취할지를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당나귀는 어느 쪽 건초를 취할까요?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을 포기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뷔리당의 당나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당나귀는 모든 상황을 아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참으로 웃긴 당나귀이죠!), 왼쪽과 오른쪽의 건초 중 어느 하나를 선호할 아무런 논리적 이유를 가지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더 나아야 선택할 논리적 근거를 갖게 되는데, 둘 다 똑같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겁니다. 그 결과 당나귀는 논리적인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결국 굶어죽게 된다는 것이 이 우화의 결론입니다.


물론 뷔리당 자신 역시 현실세계에서는 어떤 당나귀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오른쪽 아니면 왼쪽 건초더미를 택해서 맛있게 먹습니다. 하지만 이 우화에는 현실 세계를 향한 풍자적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떤 운명적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때 (따라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텐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결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으로 결정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혹시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는지를 물어볼게요.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던 한 어머니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잔인함을 고발한 영화인데요. 소피의 아버지는 반유대주의가 팽배했던 폴란드에서 유대인 말살정책을 제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자였던 남편은 나치에게 끌려가 총살을 당하고, 소피 또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도중, 소피는 독일군 장교에게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두 아이를 풀어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러나 독일군 장교는 잔인한 눈빛을 던지며 두 아이 중 하나만 살려주고 다른 하나는 가스실로 보낼 테니 소피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합니다. 어떤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피 역시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해요. 그러나 독일군 장교는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두 아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소피는 마지막 순간에 딸을 데려가라고 소리칩니다. 소피의 어린 딸은 울부짖으며 가스실로 끌려가고, 점점 멀어져 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소피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의 삶에서 소피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로 내몰림을 당하는 경우는 없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선택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 손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선택의 연장선상에 놓여져 있는 우리의 삶,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회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간절히 묻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 송만빈 목사 - 노스욕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