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캐나다의 다른 어느 도시 보다 토론토가 심한데, 이런 다양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다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기보다 당당한 한국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자랑스럽다고 말하면 왠지 남을 존중하기 보다 자신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세대차이랄까? 요즘 여기서 태어났든, 한국에서 왔든, 젊은이들을 보면나처럼 나이 든 사람의 눈에는 건방져 보이기도 한다. 건방진 것과 당당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당함이란 어떤 상황에서 누가 뭐라든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 어느 장소, 특히 누구 앞에서든…. 솔직히 이 당당함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부족하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세대에서는 당시의 사회적인 제도와 교육환경 자체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여건이 아니었다. 어디서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위 아래 질서를 강조하는 유교의 전통 때문인지, 집에서는 집대로,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그 어떤 위치의 차이가 있어 알게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을 못했고, 선배 앞에선 우리는 아예 입을 다물어야 했다. 튀어 나온 못이 먼저 망치에 머리를 맞는다는 말처럼….
인간관계가 수직이 아닌 수평이라는 이곳에 와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할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았다. 새 환경에 적응하는 문제도 문제였지만, 다른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우선 서있을 자리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짧은 언어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에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내 알게 되었지만, 이 사회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말을 해야 했다. 아무도 점잔 빼느라고 눈치보며 입 다물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와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제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로 나오고 있다. 공부를 위하여, 취업을 위해, 그리고 예술 공연을 위해, 우리 때와는 달리 나는 그들이 많이 당당해져 있음을 본다. 그만큼 나라가 부강해졌고, 국민들이 자신감을 가진 탓이리라. 나는 사실 K-POP을 좋아하지 않는다. 싸이(Psy)의 말춤 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남들이 하도 이야기하고 신문에 나와서 뒤늦게 알았다.
그래도 관심 밖의 일이지만, 그가 Ellen Show에 출연한 것을 우연히 보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좀처럼 토크쇼를 보지 않는 내가 TV를 켜놓고 있는데, 그 유명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이 보이고 싸이가 나왔다. 그가 등장했을 때, 내가 보기에는 엘렌의 실수였다. 관중들이 다 알고 있다 해도 처음 무대에 나온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사회자로서 기본 예의였다. 웬 까닭인지 그녀는 그런 기본 절차를 잊어버리고 프로를 진행하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싸이가 그녀를 제지하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Let me introduce myself.”, “I am Psy from Korea.”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싸이가 너무 당당해 보였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고 상대가 누군가를 떠나서 할 말 하는 것을 보고 참 기뻤다. 만약에 나라면 그런 자리에 초대받을 리도 없고, 설사 초대 받았다 해도 상대방의 실수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그녀가 말하는 대로 따라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자연스런 그의 행동을 보고, 그가 세계를 향해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친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서있는 것 같았다.
우리 젊은이들이 모두 싸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당당하게 서고, 경우에 따라서 주눅 들지말고. 할 말 하는 자신감이 있으면 참 좋겠다. 그것이 진정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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