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발급 중단에 전입신고 등 일상 큰 피해

“갑자기 나라 전산망 마비, 이해가 안 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오늘 전입신고 안 되면 저한테 불리할 수도 있는데….”, “집 계약날이라 국세완납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일요일에 남편 화장 절차를 밟으려면 주민등록초본이 꼭 있어야 하는데….” 17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용하는 공무원 전용 행정 전산망인 ‘새올’이 마비돼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되자 현장에서는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3시께 찾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주민센터에서는 민원 서류를 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주민센터에서는 ‘어떤 서류도 발급이 안된다’며 거듭 안내하고 있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주민센터 내 의자에 앉아 전산망 복구 소식만 애타게 기다리는 시민들도 많았다. 
 
 
휠체어 타고 1㎞ 온 중증장애인 헛걸음
 

전입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를 찾은 직장인 박서희(26)씨는 “전입신고를 하면 다음 날 (대항력 등) 효력이 발생하니까 오늘 꼭 해야 한다. 오늘 못하면 제가 불리해질 수 있다”며 “혹시라도 될지 모르니 계속 기다려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부터 종일 주민센터 근처를 서성였다는 전홍필(60)씨는 “한남동에서 (건물) 공사를 하는데 허가를 맡으려면 구청에 인감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오늘 아침 일찍 왔는데 발급이 안 된다고 해서 2시간을 기다렸다. 점심 먹고 왔는데도 안 된다고 한다.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 70대 남성은 “오늘이 집 매매 계약일이다. 국세완납증명서가 필요한데, 발급이 안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민센터 직원 ㄱ씨는 “특히 인감증명서는 무인증명기로도 발급이 안 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자료고 각종 중요 거래 때 꼭 필요한 서류인데 시민들이 많이 곤란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은평구 주민센터에 행정 전산망 마비로 서류 발급이 제한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고경주 기자
 

재발급 받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수령하러 온 시민도 전산 문제 탓에 찾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전자 서명과 지문의 진위를 전산으로 확인한 뒤에야 배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센터 직원 ㄱ씨는 “임시 주민등록증을 발급해드렸고, 추후 다시 수령하러 오시라고 안내해드렸다”고 말했다.화장터에 고인이 된 가족을 보내야 하는데 주민등록초본이 떼어지지 않아 난감해하는 시민도 있었다. 임시 서류에라도 도장을 찍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주민센터 쪽에선 공문서가 아닌 임시 서류에 도장을 찍긴 어렵다고 거절했다.이아무개(56)씨는 “오늘부터 남편 장례를 시작했다. 서류가 필요해 아침부터 여러 차례 왔는데 계속 발급이 안 된다”며 “화장이 일요일 아침이라 오늘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 망자의 마지막 길을 망치는 상황이 될까 무섭다”고 말했다.

행안부 “확정일자 수기로 접수, 이후 소급 처리”

 
1㎞ 떨어진 집에서 휠체어를 타고 왔다는 장애등급 1급의 중증장애인 신영서(45)씨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다음주 목요일까지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왔는데 허탕만 쳤다. 주민센터에 오려면 15~20분은 걸리는데 다음주에 다시 오는 수밖에 없다”며 발길을 돌렸다.중고자동차 매매 단지에서도 자동차소유권 이전을 위해 필요한 인감증명서 등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고객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중고차 매매 업체 대표 ㄴ씨는 한겨레에 “조금 전에도 고객 한 명이 인감증명서를 못 뗀다고 연락이 왔다. 결국 오늘 계약을 못 하고 다음 주에 다시 날짜를 잡기로 했다”며 “중고차 매매업을 10년 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 본다. 갑자기 나라 전산망이 마비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행정망 대란’에 이날 오후 늦게 행안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전산장애로 국민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주민센터에서 처리되는 납부·신고 등 공공 민원은 장애가 복구돼 납부할 수 있을 때까지 납부기한을 연장하고, 확정일자 등과 같이 즉시 처리가 필요한 민원은 수기로 접수받은 뒤 이후 오늘 자로 소급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 김가윤 기자 고경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