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새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허태열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하는 등 청와대 일부 참모진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내각 인선에 이어 청와대 주요 보직 인사를 확정함에 따라 차기 정부를 이끌 체제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지금까지의 인사 내용을 총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간신히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는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전문가 위주의 안정적 진용을 꾸리려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애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인사다.
우선, 국민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새 정권의 첫 내각·청와대 인사는 자신을 도와 국정운영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국민은 인사에 깃든 메시지를 보고 때로는 감동도 받고 희망의 불씨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인사 과정에서부터 국민과 철저히 단절됐다. 게다가 사전 검증도 부실해 후보자들의 도덕성 의혹이 연일 양파껍질 벗기듯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전체적 반응이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이 애초 대탕평이니 대화합 인사니 하는 말을 왜 꺼냈는지도 의아하다. 이는 단지 호남 출신 인사 비율이 낮다는 따위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지역과 이념,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도, 널리 인재를 구해 나라의 역량을 한군데로 집결시키겠다는 의지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민주당은 빨갱이의 꼭두각시” 따위의 색깔론과 지역갈등 조장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내정하는 등 끝까지 국민화합에 역행하는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시대적 과제를 무엇으로 설정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금까지의 인사 내용을 보면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변화와 혁신을 향한 역동적 에너지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노사 문제 등 각종 사회적 난제들의 엉킨 실타래를 풀려는 강한 열정도 엿볼 수 없다. 국가의 안정적 관리에만 치중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엄중한데도 박 당선인은 자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랏일을 대통령 혼자 주도하는 ‘나홀로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졌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각료 후보자들의 면면을 볼 때 앞으로 국정운영은 대통령이 앞장서 이끌고 내각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부수적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욱이 청와대 참모진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예스맨’들로 꾸려질 조짐이 뚜렷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만기친람(萬機親覽) 형’ 국정운영의 폐해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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