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살던 동네는 서울의 한복판... 그러나 소위 말하는 산동네였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나올 참이면 약 20분을 걸어야하는데 그 길이 ‘등산’ 수준이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친구가 집으로 놀러온 적이 있었다. 집에 도착한 친구는 그 뒤로 다시는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넓은 마당’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 10여분 정도 더 산을 타야하는 곳이었다. 그나마 우리 집은 수도와 전기는 걱정이 없었는데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곳에 사는 친구 중에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친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청와대까지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였지만 실상은 이러했다.


캐나다에 온지 13년 만에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다. 부모님이 내가 태어난 곳에서 여전히 살고 계시기에 정말 오래간 만에 내가 살던 고향 동네를 가게 된 것이다. 가기 전 부모님으로부터 많이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간 터라 막연하게 ‘변했겠지’하는 마음으로 갔지만... “변해도 너무 변했다!.” 집을 찾아 갈 수 없을 정도였다.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던 ‘넒은 마당’에 고개를 들 때까지 들어야 끝이 보이는 고층의 아파트 수십 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그 곳에 우리 부모님 집도 있었다. 또 초등학교 시절 흙먼지 날리며 해가 지도록 공을 차던 학교 운동장은 ‘로저스센터’에서나 봄직한 파란 인조 잔디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주변을 ‘우사인 볼트’도 뛰고 싶을 정도의 멋진 트랙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시한번 말하고 싶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한국에 도착한지 삼일쯤, 밤늦게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산책을 가게 되었다. 산책에 목적지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녔던 교회였다. 너무도 많이 변한 터라...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충의 방향만 잡고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교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또 청년시절의 모든 시간을 보낸 곳에 이제는 중년이 되어 아이 셋과 도착한 마음의 고향 ‘교회’…흥분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이들에게 교회를 설명해주고 또 어린시절 교회 주변에서 놀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 예전에 다니던 길이 있을 까? 하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변해도 너무 변했는데, 골목길은 변하지 않았다.” 는 것이다. 약 두 사람 정도가 마주 지나칠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약간의 화장실 냄새…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파트와 시원하게 뚤린 큰 도로에 반해 그 속은 여전히 비좁고 불편한 현실 그 자체였다.


골목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내 모습이 이런 모습은 아닌가? ‘목사’라는 직함을 받은지 십여 년... 초년생 목사에 비해 지금에 나의 모습은 이전보다 모든 일에 있어 능숙해지고 세련되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내 속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능숙해지고 세련되어 졌는가…?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성숙되어 가고 있는가…? 혹시 겉모습만 변해 있고, 내면의 모습은 여전히 누구하나 섬기기에도 비좁고 불편한 모습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변화’ 그것이 긍정적 방향이라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보여지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모두가 변화를 경험할 때 진정한 가치와 능력을 발휘 할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민경석 목사 - 한울교회 담임목사 >




스스로 회초리 치며 회개하는 목회자들‥
“말만이 아닌 진정한 회개 됐으면…”

‘한국교회, 회개의 눈물 2015 회초리 기도대성회’가 작년에 이어 지난 7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기도대성회는 한국교회의 타락과 침체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서, 한국의 목회자들이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참회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한국교회 최고령(104세) 목회자인 김영창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등 원로와 지도급 목회자들이 한 목소리로 ‘저부터 회개합니다’, ‘제가 회초리 맞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외치며 교만, 음란, 거짓, 혈기, 불평, 욕심, 쾌락 등 갖가지 죄에 대해 스스로 회초리를 들고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다.
특히 이날 설교한 조용기 목사는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이 강단에 서있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 나는 말씀을 전하기보다 회초리를 맞으러 나왔다”며 “목회 50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랑과 동정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론 걸림돌이 됐고 많은 잘못과 비난받을 일을 했다. 목회에서 물러난 지금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잘못한 것 밖에 없다. 후배들 앞에 회초리로 맞는 것이 맞다. 저를 때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1년 전에도 회개를 그토록 강조했지만 한국교회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과 함께 ‘쇼’라는 비판의 소리도 나온다. 많은 목회자들이 부자로 산 죄, 다른 사람을 미워한 죄,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죄, 권력을 바라본 죄 등을 회개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물신과 안락을 좇으며 소외된 자들을 돌보지 않고 연합단체는 지금도 갈등과 금권이 판친다는 것이다.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는 “회개운동은 절실하지만 보여주기식 말로만의 회개는 지양해야 한다”면서 “진정한 회개가 되려면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미 여목회자연합 7차 컨퍼런스
캐나다·미국 40여명 참석 심코호변서… 은혜 나누며 사명감당 다짐

북미주 여성목회자연합협의회(캐나다 회장 하은숙 목사, 미국 회장 전희수 목사)가 제7차 컨퍼런스를 지난 6월22~24일 심코호변의 잭슨스 포인트 컨퍼런스센터에서 40여명의 여목회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했다.


‘십자가의 은혜’(고후 12: 7~10)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첫날 캐나다측 주관 개회예배, 둘째날은 주강사 하리라 목사(중부독일 은혜한인교회 담임)의 말씀성회, 사흘째는 미국측 주관 폐회예배 순으로 진행했다. 김부의 목사 사회로 드린 개회예배는 문경옥 목사가 기도하고, 캐나다 회장인 하은숙 목사가 에베소서 4장13절을 본문으로 ‘지도자의 영성과 자기관리’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이어 김 드보라 목사 축도로 마치고 회원 소개와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둘째날 하리라 목사는 ‘십자가의 은혜’,‘십자가의 죽음’(요 12:24),‘십자가의 치유’(고전 5:21),‘십자가의 승리’(고전 11:1) 등 제목으로 집회를 인도했다. 하 목사는 “약함을 자랑할 때 십자가의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내 옷을 벗고 나를 깨트려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고, 부서진 사람만이 치유를 받으며, 목회자의 자기성찰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십자가의 승리를 이룰 것“이라는 요지로 말씀을 전했다.


폐회예배에서 미국측 회장인 전희수 목사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비전의 사람’(출 3: 1~12)이라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시대적 비전을 깨닫고 사역지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자”고 강조했다. 예배는 심상대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 문의: 416-899-0654,416-225-7505 >



[기쁨과 소망] 한 템포 늦추어라!

● 교회소식 2015. 7. 10. 17:51 Posted by SisaHan

지난 4월22일부터 6월19일까지 두 달 가까운 기간을 한국에서 안식월로 보내고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서 보낸 두 달은 대조적인 하나의 한 달과 또 다른 한 달로 구성되었다. 처음 한 달 나는 전라도 순천에 있는 깊은 산속의 영성센터에서 보냈다. 텔레비전, 신문, 전화, 인터넷도 없이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된 시간이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느린 한 달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산책하고 밥 먹고 이 세 가지 행위만을 반복하다가 저녁이면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처음 일주일은 갑자기 늦추어진 삶의 속도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치 시속 100키로 달리다가 갑자기 시속 10키로 달리는 그런 답답함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밤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그리움에 몸부림쳤다.

그런데 한 주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의 몸과 마음이 느린 삶의 속도에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행위 하나 하나가 그대로 행위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누려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 할 때에는 양치질만 했다. 기도할 때에는 기도만 했고, 밥을 먹을 때에는 밥만 맛있게 먹었다. 산속을 걸을 때에는 나무와 작은 새들과 이름 모를 풀들에 집중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동작, 지금 내 손에 잡혀있는 그 일에 더 깊이 몰두하면서 차츰 모든 행동이 그 행동 자체로 인식되고 음미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나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늘 필요했던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고 나의 소박한 지금 그리고 여기에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만 내게 다가오셨고, 나는 그 하나님께 머물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 작고 고립되고 단순한 세계에 안거(安居)하기 시작하였다. 희망없이 안주(安住)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발견된 희망 안에서 편안히 머물기 시작하였다.


또 다른 한 달은 세계에서 가장 삶의 속도가 빠른 서울에서 보냈다. 갑자기 빨라진 삶의 속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한 달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났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지쳐만 갔고 늙어만 갔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항상 전만 못하여서 돌아왔다. 그래서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들어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느 순간 다 마모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바로 그 때에 찾아온 메르스 사태, 자연스럽게 나의 행동반경을 좁혀 놓았고,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 느려진 삶의 속도에 오히려 감사했다. 이렇게 한 달을 서울서 보냈지만 나는 끝내 안거하지 못하고,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조적인 두 달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내가 새삼 느낀 것은 삶의 속도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삶의 방향을 잘 잡아도 삶의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지 못하면 늘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눌리는 삶을 살게 된다. 너무 빠른 삶의 속도는 기도를 잃어버리게 하고 성찰을 놓치게 만든다. 눌리는 삶이 아니라 누리는 삶으로, 쫓기는 삶이 아니라 부름받은 삶으로 나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한 템포 늦추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도도 하게 되고 기적도 보게 된다. 대체로 우리는 규정 속도보다 빨리 달리는 편이다. 세상에는 너무 느린 사람보다 너무 빠른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의도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놓쳐버린 행복, 잃어버린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