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언론 ‘한·일 정부, 강제노동 표현 사용 않기로 사전 합의’ 보도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

 

우원식 국회의장이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표현이 삭제된 것과 관련해 정부에 소명을 요청했다.

국회 관계자는 “일본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성 표현이 빠진 것과 관련해 우 의장이 국회 수석전문위원을 통해 정부에 확인을 요청해, 관련 보고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이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정부가 이를 부인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외교부 쪽에 경위를 파악하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국가유산청에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고 한다.

국회 관계자는 “경위를 파악한 뒤 우 의장이 공식 입장을 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독립운동가 김한의 외손자인 우 의장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한·일 역사 문제에 앞장서 왔다. < 엄지원 기자 >

 

세계유산 등재 동의 후폭풍

일 언론 “강제 표현 않기로 합의
대신 전시실 만들고 생활상 설명”
외교부 “표현문제 전혀 사실무근
2015년 군함도 때 이미 정리” 부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참가국 정상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놈펜/윤운식 기자]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운데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노동자 강제성 표현 문제는 일본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우리 외교부의 주장과 배치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8일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가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와 관련해 현지 전시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의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에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일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어, 양 정부 관계자에게는 새로운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물밑 교섭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 시설에서 상설전시를 하고, 전시 중 한반도 출신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 노동환경의 가혹함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 수용했다”고 전했다.

이는 외교부의 그동안 주장과 상반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도광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성’이 빠진 것과 관련해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이미 정리됐다. 표현 문제를 놓고 (이번에)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7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하시마)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엔 일본 정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을 했다”라고 밝히는 등 강제성을 명확히 한 바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2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기자들을 만나 “되풀이해서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2015년) 과거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강제노역’ 등 과거 약속을 이어가겠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도 사실이 아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날 산케이신문에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 등에 대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저녁 한-일 간 ‘강제노동’ 표현을 빼기로 사전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외교부는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며, 앞으로도 한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일본 쪽 대표의 발언문을 참고해달라고 했고, 이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비극적인 역사 현장(사도광산)이 군함도에 이어 또다시 세계적인 명소로 조명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 도쿄=김소연 특파원, 신형철 기자, 비엔티안=박민희 기자, 엄지원 기자 >

 

인적 드문 향토박물관 일부 공간에 설치
정부 “기숙사 터와 가까워…전시 자체 의미”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5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조선인 노동자 전시는 2층 D전시실 일부(파란색 동그라미)에서 이뤄지고 있다.

 

27일(현지시각)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46차 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위원국들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만장일치로 동의해 안건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가 기록된 전시물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하고 추도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인이 강제동원 됐다는 사실이 전시 자료에 빠져있고, 자료가 있는 박물관 또한 세계유산 등재 지역이 아닌 인적 드문 외곽이어서 ‘구색만 갖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 약속한 내용은 크게 △사도광산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 설치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기타자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 범위에서 제외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외에도 가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전시 시설 개발하고, 그동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bearing in mind)하며, 한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먼저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물은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됐다. 일본 정부는 당장 28일부터 전시물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전시물에는 “전시에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및 기타 관련 조치들은 한반도에서 시행됐다.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 관여하에 ‘모집’, ‘관 알선’이 순차적으로 시행됐고, 1944년 9월부터는 ‘징용’이 시행돼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고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명시했다. 또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바위 뚫기, 버팀목 설치, 운반과 같이 갱내 위험한 작업을 더 많이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노동 조건에 대한 분쟁과 식량부족, 사망사고에 대한 기록도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한 달 평균 노동일이 28일이었다는 기록과, 한국인 노동자들의 탈출과 수감 기록도 있다”고 적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물이 설치된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모습. [외교부 제공]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은 올해부터 매년 7~8월께 사도 현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올해 개최 일자와 장소는 현재 일본 내에서 조율 중이며 한국 정부와도 협의 중이다. 해당 추도식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가하는 데, 고위급 인사가 참석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전체 역사가 반영된 전시물이 설치된 것에 대해 “반드시 ‘전체 역사’가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에 관련 자료를 제공해 왔으며, 이러한 입장이 이코모스의 보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반영된 것이 상기와 같은 일본의 조치를 이끌어낸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자평했다. 또한, 사도광산 추도식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본의 민간단체 차원의 추도식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 일본이 약속한 추도식은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기타자와 산업시설이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근대의 산업시설이라는 이유로 이번에 등재된 세계유산의 범위에서 제외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정부의 분석처럼 한국 정부가 일본의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낸 것은 평가할만 하다. 다만, 이번에도 일본은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세계유산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전시물을 설치하는 등 ‘형식을 갖추는 데 그쳤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오래된 2층짜리 민속박물관으로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이 중 한개 방의 절반 면적에 조선인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전시했다. 전시실이 지나치게 허름하고 외곽이라는 지적에 외교부 당국자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당시 한국 노동자들과 가장 관련이 있는 장소인 기숙사 터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며 “해당 박물관은 사도광산의 관리사무소였던 곳으로 이런 장소에 한국인 노동자 관련 사실들이 전시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일본은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군함도 탄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전력이 있는 만큼, 추도식 개최 등의 공약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진행할 지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이 다시 한 번 한국이 저자세로 일본에 동조하면서 앞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유산에 대해 목소리를 낼만한 명분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합의에 대해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에서는 합의를 추켜세우고 있지만,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정부의 방식은 과거 군함도 때와 다르지 않다”며 “내년으로 보류를 유도해 시간을 가지고 더 협상하는 등의 방법이 있었을 텐데 왜 서둘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신형철 기자 >

 

세계유산 등재 파장... 사도 향토박물관 전시실 보면,

  조선인 동원·탈출·수감 기록뿐 강제동원 내용 어디에도 없어
“윤 정부, 한일 관계 개선 명분 역사의 진실, 일본에 양보” 비판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 등이 빠진 채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 쪽이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는데도 윤석열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해줬기 때문이다. ‘강제성’은 당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식민지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어서 한-일 관계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가 걸려 있는 한국 정부가 동의해주면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국 외교부는 자료를 내어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금 채굴 현장이었던 브이(V)자 산봉우리 ‘도유노와레토’ 모습. [사도/김소연 특파원]
 

한·일 정부는 등재 결정 전에 사도광산 조선인 문제와 관련해 ‘전체 역사’를 보여줄 전시 시설과 내용 등에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내 별도 장소를 마련했고, 28일부터 전시가 시작됐다. 이날 공개된 사도섬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에는 △조선인 동원 형태와 규모 △위험한 작업에 노출된 갱내 작업과 △한국인 노동자들의 탈출·수감 기록 등 당시 가혹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내용이 전시돼 있다.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도 27일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포함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시 전략 및 시설을 만들기까지 한국과 긴밀히 대화했다. (앞으로) 충실하고 완전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반영한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지만, 가장 중요한 ‘조선인 강제동원’이 빠지면서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2015년 7월 하시마(군함도)를 포함해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때와 차이가 크다.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forced to work)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뒤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노동’ 등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동원과정·노동환경의 강제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 이미 정리됐다. 표현 문제를 놓고 (이번에) 일본과 협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합의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일본이 그것을 포함해 모든 약속을 인정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5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조선인 노동자 전시는 2층 D전시실 일부(파란색 동그라미)에서 이뤄지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하지만 일본 쪽에서 이를 부정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에 사도광산 조선인 전시 등과 관련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인정한 2015년 ‘군함도 약속’을 9년 동안 지키지 않고 있으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역사 지우기’도 강화되고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희석하기 위해 ‘징용공’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을 바꿨다. 2021년 4월엔 각의(국무회의)에서 ‘강제’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결정했고, 이후 모든 교과서에서 ‘강제노동’, ‘강제연행’ 등의 ‘강제’가 사라졌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론’을 용인한 것”이라며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비판했다.    < 도쿄=김소연 특파원, 신형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